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스토리]현대차, 억지로 겨자를 삼킨 까닭

  • 2017.02.03(금) 14:06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일 강경 정책들을 내놓고 있습니다. 이미 예상은 했었던 일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들은 생각보다 빨리, 더 강력하게 추진되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를 기치로 내걸었습니다. 강력한 미국을 건설하겠다는 의지입니다.

목적이 명확한 정책들에 트럼프만의 고집과 추진력이 더해지며 '트럼프 리스크'는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전세계 정부와 글로벌 기업들이 트럼프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혹시라도 불똥이 튀지는 않을지 전전긍긍하고 있는 셈이죠. 누가 뭐래도 미국의 힘은 무시할 수 없으니까요.

국내 기업들도 미국 새 정부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자동차 업계가 대표적입니다. 그중에서도 현대차의 고민이 큽니다. 미국 시장은 현대차에게 매우 중요한 시장입니다. 오늘날 현대차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미국과 중국 시장에서의 성공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현대차가 미국 현지에 공장을 건설하고 전략 차종들을 생산, 투입하는 것도 그만큼 미국 시장이 중요해서입니다. 현대차는 작년 미국 시장에서 77만5000여 대를 판매했습니다. 해외 시장 중에서는 중국과 함꼐 가장 중요한 곳입니다. 따라서 미국의 정책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 현대차 미국 앨라배마 공장

현대차는 최근 미국에 향후 5년간 31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현재 환율을 기준으로 환산하면 약 3조5000억원 가량입니다. 현대차는 갑자기 왜 이렇게 큰 돈을 미국에 투자하겠다고 나섰을까요? 가뜩이나 수년째 실적이 하락하고 있어 우려가 큰 상황인데 말이죠. 여기에 대규모 투자까지 단행하겠다니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현대차의 대규모 투자 선언 이면에는 사실 말못할 사정이 있습니다. 어떤 기업이든 해외 시장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할 때에는 면밀한 검토와 분석을 합니다. 투자를 통해 얼마나 뽑아낼 수 있을 지를 살피고 승산이 있다고 판단이 서면 나서는 것이 통상적입니다. 하지만 현대차의 미국 투자 결정에는 이런 통상적인 절차가 생략됐습니다.

현대차가 기업의 통상적인 투자 결정 과정을 생략하고 어찌보면 즉흥적으로도 보일 수 있을 만한 결정을 한 까닭은 바로 트럼프 때문입니다. 트럼프는 취임과 동시에 자동차 업체들을 압박하기 시작했습니다. 자국 내 빅3 업체들부터 시작해 일본의 도요타 등이 백기투항했습니다. 모두들 대규모 투자 계획을 내놨죠.

사태를 지켜보던 현대차도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특히 작년 본격 가동에 들어간 기아차의 멕시코 공장도 마음에 걸렸습니다. 트럼프는 멕시코에 대해 적대적입니다. 이 때문에 많은 자동차 업체들이 멕시코에 투자하려던 계획을 접고 미국 투자에 나겠다고 밝힌 상황입니다.

현대차도 마찬가지입니다. 트럼프가 직접 현대차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본보기로 여러 업체들의 항복을 받아낸 이상 현대차 차례가 돌아오는 것은 시간 문제였습니다. 현대차로서도 사실 무언의 압박을 견뎌낼 재간이 없었던 겁니다. 일종의 '성의'를 보인 것으로 봐도 될 듯 싶습니다. 결국 '눈치보기'인 셈입니다.

현대차의 이런 눈치보기는 이번 미국 사례가 처음이 아닙니다. 현대차는 2015년 중국 4공장 착공에 들어갔습니다. 늘어나는 중국 수요를 잡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4공장 착공지역이 오랜 기간 공을 들여왔던 서부의 충칭(重慶)이 아닌 베이징공장 근처의 창저우(滄州)였습니다.

▲ 현대차는 지난 2015년 중국 4공장으로 허베이성 창저우에 공장을 착공했다. 당초 4공장 예정지로는 충칭이 거론됐지만 허베이성의 강력한 반발로 결국 계획에도 없던 창저우 공장을 지었다. 허베이성은 그제서야 현대차의 충칭공장 건설을 허용했다.

당시 업계에서는 의아해했습니다. 현대차는 이미 베이징에 공장을 3곳이나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근처에 또 공장을 짓겠다고 나선 배경이 궁금하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마침 중국은 서부 대개발에 나선 상황이라 충칭은 아직 자동차 수요가 많은 서부를 공략할 최적지였습니다. 그런데 충칭이 아니라 창저우였습니다.

현대차가 창저우를 선택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사실 창저우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충칭이 필요해서 창저우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맞을 겁니다. 현대차가 충칭으로 가려할때 가장 많이 반대한 곳이 바로 창저우가 있는 허베이성이었습니다. 이미 베이징공장이 허베이성에 위치하고 있음에도 허베이성 입장에서는 현대차의 이탈이 달갑지 않았습니다.

현대차 공장은 허베이성과 같은 지방 정부 입장에서는 복덩어리입니다. 고용은 물론 세수 확보에도 큰 도움을 줍니다.이런 복덩어리가 충칭으로 가겠다고 하니 허베이성이 반발했던 겁니다. 최종 승인을 해줘야하는 중앙정부도 허베이성의 이런 반발을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차일피일 미루며 승인을 내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현대차는 허베이성을 달래기 위한 방편으로 창저우 공장 카드를 내놨고 그제서야 허베이성은 현대차의 충칭행을 허용했습니다. 목적지인 충칭으로 가기 위해 현대차는 돌고 돌아 막대한 비용을 치러야 했던 셈입니다.

현대차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비록 최근에는 판매 부진과 실적 하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자동차 기업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차가 해외 시장 개척을 위해 이처럼 유무형의 비용을 치르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현대차가 '울며 겨자 먹기 투자'를 하는 까닭은 분명합니다. 해외 시장을 확대하고 개척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때문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도, 때론 해당 국가의 정부가 불합리한 요구를 해와도 묵묵히 견뎌내는 겁니다. 여기에는 해외 시장을 개척하고 확대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현대차의 절박함이 묻어있습니다. 이것이 현대차가 '겨자'를 삼키는 이유입니다.

업계 일각에서는 현대차의 미국 시장에 대한 대규모 투자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무모하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질질 끌려다닌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하지만 적어도 현대차가 해외시장 개척을 위해 견뎌내고 있는 노력만큼은 폄훼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만일 그것마저 무너진다면 현대차가 지금껏 억지로 '겨자'를 삼켰던 것들이 모두 무의미해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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