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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 성공조건]②아무리 급해도 코어는 지켜라

  • 2016.05.17(화) 10:48

MB정부때가 '골든타임'…정치에 밀려 기회놓쳐
재무구조 변화보다 산업 경쟁력 제고에 중점둬야

총선이 끝나자 정부가 부랴부랴 기업 구조조정 논의에 불을 붙였다. 내년엔 대선이 치러지는 만큼 이제라도 정부가 신속하고 일관성 있게 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한다는 시장의 목소리가 높다. 반면 구조조정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구조조정 추진의 주체와 방향성도 분명치 않고, 부처 간 손발도 맞지 않는다. 성공적인 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해법을 찾아봤다. [편집자]


정부의 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되고 있다. 해운업과 조선업이 그 첫 대상이다. 두 업종 모두 심각한 업황 부진으로 해당 기업들 대부분이 유동성 위기에 봉착해있다. 한때 한국 경제를 이끌었던 업종이었던 만큼 이들의 몰락은 우리 경제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그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정부의 목적이다.

하지만 업계와 시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구조조정 시기와 기준에 대한 비판이다. 정부가 이미 위기의 시그널이 이미 있었음에도 뒤늦게 진화에 나선 것은 잘못됐다는 의견이다. 또 급하게 뛰어든 만큼 정교하지 못한 기준을 내세워 구조조정을 단행할 경우 자칫 산업 자체의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 이미 '골든타임'은 지났다


업계와 시장이 정부의 구조조정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는 가장 큰 까닭은 '시기'때문이다. 정부가 해운업과 조선업에 뛰어든 시기가 너무 늦었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생각이다. 특히 해운업과 조선업의 경우 이미 무너지고 있다는 시그널이 수차례 있었음에도 정부가 그때는 외면하다가 이제서야 수습하겠다고 나선 것은 잘못됐다는 지적이다.

업계와 시장 등에서는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에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이 있었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해운업과 조선업 모두 경기 민감 업종인만큼 글로벌 경기 침체가 현실화됐을 때 대비책을 마련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특히 지난 2012년부터 본격화된 우리나라의 수출증가율 감소와 기업들의 매출액이 급속도로 줄어들 당시 정부의 대책이 나왔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총선이 있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총선 등 정치 일정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은행들은 단기실적에 집착하면서 구조조정 시그널을 외면했다. 오히려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들이 이들 업종에 대한 지원을 늘리면서 지금의 부실이 양산됐다는 분석도 있다. 2013년 새 정부에 들어와서도 같은 행태가 반복됐다. 성장률은 더욱 둔화됐고 또 다시 총선 등 정치 일정에 구조조정은 후순위로 밀렸다.

▲ 업계와 시장에서는 한계업종에 대한 구조조정 '골든타임'은 이미 지났다고 보고 있다. 과거 MB정부 시절 해운업과 조선업에 대한 위기 시그널이 있었음에도 이를 외면하다가 뒤늦게야 구조조정에 나선 정부의 행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정부는 이번 총선이 끝나자마자 다급하게 구조조정 카드를 빼들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신속한 반응이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나서 현대상선을 직접 언급하면서 구조조정은 현실화됐다. 업계가 답답해하는 것은 손을 댈 수 있을 때는 손 놓고 있다가 이제서야 뒤늦게 나선 정부의 행태다.

업계 고위 관계자는 "사실 이미 구조조정을 할 수 있는 '골든타임'은 수년 전에 지났다"며 "당시 업계 등에서도 부정적인 시그널이 있다고 정부에 수 차례 건의하고 대비해야한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기다려라', '아직 아니다' 등의 답변 뿐이었다. 그리고는 이제와서 모두 너희가 잘못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구조조정은 이명박 정부에서 금융위기 직후에 바로 시작했어야 했다"면서 "작년 하반기부터 계속해서 구조조정을 강조하면서도 이전 정부와 동일한 행동을 반복하다가 총선 끝나고 나니까 이제 와서 갑자기 더 이상 미룰 상황이 아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굉장히 무책임한 것"이라고 밝혔다.

◇ 실패한 과거에 답이 있다


업계와 시장에서 우려하는 또 다른 한 가지는 과연 정부의 해운업과 조선업에 대한 구조조정이 명확한 기준이 있느냐 여부다. 시간에 쫓기듯 진행되고 있는 현재의 구조조정이 결국 정부의 성과주의에 묻혀 외형만 갖춘 구조조정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냐는 지적이다. 대표적인 예가 과거 정부가 시행했던 해운산업 합리화 조치다.

