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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차이니즘]④제조강국 넘보는 14억 대륙

  • 2017.02.09(목) 11:05

中, 日·獨 의존 중간재 원천기술 '국산화' 성과
'세계조립공장' 벗어나 완결적 '홍색공급망' 구축

"볼펜심(위안주비 비터우, 圓珠筆 筆頭) 자체 개발 성공"

 

지난달 중국 관영 신화통신과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人民日報) 등 현지 주요매체들은 이런 제목을 붙인 기사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고작 볼펜 하나에 이렇게 호들갑인가 하는 외부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20여년 쾌속 성장이 점차 둔화되고 있는 중국 제조업계에 이 사건이 주는 의미는 작지 않다.

 

중국은 3000여개 공장에서 매년 380억개의 볼펜을 생산한다. 전세계 수요의 80%를 도맡는 규모다. 하지만 조립이 전부였다. 볼펜심에 들어가는 고강도 스테인리스강 '볼'은 자국 기술로 만들지 못했다. 이 때문에 핵심 부품 90%를 일본과 독일 등에서 수입해 왔다. 개당 2000원짜리 볼펜을 팔아도 중국에 떨어지는 부가가치는 5%(100원)에 불과했던 게 현실이었다.

 

"세계 최대 철강 생산국이 볼펜 하나도 못 만드는가!" 1년여 전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의 한탄은 이런 배경 속에서 나왔다. '볼펜'은 규모만 크고 내실이 없는 중국 제조업의 한계를 상징했다. 훙인싱(洪銀興) 난징대 경제학과 교수는 "볼펜심 개발은 제조업 가치사슬을 대륙 안에서 완결하는 '홍색 공급망(Red Supply Chain)' 구축의 신호탄을 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 볼펜 생산 자립..'다음 수순은'

 

중국의 '핵심 기술 국산화'는 볼펜심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는 2025년까지 핵심 소재와 부품의 70%를 중국산으로 채우겠다는 '중국제조 2025'의 한 단면일 뿐이다.

 

볼펜심만 보더라도 그렇다. 신화통신은 "이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20개가 넘는 공정을 거쳐야 한다"고 설명했다. 볼펜심 내부에는 높낮이가 다른 층과 잉크를 끌어들이는 5개의 통로가 있다. 이 부분을 제작할 때는 1000분의 1mm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다. 특히 볼펜심의 볼은 지름이 0.3~0.4㎜밖에 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높은 정밀도와 최고의 품질을 가진 스테인리스 원자재를 요구한다.

 

이런 기술력을 갖추지 못했던 중국은 2011년부터 볼펜심 제작에 대한 공략을 시작했다. 중국 최대 스테인리스강 생산업체 타이위안(太原)강철은 5년여 연구개발(R&D) 과정을 거쳐 2.3㎜의 일정한 두께로 사출되는 볼펜볼용 스테인리스강선 합금에 성공했다. 중국 최대 볼펜 제조업체로 볼펜심 개발에도 참여한 베이파(貝發)그룹은 이를 공급받아 곧바로 완전히 국산화한 볼펜을 양산할 채비를 갖췄다.

 

인민일보는 "작은 볼펜심을 만드는 기술이지만 제조업 대표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기술을 국산화 한 것"이라며 "과학기술로 공법을 발전시키고 상품의 질을 높여 인민들의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제조 대국'에서 '제조 강국'으로 발전하는 중국을 보여주는 일"이라고 자평했다.

 

핵심기술 국산화라는 변화는 '산업의 쌀' 반도체 분야에서 대표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들이 강점을 가진 분야다. 세계에서 가장 큰 반도체 소비국이지만, 이를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중국이 자체 생산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은 현재 20%인데, 이를 2020년 40%, 2025년 70%까지 높인다는 게 중국의 '반도체 굴기(屈起)'다. 이를 위해 중국 정부는 향후 10년간 1조위안(약 170조원)을 반도체 생산 설비에 투자한다는 계획도 내놨다.

 

 

◇ 대륙내 완결형 가치사슬 '홍색공급망'

 

중국은 30년이라는 긴 호흡으로 제조업 재편을 구상했다. 1단계(2015~2025년) 제3그룹(영국·프랑스·한국) 추월, 2단계(2025~2035년) 제2그룹(독일·일본) 추월, 3단계(2035~2045년) 제1그룹(미국) 진입이라는 큰 그림이다. 2015년 발표한 '중국제조 2025'는 3단계 계획 중 첫 10년에 대한 전략이다.

