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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현대상선 '친정 소송'의 재구성

  • 2018.01.30(화) 13:23

# 전쟁의 서막, 형사 고소

 

한 때 주력 계열사가 옛 오너를 고소한 일로 재계가 뒤집혔습니다. 지난 1월15일, 현대상선은 2014년 옛 현대로지스틱스(현 롯데글로벌로지스)를 매각하는 과정에서 불리한 조건 탓에 손실을 입었다며 오너 회장을 포함한 과거 현대그룹 최고경영진 5명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배임)혐의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고소했습니다.

 

현대상선이 보인 액션은 꽤 적극적이었습니다. 이튿날엔 서울 종로구 사옥에서 이례적으로 매체들을 불러모아 현대그룹을 겨냥했습니다. 장진석 현대상선 준법경영실장은 "현대로지스틱스 매각과 관련된 계약은 15건 정도 있는데 이를 검토하다 이사회 승인을 받지 않은 등 부당한 점이 발견됐다"며 "이를 바로잡아 손실을 회복하려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현대상선이 느닷없이 움직인 건 아니었습니다. 한 달 전인 작년 12월14일, 롯데글로벌로지스(옛 현대로지스틱스)는 영업이익 보전의무를 위반했다며 현대상선을 상대로 위약금 청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모회사였던 현대상선이 자회사였던 현대로지스틱스에 주기로 한 돈을 달라던 거였습니다.

 

4년 전 현대그룹이 현대로지스틱스를 팔 때 내건 여러 조건 중 이것 때문이었습니다. 로지스틱스가 5년 동안(대략 2014년 하반기~2019년 상반기) 해외 인터모달(내륙운송)·피더사업(근해운송) 등 약정이 걸린 항목에서 영업이익 161억5000만원을 못채우면 현대상선이 부족분을 메워주기로 한 것입니다. 하지만 현대상선이 채권단 공동관리로 들어간 2016년 하반기 이후로 이 돈을 못받았다는 게 위약금 청구소송 이유였습니다.

 

# 운명 엇갈린 두 회사

 

네 맞습니다. 현대상선과 현대로지스틱스, 두 회사는 과거 모두 현정은 회장이 오너인 현대그룹 계열사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둘 다 아닙니다.

 

현대로지스틱스는 현대상선의 육상물류부문 자회사였습니다. 이 회사가 팔려 그룹 품을 떠난 건 4년 전인 2014년, 유동성 부족으로 구조조정 압박을 받던 현대상선에 돈을 대기 위해서였습니다. 현대그룹이 특수목적회사(SPC) '이지스1호'에 현대로지스틱스 지분 88.9%를 넘긴 겁니다. 이지스1호에는 롯데 계열사(35%)와 오릭스(35%), 현대상선(30%)이 투자했는데, 2016년 오릭스 지분을 롯데가 인수해 현재의 롯데글로벌로지스로 이름을 바꿔달았습니다.

 

현대상선이 현대그룹 품을 떠난 건 2016년 7월입니다. 지금은 KDB산업은행(주채권은행)이 주도하는 채권단이 경영권을 쥐고 있습니다. 로지스틱스를 팔고도 현대상선이 자생력을 갖지 못한 탓입니다. 이후 해운 구조조정 과정에서 현대상선에 출자전환이 이뤄지며 산업은행이 현대상선의 14%를 보유해 최대주주로 올라섰습니다. 산은을 비롯한 채권단은 현재 현대상선 지분 40%를 보유한 상탭니다.

 

현대로지스틱스는 2014년과 2015년 각각 영업이익 498억원, 349억원을 거뒀지만 2016년엔 영업이익이 116억원으로 줄었고, 롯데로지스틱스로 바뀐 작년은 3분기까지 81억여원의 영업손실을 냈습니다. 지난달 롯데글로벌로지스가 약정항목 영업이익을 보전하라며 현대상선에 청구한 금액은 2016년 하반기 분으로 알려집니다. 그 이전에는 약정금액 이상 이익이 났거나 현대상선이 보전했고, 작년분은 청구금액 집계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탭니다.

 

▲ 2014년 현대로지스틱스 매각 당시 현대그룹 지배구조 변동

 

# 배임 혹은 궁여지책

 

현대상선은 7년째 적자를 내는 상황에서도 이미 남이 된 로지스틱스 손실을 보전해야 하는 계약조건 자체가 '악성'이었다고 주장합니다. 약정 중 육상운송, 항만서비스사업 등의 사업부문에서 5년 동안 로지스틱스만 이용하게 된 것도 경영 개선에 짐이 됐다는 겁니다.

