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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의 도시바 인수전 새 변수…日펀드의 노림수

  • 2017.04.11(화) 18:38

[日 도시바 반도체 인수전]③
민관 5조원 규모 펀드 조성…기술·인력유출 봉쇄목적
제2의 엘피다 우려도…美기업과 손잡을 가능성 촉각

"엘피다메모리를 잃으면 하이테크 산업에서 일본이 누리던 지위가 사라진다."

지난 2009년 일본 정부는 경영부실에 시달리는 엘피다에 300억엔(약 3000억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하기로 결정하며 이 같은 논리를 댔다. 엘피다는 일본 유일의 D램 제조회사로 히타치제작소와 일본전기가 서로의 사업부를 통폐합해 만들어졌다.

그로부터 3년 뒤, 엘피다는 6조원의 부채를 갚지 못해 파산보호신청을 했다. 일본 정부가 그사이 3조원 가까운 돈을 쏟아부었지만 허사였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었다는 비판이 빗발쳤다. 당시 매물로 나온 엘피다는 이듬해 미국의 마이크론테크놀로지에 완전히 인수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이어 세계 3위였던 메모리 강자가 한순간 사라졌다. 


현재 진행되는 일본 도시바메모리 매각도 엘피다 사태와 판박이처럼 닮았다. 지난 8일 니혼게이자이신문과 아사히신문 등 일본 주요 언론들은 일본 경제산업성이 5000억엔 규모의 펀드 조성을 목표로 일본 기업들에게 도시바 메모리 주식 인수를 위한 출자를 권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경제산업성이 제시한 목표금액은 우리돈 5조원에 달한다. 일본 대기업들이 기업당 100억엔(약 1000억원)씩 출자하면 산업혁신기구가 국책은행인 일본정책투자은행과 손잡고 나머지 자금을 보태는 형식이다. 현재 도시바의 거래업체인 후지쯔와 후지필름홀딩스가 출자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혁신기구는 경제산업성이 2009년 출자해 세운 민관펀드 운용회사다. 이 기구는 아베 총리 2기 내각이 출범한 뒤 큰 기업 이슈가 있을 때마다 단골손님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나라엔 일본 굴지의 기업 샤프가 대만 홍하이에 매각되려고 했을 때 일본 측 대표로 전면에 나선 곳으로 잘 알려져있다.   
 
전세계 모바일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삼성에 이어 세계 2위의 점유율을 기록 중인 '일본디스플레이(JDI)'도 2012년 출범할 때 산업혁신기구로부터 2000억엔을 출자받았다. JDI는 소니와 도시바, 히타치가 각각의 디스플레이 사업부를 통폐합해 발족한 회사다.

일본 정부의 뜻을 대변하는 이 기구가 이번에는 도시바 구원투수로 나서려고 몸을 풀고 있다. 2009년과 다른 게 있다면 이번엔 외견상 일본 기업들을 앞세웠다는 점이다.

올해 초만 해도 산업혁신기구는 도시바 구하기에 부정적이었다. 시가 토시유키 산업혁신기구 회장은 지난 2월 일본주간지 도요게이자이와 인터뷰에서 "도시바 구제를 고려하고 있지 않다"며 "산업혁신기구는 구제 기구가 아니다"라고 명확히 선을 그었다. 도시바에 대한 출자는 산업혁신기구 본연의 업무와 거리가 있다는 얘기다. 자칫 제2의 엘피다가 될 수 있다는 걱정도 컸다.

이랬던 입장이 미묘하게 바뀐 건 지난달부터다. 닛케이비즈니스는 "(정부가) 특정기업의 구제에 나설 수는 없지만 방위와 연관된 기술문제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며 경제산업성 소속 고위 관계자의 발언을 전했다. 일본 정부가 도시바메모리를 경제이슈라기보다 안보이슈에 무게를 두고 접근하고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실제 쓰나가와 사토시 도시바 사장은 지난달 14일 기자회견에서 "반도체는 국가의 안전과도 관련된 만큼 그것을 의식해 상대방을 선택하겠다"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도시바메모리는 일본내 기업(자본)이나 일본과 정치경제적으로 긴밀한 관계인 미국계 기업에 팔릴 가능성이 높다.

일본 정부는 도시바메모리의 주식을 일정비율 취득해 이사회에서 발언권을 획득, 일본 기술과 인재가 해외로 유출되는 것을 막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구상이 실현되려면 넘어야할 산이 여럿 남아있다. 우선 정부 개입에 대한 일본내 부정적 여론을 달래야한다. 마치다 테츠 경제평론가는 주간지 겐다이비즈니스에서 "(도시바 경영진에게) 경영 책임을 먼저 물어야 한다”며 “기업의 생사는 시장 논리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군다나 애초에 도시바가 필요로 했던 2조엔(20조원)을 훨씬 상회하는 3조엔(30조원)을 입찰가격으로 제시한 중국 홍하이 그룹에 맞설 재력있는 일본내 기업을 찾기가 어렵다는 현실론도 있다.

반도체 산업은 막대한 설비투자를 꾸준히 해야하고 트렌드 변화 속도가 빨라 리스크가 큰 특징을 지니고 있다. 웬만한 기업들로선 뛰어들 엄두를 내기 힘든 업종이라는 얘기다. 실제 지난달 예비입찰에 참여한 기업 중 일본 국내 기업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이 때문에 도시바메모리가 일본과 미국의 연합세력으로 넘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속속 나온다. 현재까지 유력 인수후보로는 미국 브로드컴과 웨스턴디지털이 꼽히고 있다. 한국에선 SK하이닉스가 출사표를 던졌다.
 
도시바는 "매력적인 제안이 있으면 1차 입찰이 지난 시점에서도 참가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매각주체인 도시바와 한·중·미 인수후보들, 여기에 일본 정부까지 가세해 도시바메모리를 둘러싼 수싸움이 더욱 치열해질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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