 

우선 제조업을 노동·자원집약형 전통산업에서 기술집약형 스마트산업으로 탈바꿈한다는 게 2025년까지의 목표다. 품질·기술·이윤 등 질적인 변화를 통해 '질적 제조강국'이 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5대 중점 프로젝트로 ▲국가 제조업혁신센터 구축 ▲스마트 제조업 육성 ▲공업 기초역량 강화 ▲첨단장비의 혁신 ▲친환경 제조업 육성 등을 추진 중이다.

 

가장 먼저 나타나는 변화가 '홍색공급망' 구축이다. 세계 시장에서 국가 간 생산 과정 분담 속에 가공과 조립 위탁을 맡았던 중국이 생산 전반을 국산화 해 '자기 완결적 공급체인'을 확보하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은 가공무역의 부가가치가 낮다고 판단해 2000년대 초반부터는 산업구조 고도화를 위한 가공무역 억제 조치로 중간재의 수입 대체 전략을 추구해 왔다.

 

실제로 최근 중국의 부품 수입 증가율은 2010년 이후 하락 추세다. 지난해 중국의 부품 수입총액은 전년 대비 3.0% 줄어든 5808억달러를 기록했다. 중간재 자급자족 비율이 높아지면서 수입 중간재의 재수출 비율은 2011년 47.2%로 1995년 대비 11.1%포인트 줄었다. 중국 제조업이 조립·가공 역할을 줄이는 반면 중간재 생산까지 몫을 넓힌다는 의미다.

 

한국 역시 영향권 안에 있다. 한중 수교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돼 왔던 우리의 대중 수출이 2013년을 정점으로 하향 추세로 돌아선 것도 홍색공급망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우리 기업의 대중 수출이 중간재 중심으로 구성돼 있어 중국의 자급률이 상승하면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다. 향후 중국의 중간재 자급률이 1% 상승하면 우리의 대중국 수출은 8.4%, 국내총생산(GDP)은 0.5% 감소한다는 분석도 있다.

 

 

◇ 자급자족 위한 '공급측 개혁' 올해부터 본격화

 

작년부터 본격화된 중국의 '공급측 개혁'도 올해 한층 심화될 전망이다. 작년까지는 과잉공급 해소와 총수요 확대에 주력했다면 올해부터는 실질적인 공급 시스템 구조 개혁을 본격화한다는 게 중국 산업계를 바라보는 안팎의 목소리다.

 

공급측 개혁이란 개념이 처음 제시된 2015년 말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는 "적절한 총수요 확대와 함께 공급구조 개혁 강화"라는 구호가 걸렸다. 하지만 작년 말 같은 회의에서 이 구호는 "공급구조 개혁 추진을 중심으로 적절한 총수요 확대"로 바뀌었다. 홍창표 코트라 홍콩무역관장은 "두 개념의 순서가 바뀌었다는 것은 곧 정책의 우선순위가 달라졌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륙 안에서는 공급측 개혁을 표방한 중국의 산업 재편이 절실한 숙제라는 목소리가 많다. 훙인싱(洪銀興) 난징대 교수는 "공급측 개혁은 경제발전 신창타이(新常態, 뉴 노멀)라는 흐름에 부합하면서도 경제의 지속적이고 건강한 발전을 위한 필요한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 경제의 구조 전환과 발전 과정에서 발생되는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국 내 기업과 소비자의 니즈를 만족시킬 만한 상품과 서비스가 제공돼야 한다"며 "고품질의 수요에 대한 욕구를 맞추기 위해 효율적인 기업 장려 시스템을 완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중국의 산업 재편 과정을 바라보는 서방의 시선에는 심심찮은 경계감이 서려있다. 중국의 볼펜심 생산 자립에 대해, 블룸버그는 "중국은 국유기업에 투자함으로써 경쟁사의 도전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세계 시장에서 볼펜심의 독점화를 이루려 하고 있다"며 "경제적으로 적합하지 않은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밖에서는 세계화를 수호하는 척하고 있지만, 정작 그의 민족주의적 정책은 국유기업을 선호한다"고 꼬집었다. 시 주석이 최근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에 참여해 세계화와 자유무역을 강조했지만 국내에선 시장 폐쇄적 방식의 공급측 개혁으로 자국 보호주의를 강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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