해운산업 합리화조치는 지난 78년부터 88년까지 진행된 정부 주도의 해운업 구조조정이다. 당시 정부는 '선(先) 합병, 후(後) 지원' 원칙에 따라 업체간 통폐합을 유도한 후 이자감면 등의 금융지원을 실시했다. 하지만 정부의 구조조정은 효과가 없었다. 당시 정부와 업계 모두 원가경쟁력 개선 노력이 없었던데다 불황기에 영업지속 가능 동력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최근 정부가 실시하고 있는 구조조정도 이런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정부가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을 합병하려 했던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일단 합병을 통해 몸집을 줄인 후 금융지원으로 재무 건전성을 확보하려 했던 것이 과거의 그것과 같은 패턴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이런 시도는 업계의 반대에 부딪히면서 무산됐다.

▲ 그래픽=유상연 기자.

결국 정부는 큰 밑그림은 그리되 채권단을 앞세운 구조조정을 실시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그럼에도 불구 업계와 시장의 우려는 여전하다. 지금의 구조조정이 재무 구조조정에만 집중돼있어서다. 정부의 입장에서는 가장 뚜렷한 지표인 재무건전성 확보를 최우선시 한다. 이에 따라 채권단을 앞세워 해당 기업들의 비용절감과 더불어 채권단이 마련한 기준 준수를 종용하고 있다.

하지만 업체들의 입장은 다르다. 재무건전성 확보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사업 경쟁력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구조조정이 진행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과거 해운산업 합리화 실패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불황기에 영업을 지속 가능토록 하는 동력에 대한 고민이 전무하다는 점을 꼽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재무지표 개선에 주력하는 것은 가장 밖으로 드러나는 요소이기 때문"이라며 "사업성을 면밀히 따져 본연의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도록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금융연구원도 최근 보고서에서 "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단순히 기업의 재무상태 변화만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사업성을 면밀히 분석해야한다"며 "경쟁력이 없는 사업은 과감히 정리하고 가능성이 보이는 새로운 사업은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등의 ‘사업구조조정’의 역할이 더욱 강조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 경쟁력 확보가 최우선


시장에서는 정부의 구조조정 방식이 이제는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오로지 구조조정 전과 후의 재무지표 변화에만 주목하는 것은 구태의연한 방식이라는 것이다. 정부는 해당 업종이 자생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하는 큰 그림을 그릴 필요가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한 민간 연구기관 연구원은 "정부가 구조조정에 나서면 재무지표는 당연히 좋아질 수밖에 없다"며 "재무지표에만 얽매이는 것은 과거의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보스톤 컨설팅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시장이 반전되면 성과가 개선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밝혔다. 이는 곧 '성수기의 실종'을 의미한다. 보스톤 컨설팅은 해운업, 조선업 등에 대해 "업황의 사이클은 존재하지만 반전되더라도 과거의 호황을 기대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업 자체의 노력과 더불어 산업의 경쟁력 강화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업계에서는 해운업과 조선업 자체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다양한 방안들을 내놓고 있다. 특히 해운업의 경우 다각도로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우선 해운업체 지원의 전제조건인 부채비율 400% 이하와 같은 비현실적인 기준을 없애야한다고 보고 있다. 아울러 해외 정부들과 마찬가지로 불황에 빠진 해운업체에 대해 일정 부분 자금 지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 업계와 시장에서는 정부의 구조조정에 대해 재무적인 수치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해당 산업의 미래를 내다보는 '대계(大計)'를 그리는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와 함께 일본과 같이 정부의 해당 부처가 참여하는 ‘해운조선정책조정위원회’와 같은 협의 기구를 구성해 앞으로 20년 뒤를 내다보는 정책을 마련, 업체들이 수긍하고 동참할 수 있는 구조가 필수적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를 통해 정부가 취약업종을 고사시키는 것이 아닌 오랫동안 자생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선업에 대해서는 시선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많다. 포화 상태인 고부가가치 선박에 대한 집중에서 벗어나 매년 일정한 규모의 발주가 이뤄지고 있는 중소형 선박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또 중소 조선소로의 인력 재배치와 함께 중국, 일본 등과 같이 자국 해운사와의 연계 강화 등도 고려해볼 만한 전략이다. 아울러 정부 주도의 상설 설계 지원센터를 운영해 한국 조선업 전반에 대한 경쟁력을 제고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박무현 하나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조선업 구조조정은 경쟁력을 한층 더 높이고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하며 지속 가능한 사업모델을 만드는데 주안점을 둬야한다"면서 "단순한 통폐합 전략은 한국 조선업의 경쟁력을 후퇴시키는 계기가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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