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도시바의 몰락]②돈 앞에 '눈 감은' 혁신의 아이콘

  • 2017.03.08(수) 14:04

노트북·낸드플래시 등 '세계최초' 타이틀
분식회계·원전부실로 140여년 역사 흔들

1875년 일본 도쿄 긴자에 설립한 전신기 생산 공장을 모태로 140여년의 역사를 이어온 도시바가 벼랑끝 위기에 몰렸다. 2015년 대규모 분식회계로 충격을 안겨준데 이어 이번에는 미국 원전사업 부실 여파로 알짜사업인 반도체사업을 팔아야하는 처지에 빠졌다. 도시바에서 비롯된 반도체시장의 지형변화와 이 같은 일이 벌어진 원인을 살펴봤다. [편집자]
 

 

"지금과 같은 사태를 낳은 것을 엄숙히 받아들이고 모든 주주분들에게 사죄의 말씀 드립니다. 경영책임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오늘부로 사장직에서 사임합니다."

2015년 7월 21일. 다나카 히사오(田中久雄) 당시 도시바 사장이 취재진 앞에 10여초간 머리를 숙였다. 카메라 플래시가 정신없이 터졌다. 사임의 원인은 분식회계였다. 도시바는 대규모 공사 9건을 진행하면서 7년 동안 예상손실액을 반영하지 않아 1562억엔(1조6000억원)의 이익을 부풀렸다는 사실을 실토했다.

 

이 일을 계기로 전임 사장으로서 회사에 남아 자문역할을 하던 니시다 아츠토시(西田厚聰)와 사사키 노리오(佐々木則夫)가 회사에서 완전히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전현직 최고경영자 3명이 동반 사임하는 유례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1년 반이 흐른 올해 2월 14일. 이번에는 다나카 히사오 사장의 후임인 쓰나가와 사토시(綱川智) 도시바 사장이 취재진 앞에 고개를 숙였다. 쓰나가와 사장은 "미국 원자력 발전소 사업에서 거액의 손실이 발생해 이를 정확하게 반영하기 위해 2016년 결산 공표를 한 달 늦추겠다"며 "모든 분들께 폐를 끼쳐 대단히 죄송하다"고 밝혔다. 이 일로 시가 시게노리(志賀重範) 회장도 사임하기에 이르렀다.
 


분식회계 사태 이후 재기를 도모하던 도시바에 감춰진 비밀이 또 있다는 사실에 일본인들은 충격에 빠졌다.

 

도쿄의 한 대기업 무역상사에 다니는 와다 타쿠마(30) 씨는 "도시바는 일본의 대표적인 대기업"이라며 "도시바에서 이런 문제가 일어났다면 일본 기업 어디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것 아니겠냐"며 허탈감을 토로했다.

일본 도시바의 매출 규모는 우리나라의 LG전자와 비슷하다. 2015년 도시바는 5조6686억엔(57조원·LG전자 56조원)의 매출을 올렸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도시바는 일본 기업순위 17위에 올라있다. 전세계 종업원수는 18만7800명에 달한다.

도시바의 주력사업은 원자력 발전소와 반도체 메모리 사업이다. 원전 사업을 포함해 화력, 수력 발전소 등 각종 사회 인프라 사업 부문 매출액이 전체 매출액의 34%, 반도체 메모리를 포함한 전자기기 사업 영역이 26%를 차지한다. 나머지는 엘리베이터, 조명, 빌딩 설비 사업을 포함한 커뮤니티 솔루션 부문과 ICT사업을 비롯해 유통·금융 사업, 시설 지원 사업 등으로 구성돼 있다.

 


도시바가 이런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게 된 것은 1990년대부터다. 도시바는 오디오 개발사업을 정리하고 반도체 사업에 힘을 쏟는 등 '선택과 집중' 전략을 채택했다. 그 결과 개인용 컴퓨터 사업이 확장됐고 이에 따라 메모리 반도체 사업도 몸집을 불려 나갔다. 2000년대 중반에는 사사키 노리오 사장을 중심으로 원전 사업 분야에 투자를 늘려나갔다.

도시바는 일본 경제에 있어 중추적 역할을 한 기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쿄시바우라전기(東京芝浦電気) 주식회사'의 약칭인 도시바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레이더와 같은 군수물자를 만들어 성장했다. 미군의 공습으로 공장이 전소되며 극심한 어려움에 빠지기도 했지만 1950년대 일본 경제 호황으로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했다. 이 시기에 일본 최초 전기밥솥과 전자레인지를 내놓기도 했다.

 

혁신의 상징과도 같은 도시바는 '소니' 창업자인 이부카 마사루(井深大)가 도시바 입사시험에 응시했다가 떨어진 일화로도 유명하다. 도시바는 1985년 세계 최초로 노트북을 선보였고 1987년 낸드플래시 메모리를 발명했다. 2010년에는 안경없이 3D영상을 시청할 수 있는 LCD TV를 세계 최초로 상품화하는 등 최근까지도 신기록을 갱신해왔다.

도시바의 혁신성은 도시바의 창업 정신과 맞닿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도시바의 창업자는 '일본의 천재발명가'로 불리는 다나카 히사시게(田中久重)와 '일본 전기의 아버지' 후지오카 이치스케(藤岡市助)다. 다나카는 증기선과 증기기관차, 대포 등을 만드는 '다나카제조소'(1875년)를 설립했고, 후지오카는 백열전구를 주로 만드는 '하쿠네츠샤(1890년)'를 세웠다. 이 두 회사가 1939년 합병해 탄생한 게 지금의 도시바다.

 

그런 도시바가 전례없는 위기를 맞았다. 작년 3월에는 의료기기사업과 백색가전사업 일부를 매각했다. 지난달 24일에는 임원회의를 열고 도시바를 지탱해 온 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분사시키고 지분 50% 이상을 매각한다고 밝혔다. 미국에서의 원전사업은 파산절차를 고려할 정도로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도시바를 지탱해온 커다란 기둥에 금이 간 원인은 2015년 분식회계 조사결과에서 엿볼 수 있다. 이익 지상주의, 상사의 지시를 거부하기 힘든 조직문화, 허술한 내부통제가 그 원인이었다는 것이다. 회사의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켜켜이 쌓인 앙금이 한꺼번에 폭발하면서 20세기를 대표하는 혁신의 주인공이 침몰직전 상황으로 몰렸다.

 

naver daum
SNS 로그인
naver
facebook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