 

일을 키운 건 후순위로 소멸한 현대상선의 로지스틱스 투자금입니다. 현대상선은 현대로지스틱스 지분을 매각하고 받은 3220억원 중 1094억원을 후순위로 이지스1호에 투입했습니다. 그런데 로지스틱스가 조건으로 달린 에비타(EBITDA, 법인세·이자·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를 달성하지 못해 이 투자금이 휴지조각이 됐습니다. 현대상선은 이를 회수불능 채권으로 판단하고 회계상 손실처리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롯데로부터 위약금 청구를 받은 현대상선은 후순위 투자까지 포함해 애초에 현대상선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구조였고, 그 짐을 오롯이 현대상선만 지게됐다며 '역공'을 시작한 겁니다. 다만 상대는 롯데글로벌로지스가 아니었습니다. 이를 설계한 당시 현대그룹 경영진은 높아진 매각 차익을 그룹만 취하게끔 배임(背任)행위를 했다는 게 소송의 요지입니다.

 

하지만 과거 로지스틱스 매각과정을 지켜봤던 이들 중 현대그룹에 남아있는 일부는 "배임은 어불성설"이라는 입장입니다. 상선을 살리기 위한 자금을 극대화하려면 로지스틱스를 최대한 비싸게 팔아야했기 때문에 이런 조항들이 달렸다는 거죠. 4년전 이지스1호를 주도한 오릭스사모펀드(PE)와의 협상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수익 보장 약정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자구안을 요구했던 채권단도 수긍했기에 매각 자체가 가능했단 겁니다.

 

# 소송전 '뒷배'는?

 

이후 현대그룹은 다른 계열사인 현대증권(현 KB투자증권)도 팔고, 살리려던 현대상선도 채권단 손에 넘겨주게 됐습니다. 현재 현대그룹은 자산규모가 2조5600억원인 중견기업 수준으로 쪼그라들었습니다. 현대상선 주장 대로라면 "현대상선은 아직도 현대로지스틱스 거래의 후유증을 앓고 있는데 비해 현 회장 등 현대그룹 계열사들은 확정적 이익을 실현했다"고 해도 남은 건 별로 없는 모양샙니다.

 

▲ (왼쪽부터)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 유창근 현대상선 대표이사,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그래픽/김용민 기자 kym5380@

 

눈 여겨 볼 만한 부분은 로지스틱스를 팔 당시 현대그룹의 자구안을 받아들인 것도 산업은행, 이번에 현대그룹에 소송전을 벌이는 상황 뒤에도 현대상선의 경영권을 쥐고 있는 것도 산업은행이라는 겁니다. 같은 정책금융기관이 같은 사안에 대해 5년 사이 다른 입장을 보이는 셈입니다.

 

현대그룹을 비롯한 구조조정을 지휘했던 산업은행의 입장은 달라진 걸까요? 일각에서는 그 사이 정권이 바뀌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작년 9월 이동걸 회장이 취임한 산업은행으로서도 전 정권에서 이뤄진 구조조정에 대해 시비를 가를 필요가 있던 게 아니냐는 관측이죠. 공적자금이 투입된 만큼 다시 비싸게 파는 게 채권단의 책무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현대상선 현 경영진이 받고 있는 정상화 압박을 과거 경영진에 떠넘기는 것일 수 있다는 뒷말도 나옵니다. 일종의 '면피성 소송'이란 얘깁니다.

 

올 3월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는 현대상선 유창근 사장은 아직 전면에 나서지 않고 있습니다. 그는 공교롭게도 2012년부터 2014년 로지스틱스 매각작업 직전까지 현대그룹 체제에서 현대상선 대표이사를 지냈고, 또 2016년이후 다시 채권단 선임으로 사장에 올라 있습니다. 

 

현재 현대상선 주식은 배임 소송이 걸리며 거래가 중단됐습니다. 사단을 겪고 있는 일반 투자자들은 울상입니다. '구조조정 성공작'으로 알고 투자했지만 이번 소송전으로 실적 개선에 걸림돌이 있다는 게 노출된 셈입니다. 곧 나올 현대상선 경영실적도 왠지 잘 들여다봐야 할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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