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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제조업 위기의 교훈]②에어백 강자 몰락 뒤엔 ‘失期’

  • 2017.12.07(목) 09:58

타카타, 잇단 사고에도 미숙한 대응으로 논란 자초
시장영향력 믿고 오판…오너는 경영능력 한계 노출

일본 제조업이 흔들리고 있다. 세계적인 에어백 제조업체 타카타가 파산한 데 이어 고베제강과 도레이, 미쓰비시 등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품질조작 파문에 휩싸였다. 이뿐만 아니라 닛산, 스바루와 같은 유명 완성차 제조업체도 스캔들에 휘말려 대규모 리콜을 실시했다. 한때 세계 시장을 호령했던 일본 제조업체들이 위기에 빠졌다는 표현도 과장이 아니다. 이들 기업이 닥친 문제를 알아보고 시사점을 찾아본다. [편집자]

 

 

2009년 5월 미국 오클라호마주(州) 미드웨스트시티. 교사를 꿈꾸던 10대 소녀 애쉴리 퍼햄(Ashley Parham)은 축구 연습에 한창인 동생을 픽업하려고 혼다 승용차를 끌고 학교 운동장을 찾았다. 주차장은 다른 차들로 꽉 차 있었다. 다른 주차장을 찾기 위해 핸들을 돌리자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차가 멈췄다. 옆차와 부딪치고 만 것. 순간 에어백 가스발생장치(인플레이터)가 폭발하면서 운전대로부터 날카로운 금속 파편들이 튀어 나왔다.

에어백 오작동 사고였다. 이후 2014년까지 미국 전역에서 비슷한 사건이 수차례 일어났다. 지난해 2월까지 미국에서 집계된 사망자는 16명, 부상자는 150여명에 달했다. 운전자를 보호해야 할 에어백이 흉기가 된 꼴이다. 문제의 에어백은 80년이 넘도록 직물·소재 사업을 전개하면서 일본에서 '초우량기업'으로 꼽혀온 타카타에서 만든 제품이었다.

 

◇ 동생 태우러 갔을뿐인데…

2014년 9월 뉴욕타임즈는 이 사건을 다루면서 타카타가 에어백 결함 사실을 일부러 숨겼다고 보도했다. 로이터 통신도 미국 내 피해자가 상당하다는 점을 짚었다. 미국 시민사회에서 타카타 에어백을 장착한 차량을 리콜(무상수리·교환)조치하고 진상 조사에 착수하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미국 정부와 의회가 즉각 반응했다. 미국 교통안전국은 조사에 나섰고 의회는 상원 청문회를 열어 타카타에 해명과 피해보상을 요구했다. 일본 기업이 상원 공청회 출석 요구를 받은 것은 도요타자동차(2010년)에 이어 두번째다.

타카타를 대표해 나온 사람은 품질담당 임원 한 사람. 최고경영자인 타카타 오모히사(51) 회장과 스테판 스토커(50) 사장은 불참했다. 미국과 일본 주력 매체들은 도요타 사장이 청문회에 출석해 적극적으로 현안 설명에 나섰던 2010년 상황과 비교했다.

인명피해를 낸 사고 당사자로의 대처도 약했다는 평가다. 이 임원은 에어백 결함으로 발생한 사고에 전면적 책임을 지라는 상원의원들의 주문에 제품 문제는 인정하면서도 모든 피해가 에어백으로 인한 것이라고 여기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반면 타카타 임원과 함께 청문회에 참석한 일본 자동차메이커 혼다의 릭 쇼스텍 사장은 "초기 대응이 늦었다면 늦은 것이라고 인정하겠다"며 대응 조치를 개선할 여지가 있음을 분명하게 밝혔다.

 


◇ 청문회 빠진 최고경영자…의심받은 진정성

타카타가 소극적인 대응을 한 데에는 일련의 사고들이 에어백 결함으로 인한 것이라는 대내외 지적에 불만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일본 유력 주간지 슈칸겐다이는 의회 청문회 당시 타카타 내부 분위기를 한 임원의 목소리를 빌려 다음과 같이 전했다.

