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도시바의 몰락]③분식회계로 드러난 민낯

  • 2017.03.09(목) 14:59

실적압박에 7년간 영업이익 1.5조 부풀려 '신뢰추락'
상명하복·파벌싸움 비뚫어진 조직문화 '화(禍)' 불러

1875년 일본 도쿄 긴자에 설립한 전신기 생산 공장을 모태로 140여년의 역사를 이어온 도시바가 벼랑끝 위기에 몰렸다. 2015년 대규모 분식회계로 충격을 안겨준데 이어 이번에는 미국 원전사업 부실 여파로 알짜사업인 반도체사업을 팔아야하는 처지에 빠졌다. 도시바에서 비롯된 반도체시장의 지형변화와 이 같은 일이 벌어진 원인을 살펴봤다. [편집자]

 

 

”도대체 뭘 설명하고 있는 겁니까!"

2015년 9월30일. 도쿄 옆 지바(千葉) 시에서 열린 도시바의 주주총회에서 한 주주가 고성을 질렀다. 이날 주총은 원래 6월에 열려야 했지만 결산이 늦어져 연기를 거듭하다 가까스로 개최됐다. 주총이 열리기 전인 7월 중순 다나카 히사오 도시바 사장이 "2014년 결산 배당액은 0원"이라고 밝혀 주주들의 불만이 폭발 직전이었다.

2015년은 도시바 역사상 최악의 해나 다름 없었다. 그해 2월12일 일본증권거래감시위원회는 도시바 내부고발자의 제보를 토대로 회사측에 인프라 사업 관련 회계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원가를 낮춰 이익을 부풀린 분식혐의가 짙다는 이유에서다.

도시바는 자체적으로 '특별조사위원회'라는 내부 조사팀을 꾸렸지만 팔은 안으로 굽었다. 위원회는 인프라 사업 내 회계 처리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내는 데 그치고 조사에 큰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비난 여론이 빗발치자 도시바는 5월8일 변호사와 회계사 등 외부인으로 구성된 '제3자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조사는 거침없었다. 제3자위원회가 꾸려진지 하루도 되지 않아 도시바는 "인프라 관련사업에서 원가총액이 과도하게 축소됐다"고 인정했다.

 

도시바의 주가는 곧바로 하한가를 찍었다. 며칠 뒤 도시바는 전력·사회인프라 등의 사업에서 모두 9건의 회계오류를 발견했다며 회계상 잘못 처리된 금액은 모두 500억엔 정도라고 밝혔다.

◇ 1.5조원 규모 분식회계 탄로

하지만 두달 뒤인 7월21일 제3자위원회는 도시바의 자진고백 액수보다 3배나 많은 1518억엔(1조5300억원)의 이익이 7년간 부풀려져 있다고 발표해 일본을 충격에 빠뜨렸다. 도시바가 자체적으로 조사해 적발해 낸 오류까지 합치면 과대계상된 이익은 1562억엔(1조5700억원)에 달했다.

더 큰 문제는 분식회계가 조직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제3자위원회 위원장 우에다 코이치(上田廣一) 변호사는 "경영진이 관여해 그룹 조직 차원에서 부적절한 회계 처리가 이뤄졌다는 것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한 책임으로 다나카 히사오(田中 久雄) 당시 사장을 포함한 경영진 8명이 사임했다. 도시바는 경영쇄신위원회를 만들고 임원들 보수를 삭감하겠다고 했다.

도시바의 분식이 수면 위로 드러나자 지금까지 도시바가 작성한 회계 장부내용에 모두 오류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여기저기서 제기되기 시작했다. 원가를 축소해 책정하는 방식은 각종 인프라 사업 뿐만 아니라 전자기기 제조 사업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도시바에 대한 신뢰는 급전 직하했다.

당시 일본증권거래소 이사장이던 사이토 아츠시(斉藤 惇) 씨는 "결산 체크를 이렇게 엉성하게 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며 "솔직히 말해 너무 창피하다"고 말했다. 도시바의 내부 관리체제가 일제히 도마 위에 올랐다.

