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통상임금 소송 `신의칙`에 물어봐

  • 2017.08.21(월) 18:20

법원 신의칙 인정 사례 늘어
`경영상 중대한 어려움` 인정이 관건

지난 18일 광주고등법원 민사1부는 금호타이어 노동조합원 4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통상임금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노조원 손을 들어준 1심 판결을 뒤집은 겁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면서도 "회사의 경영사정이 악화되고 있는 점 등에 비춰보면 상여금의 통상임금 산입으로 인한 추가임금 청구는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것으로 신의에 반한다"고 판시했습니다. 노사 합의를 깬 통상임금 소송은 신의칙(信義則)에 위반된다는 겁니다.

 

금호타이어 노조원들은 회사가 경영난으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중이던 2013년 7월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 휴일수당 등을 다시 지급하라”며 소송을 냈었습니다. 이번 판결은 통상임금 소송의 최대 쟁점인 `신의칙`을 적용한 것으로, 이달 말로 예상되는 3조원 규모의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소송 판결과 각급 법원에 쌓여 있는 100여 건이 넘는 관련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 신의칙은

 

대법원은 2013년 12월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정기성, 일률성, 고정성을 갖춘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단서를 달았는데요. ▲노사가 ‘정기 상여금은 통상임금에서 제외한다’고 합의했고 ▲근로자의 청구를 인용해 `경영상 중대한 어려움`이 초래될 경우에는 신의칙을 적용해야한다며 통상임금 확대 청구를 제한했죠.

 

노사가 합의했고 중대한 경영 애로가 예상된다면 신의칙을 적용,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지 않겠다는 얘깁니다. 논란을 부를 수 있는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에 대해서, 대법원은 ①실질 임금인상률이 교섭당시 예정한 인상률을 훨씬 초과하고 ②예상치 못한 과도한 지출이 예상되며 ③순이익의 대부분을 추가 지급해야 하는 사정 등을 제시했습니다.

 

신의성실의 원칙 : '권리의 행사와 의무 이행은 신의를 좇아 성실히 해야 한다'는 민법에 근거한 원칙. 계약관계에서 나에 대한 상대방의 신뢰를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 나도 성실하게 상대방에게 응해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 개념이다.

 

 

◇ 판결은

 

최근 들어 통상임금 소송에서 신의칙을 적용해 회사 측 손을 들어주는 사례가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대법원에서 '신의칙 적용'을 이끌어 회사 측 승소로 최종 확정된 갑을오토텍과 한국GM을 비롯해 현대중공업 한진중공업 아시아나항공 두산인프라코어 현대로템 등이 관련 재판에서 승소했습니다.

 

특히 금호타이어 현대중공업 한진중공업 아시아나항공 등은 1심에서는 패했지만 2심에서 승소한 경우입니다. 하지만 회사 측이 안심하기는 이릅니다. 남부발전의 경우 1,2심 모두 신의칙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대법원이 신의칙의 기준으로 제시한 `경영상 중대한 어려움`에 대한 법원의 해석이 여전히 갈리고 있는 겁니다.

 

정희선 법무법인 아이앤에스 변호사(21일, 바른시회시민회의 초청 토론회)는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하는지 문제가 되는 사건에서 신의칙 위반 적용 여부는 기업의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했는지 등에 관련된 것”이라면서 “그런데 대법원이 제시한 경영상 위기는 ‘기업의 존립 자체가 위태롭게 된다’는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 기아차는

 

그렇다면 기아차는 `경영상 중대한 어려움`을 인정받아 통상임금 소송에서 이길 수 있을까요. 기아차 노조 조합원 2만7000여명은 2011년 10월 `연 750%인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연장근로 등 각종 수당을 다시 계산해 미지급 임금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는데 이르면 이달 말 1심 판결을 앞두고 있습니다.

 

기아차 측은 이번 소송에서 패할 경우 부담해야 하는 금액은 약 3조1000억원(회계평가 기준)으로 추산된다고 밝혔습니다. 판결 즉시 충당금 적립의무가 발생한다는 회계기준을 감안하면 올 3분기부터 적자가 불가피한 상황입니다.

 

기아차는 올 들어 지속적인 판매 감소와 실적 부진에 허덕이고 있는데, 7월 누적 글로벌 판매량은 153만6388대로 전년 동기대비 8.9% 감소했고 상반기 영업이익도 7870억원으로 2010년 이후 7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습니다.

 

업계에서는 기아차는 중국에서 사드 영향으로 판매가 반 토막 난 상황이라며 통상임금 패소로 적자를 기록하면 국내외 자금조달이 어려워져 유동성이 부족하게 되고, 이는 심각한 경영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경영상 중대한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겁니다.

 

 

◇ 업계는

 

신의칙 인정 여부는 기아차는 물론이고 통상임금 소송을 진행 중인 업계의 공통 현안입니다. 지난 10일 한국경제연구원이 종업원 450명 이상 기업 중 통상임금 소송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진 35개 기업을 대상으로 최대 쟁점을 물은 결과 `소급지급 관련 신의칙 인정 여부`를 꼽은 기업이 23곳(65.7%)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이들 기업은 신의칙이 쟁점이 된 이유로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한다는 노사 간 묵시적 합의나 관행에 대한 불인정`(32.6%), `재무지표 외 업계 현황·산업특성·미래 투자 장애 등에 대한 미고려`(25.6%), `경영위기 판단 시점(소송제기 시점 또는 판결 시점)에 대한 혼선`(18.6%) 등을 꼽았습니다.

 

35개 기업에 제기된 통상임금 소송은 총 103건인데  종결된 4건을 제외할 경우 기업당 평균 2.8건의 송사를 진행 중입니다. `1심 계류`가 48건(46.6%)으로 가장 많고 `2심(항소심) 계류` 31건(30.1%), `3심(상고심) 계류` 20건(19.4%) 등입니다. 미응답 기업을 제외한 25개 기업은 통상임금 소송에서 패소할 경우 부담해야 하는 지연이자, 소급분 임금 등이 최대 8조3673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이는 2016년도 전체 인건비 평균의 36.3%에 달하는 규모입니다.

 

유환익 한국경제연구원 정책본부장은 "대법원 판결에도 통상임금에 대한 정의 규정, 신의칙 인정 관련 세부지침 등이 미비해 산업 현장에서는 통상임금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며 “신의칙 인정 여부는 관련 기업의 재무 상황뿐 아니라 국내외 시장 환경, 미래 투자 어려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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