"사고 원인이라고 지목되는 에어백 가스발생장치는 주로 에어컨 바로 옆에 설치되죠. 상대적으로 습한 환경에 놓여 가스발생장치 가용 환경이 가혹해졌을 수 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타카타가 필요 이상의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은 아닌가 의심스럽습니다. 완성차 업체가 책임져야 할 부분도 분명히 있는 것이죠."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차량에서 안전 사고가 생긴 경우, 부품을 조립해 차를 출고한 자동차 메이커의 책임인지, 특정 부품만이 갖고 있는 하자에서 비롯된 것인지 가릴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원인이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부품 업체가 차량 사고를 사과한다면 받지 않아도 될 비난에 직면하는 억울한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

하지만 타카타가 자신들의 시장 영향력을 이용해 책임을 떠넘겼다는 증언이 확보되면서 논란이 커졌다. 슈칸겐다이에 따르면 타카타의 한 영업담당 임원은 혼다, 도요타 등의 관계자를 만나 "타카타가 망하면 어디서 에어백을 공급받을 수 있을 것 같으냐"며 되레 큰소리를 쳤다. 타카타는 지난해 세계 에어백 시장에서 스웨덴 오토리브에 이어 점유율 20%를 차지한 2위 업체다. 부품업체지만 에어백시장에선 일종의 '갑(甲)'의 위치에 있는 곳으로 볼 수 있다.

불행하게도 이후 상황은 타카타의 기대와 다르게 흘러갔다. 혼다와 도요타, 포드 등 자동차 메이커 10여곳이 지난해 2월 공동 조사를 실시, 자동차 사고의 원인이 타카타 에어백 결함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밝혀냈다. 그 결과 타카타는 미국에서만 4600여대, 전세계 약 1억대에 대해 리콜 비용 14조원을 부담하게 됐다. 이는 타카타의 자산 규모(4조1400억원)의 3배가 넘는 금액으로 결국 파산을 의미했다.

 

▲타카타 오모히사(高田重久) 타카타 회장은 에어백 결함으로 발생한 위기를 돌파하는데 실패했다.


◇ 타이밍도 놓쳐…실패한 오너 '불명예'

타카타가 피해 보상에 미적지근한 움직임을 보이고 그 뒤에도 시장 영향력을 들어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인 데에는 오너의 경영 마인드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있다. 타카타는 타카타 일가가 지분의 60%를 보유하고 있는 오너 회사다.

1~2대 회장과는 다르게 3대 타카타 회장은 소심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 그와 함께 일한 간부는 그를 가리켜 "컴퓨터 오타쿠"라고 했고 다른 관계자는 "조용한 성격을 가져 위기를 돌파할 만한 인물은 아니다"라고 묘사했다. 주요 경영은 어머니에게 맡기고 자신은 가업을 발전시키진 못하더라도 현상유지는 해야한다는 마인드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도 전해진다.

그러다보니 파산절차를 진행할 때 경영판단이 늦었다. 그는 하루빨리 회사를 정상화시킬 수 있는 법정관리보다는 시일이 오래 걸리는 당사자 간 협의를 고집했다.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보유 주식이 휴지 조각이 돼버리기 때문이다.

임천석 건국대 무역학과 교수는 "일본 기업들은 지금까지 내수에 집중해 기술발전에만 몰입해 온 측면이 있다"며 "막상 해외 시장에선 보편적인 경영기법을 발휘하는데는 부족한 면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타카타는 지난 7월27일 상장폐지됐다. 현재는 중국계 미국 회사인 KSS와 사업부문 매각 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매각 규모는 15억8800만달러(약 1조7000억원)이다. 동시에 일본 법원에 파산신청에 따른 회사 회생계획안을 작성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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