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년 효성史 조석래 전 회장 경영일선 퇴진

  • 2017.07.14(금) 14:20

1966년 몸담은 이래 글로벌 기업 반열에 올린 주역
고령 등 이유…명예회장으로만 남아 자문 역할 예정

재계 25위 효성의 조석래(82) 전 회장이 경영일선에서 퇴진했다. 효성을 글로벌기업으로 성장시킨 주역으로서, 창업주인 부친의 부름을 받고 몸담은 이래 효성의 역사와 함께 한지 51년만이다. 
 

 

▲ 조석래 전 효성 회장


효성은 14일 조석래 전 회장이 대표이사에서 퇴임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지난해 말 장남 조현준 사장에게 회장 자리를 물려준 데 이어 대표 자리에서 내려옴으로써 사실상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뗀다. 조 전 회장은 앞으로 명예회장으로서 회사의 자문 역할 등을 수행할 예정이다. 

효성 관계자는 “조 전 회장은 그간 고령에도 불구하고 효성의 경영안정화를 위해 대표이사로서 책임을 다해 왔다. 회사가 2년 연속 사상 최대실적을 달성하는 등 글로벌 경영의 성과가 나타나고 있는데다 조현준 회장 중심의 경영체제가 안정적으로 구축됐다는 판단 하에 사임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경남 함안 출신인 조 전 회장은 군북국민학교를 다니다 5학년때 서울 재동국민학교로 전학, 경기중을 나왔다. 경기고로 진학해 1학년을 마친 뒤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히비야(日比谷)고와 와세다대를 졸업했다. 이후 미국 일리노이 공과대에서 화학공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66년 박사 과정을 준비하던 중 부친 고(故) 조홍제 창업주의 부름을 받고 귀국, 경영자의 길로 들어섰다. 부친이 나일론의 원사를 생산하는 동양나일론(현 효성)을 세우고 종합 화섬사로의 도약을 시작하던 때다. 조 전 회장은 당시 동양나일론 울산공장 건설을 진두지휘해 나일론사업을 성공리에 안착시켰다.

화섬 산업의 성공을 기반으로 1970년대에 들어서는 중공업에도 뛰어들었다. 정부가  중화학공업 육성에 드라이브를 걸던 시점이다. 1975년 한영중공업을 인수, 효성중공업으로 새롭게 출범시켜 중전기기와 산업기계를 국산화하고 양산했다.

1980년대에는 화섬 산업에서 쌓아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석유화학 분야에도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했다. 이와 함께 금융자동화기기와 중대형 컴퓨터를 비롯한 하드웨어 사업과 소프트웨어 개발 사업에 참여하여, 정보통신 분야에 진출하였다.

특히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맞았을 때는 효성 전 조직을 퍼포먼스 유니트(Performance Unit) 체제로 바꾸고 PU별 책임 경영체제를 구축함으로써 재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이어 1998년 11월에는 효성T&C, 효성생활산업, 효성중공업, 효성물산 등 주력 4사를 합병하고 비핵심 계열사 및 사업부문을 매각하는 등 혁신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해 위기에서 벗어났다.

조 전 회장은 이처럼 1981년 회장에 취임한 이래 경영 혁신과 주력 사업부문의 글로벌화를 이끌어내며 효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킨 주역이다.

효성은 현재 재계 서열 25위로 섬유, 산업자재, 중공업, 화학, 무역, 건설 등 6개 사업군에 걸쳐 사실상의 지주회사 효성을 비롯해 총 45개 국내 계열사(해외 65개)를 거느리고 있다. 총자산은 11조5000억원(2016년 말 기준)으로 2016년 매출 12조3000억원에 순이익 5950억원을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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