 

▲ 다나카 히사오 도시바 사장은 2015년 7월 21일 1518억엔 규모의 분식회계가 드러나자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한다.

 

◇ 실적압박에 상명하복까지..망가진 내부통제

일반적으로 기업은 이러한 분식회계가 일어나지 않도록 내부통제 시스템을 마련한다. 도시바도 마찬가지였다. 과거 도시바는 일본에서 거버넌스 혁명이 가장 빨랐던 회사 중 하나로서 2003년 일본 상법 개정 이후에는 집행부와 감독부를 엄격하게 분리해 운영해 왔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런 도시바에서 어떻게 분식회계 사건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힌트는 제3자위원회가 발표한 보고서에 있다. 보고서에는 도시바의 기업문화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금융위기로 전세계가 어려움에 빠진 2008년 12월 시모미츠 히데지로(下光 秀次郎) 당시 PC사업부문 사장이 니시다 아츠토시(西田 厚聡) 사장에게 PC사업에서 184억엔 규모의 영업적자가 발생했다고 보고하자, 니시다 사장은 이른바 '납품가 후려치기'를 하라고 주문했다.

이러한 도시바의 실적압박은 '챌린지(도전)'라는 이름으로 암묵적으로 합리화됐다. 사흘간 120억엔의 영업이익을 창출하라는 무리한 지시가 떨어져도 그 지시를 어떻게 해서든 이뤄내야 하는 것이 도시바 조직문화였다. 상명하복이 일상화되고 지시에 반기를 들거나 이견을 내놓으면 '죄인'으로 낙인찍혔다.

제3자위원회는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을 비롯해 태국에서 일어난 홍수, 엔고 현상 등 경영 환경이 불투명한 상황에서도 이익을 내야 한다는 경영진의 과욕이 문제를 일으켰다"고 지적했다.

 


◇ 질긴 파벌싸움의 끝은 '파국'

분식회계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었다. 도시바에는 더욱 본질적인 문제가 숨어있었다. 뿌리깊게 박혀있는 파벌 문화다.

도시바는 1990년대부터 인프라 사업과 반도체 사업을 두 축으로 삼아 성장해왔다. 그런데 이 두 사업의 성격이 제각각이다. 인프라 사업은 호흡이 길다. 길게는 40년까지도 소요되는 사업이다. 반면, 반도체 사업은 당장 내년에 어떻게 시장상황이 바뀔지 예측하기조차 어렵다. 도시바로서는 이 두 개 사업을 잘 운영해내는 것이 관건이었다.

그렇다 보니 이 두 사업 간 파벌이 형성됐다. 실제 역대 도시바 사장들도 각 파벌에서 한 명씩 번갈아가면서 배출되는 구조였다.

원전 인프라 사업 내 사사키 노리오 전 회장을 필두로 하는 '사사키 파'와 PC사업을 이끄는 니시다 아츠토시 전 사장 중심의 '니시다 파'가 대표적이다. 2013년 신임 사장 취임 기자회견장에서 사사키 당시 회장은 자신의 후임 니시다 전 사장을 가리켜 "한 분야만 해온 사람은 회사 전체 사업을 관할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도시바 내 파벌 갈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예다.

오오제키 아케오(大関 暁夫) 기업컨설턴트는 "이런 파벌 다툼이 생기게 되면, 밖을 향해야 하는 기업 에너지가 기업 안으로 집중돼 조직에 불필요한 힘이 들어가게 된다"며 "때로는 합리적인 사고를 저해시켜 경영을 어렵게 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2015년 11월, 도시바는 니시다 씨와 사사키 씨, 다나카 씨 역대 사장 3명과 분식회계 당시 최고재무책임자를 지낸 무라오카 후미오(村岡 富美夫), 쿠보 마코토(久保 誠) 두 전 부회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회사에 과도한 손해를 입혔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들은 모두 파벌싸움과 상명하복의 기업문화의 중심에 서있던 인물들이다. 법원은 이들 5명에게 과징금 32억엔을 내라는 과징금납부명령을 선고했다.

naver daum
SNS 로그인
naver
facebook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