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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1 하이트, 생맥주통 회사 '승계의 핵'으로

  • 2017.10.16(월) 14:58

[격변의 재계] 일감몰아주기Ⅱ ⑥하이트진로
생맥주통 납품하던 ‘베일’의 협력회사 서영이앤티
2007년 하이트 오너 박문덕 장남 인수로 전면 등장

당첨금 15억원짜리 로또 1등에서 세금 떼고 받을 수 있는 돈 10억원. 10억원의 가치야 사람마다 다 다를 테지만, 강남에 새로 분양하는 아파트를 살라치면 20평대 한 채를 살까 말까 한다. 

이 10억원으로 자산 5조원이 넘는 국내 최대 맥주·소주회사를 접수한 이가 있다. 소설이 아니다. 총자산 5조5000억원, 재계 55위 하이트진로그룹의 ‘황태자’ 박태영(40) 부사장 얘기다.

하이트진로 총수일가 회사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 결과 발표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12개 계열사 중 서영이앤티 단 한 곳을 타깃으로 한다. 치킨집·호프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생맥주통을 납품·관리하는 곳이다. 하이트진로 오너 박문덕(67) 회장 일가가 지분을 보유한 곳이고, 계열사 일감을 기반으로 성장해온 회사다.

이 정도는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이고 새삼스러울 게 없다. 하지만 서영이앤티를 단지 계열사로부터 일감(생맥주통 납품·관리)을 받아 주주인 오너 일가에 금전적 이익 몇 푼 얹어주는 회사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하이트진로는 생맥주통 회사 하나를 황태자 회사로 만들어 그룹을 사실상 지배하는 핵심으로 키워놓았다. 그 과정에서 나타난 치밀한 각본은 불가능할 것 같은 ‘10억원으로 5조 회사 접수하기’를 가능케 했다.

 

▲ 박태영 하이트진로 부사장


◇ 협력사(?) 인수한 황태자

서영이앤티(초창기 사명은 ‘삼진이엔지’이지만 현재의 이름으로 통칭한다)는 2000년 1월 맥주 냉각기와 기자재 제조·판매를 목적으로 세워졌다. 한때 국내 맥주시장 60%를 점유하던 ‘지하150m 천연암반수’ 하이트맥주에 생맥주통과 냉각기를 공급하면서 설립 초기부터 안정적인 매출처를 확보했다.

이 회사가 세간의 주목을 받은 건 2007년 12월말 박문덕 회장의 두 아들 중 장남 박태영 부사장이 지분 73%를 인수하면서다. 당시 30살의 박 부사장은 영국 유학생 신분으로 서영이앤티를 인수했고, 나머지 지분 27%는 그의 동생 박재홍(당시 27살) 상무가 이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이로 인해 서영이앤티는 단숨에 하이트진로 20대 후계자 2명이 지분 100%(2007년말 기준)를 소유한 회사가 됐다. 하이트진로 측은 당시 박 부사장의 서영이앤티 지분 매입에 대해 “협력사 지분을 사들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서영이앤티를 단순 협력사라고 보기엔 의아한 점이 적지 않다. 우선 박 부사장이 지분을 인수하기 6년 전인 2001년 7월(당시 23살) 이미 사내 등기임원으로 이름을 올려놓고 있었다는 점이다. 동생 박재홍 상무도 21살이던 2003년 1월 형에 이어 등기이사가 됐다.

등기이사는 정식 이사회 구성원으로서 법적 지위와 책임을 가진 자리라는 점에서 20대 초반의 형제가 어떤 식으로든 서영이앤티에서 경영 행위를 하고 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것도 부친이 경영하는 하이트맥주에 생맥주통을 납품해 먹고사는 ‘을’인 협력사에서 말이다.

형제의 행보와 대조적으로 서영이앤티 설립 초기 최대주주였던 정학진씨를 비롯한 주요주주 3명(지분 합계 55%)은 이사진에 이름을 올리지 않다가 2007년 박 부사장에게 자신의 지분을 모두 매각한다.

 


박 부사장이 사들인 지분은 액면가(5000원) 기준으론 2억5550만원. 실제 매입 가격은 확인되지 않는다. 그룹 측은 이와 관련 “개인이 매입한 주식이라 가격은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액면가 수준에서 사들였다면 안정적 매출을 올리던 협력사 지분을 헐값에 사들였다는 논란과 마주하고, 반대로 높은 프리미엄을 주고 매입했다면 자금 출처가 관심인데 어느 것 하나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다만 서영이앤티는 박 부사장이 인수한 직후 직년 연도의 8~10배에 해당하는 배당을 2년 연속으로 화끈하게 풀었고 이를 통해 박 부사장은 인수자금을 충분히 회수하고도 남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 범상치 않은 서영이앤티

더군다나 설립 자본금이 5000만원이던 서영이앤티는 당시 그룹의 핵심회사 하이트맥주(2008년 7월 지주회사 ‘하이트진로홀딩스’·사업회사 ‘하이트맥주’ 분할 전) 지분 50억어치(취득가 기준)를 가지고 있었다.

이를 놓고 보면 단순 협력사라고 하기엔 원청업체 오너 일가와 여러모로 깊숙이 연관돼 있었던 것도 틀림없다. 서영이앤티가 보유한 하이트맥주 지분은 이후 박태영 부사장이 그룹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데 요긴하게 쓰인다.

하이트진로 측 설명처럼 서영이앤티가 말 그대로 협력사였다고 해도 논란은 남는다. 박 부사장이 지분을 매입하던 2007년 서영이앤티는 연매출 141억원 중 98%인 139억원을 하이트맥주에 납품해서 먹고살았던 회사다. 한마디로 하이트맥주에 죽고살수 밖에 없는 곳이었다. 협력사가 수년간 별 문제없이 해온 생맥주통 납품·관리 사업을 어느 날 갑자기 일감을 주던 회사의 오너 자제가 소유하도록 한 것이다.

 


박 부사장은 인수 이듬해인 2008년 4월 서영이앤티 주주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해 3억6100만원을 추가 출자했다. 2007년 말 인수자금(2억5500만원, 액면가 기준으로 추정)을 더하면 6억1600만원을 쓴 것이다. 박재홍 상무도 초기 출자금과 유상증자 포함 2억3000만원 수준의 자금을 댔다. 결국 박 부사장이 액면가 이상으로 인수대금을 지불했더라도 두 형제가 서영이앤티에 쓴 돈은 10억원을 크게 웃돌기는 상식적으로 쉽지 않다.

바로 이 10억원이 하이트진로그룹 3세 박태영·박재홍 형제가 서영이앤티에 쓴 돈의 전부다. 서영이앤티 외에 다른 계열사 지분을 사지도 않았고, 창업주(조부 고(故) 박경복 명예회장)나 부친(박문덕 회장)의 지분을 직접 물려받지 않아 증여세도 내지 않았다.

그럼에도 박태영·박재홍 형제는 현재 서영이앤티 지분 80%(나머지는 부친 등 일가 보유)를 가지고 있고, 서영이앤티를 통해 지주회사 하이트진로홀딩스 지분 27.66%를 컨트롤한다.

박태영·박재홍→서영이앤티→하이트진로홀딩스→계열사로 이어지는 흐름은 2008년부터 2010년까지 불과 2년 만에 이뤄졌다. 이 작업이 완료되면서 하이트진로그룹 2세(박문덕 회장)에서 3세(박태영·박재홍)로 이어지는 지분승계는 사실상 끝이 났다.

단 10억원으로 자산 5조원자리 그룹을 지배하게 꿈같은 일은 이렇게 현실이 됐다. 2편에서 다뤄질, 드라마틱하면서도 치밀했던 박영태 부사장의 접수 과정이 더욱 흥미진진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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