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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신입사원에게 물었습니다

  • 2018.03.30(금) 09:41

<청년 일자리, 다시 미래를 설계한다>①-3
짧았던 합격의 기억…찾아오는 긴 방황
연봉 대신 '워라밸'…밖에선 몰랐던 진실

"진짜 운이 좋았죠. 졸업과 동시에 취직했으니까요. 하지만 후회도 합니다. 그때 반년 정도 시간을 두고 다른 곳에 원서를 냈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대기업 유통업체에 다니는 정 모(27·여)씨는 직장생활 4년차에 접어든 지금도 마음 한 켠이 무겁다. 명절 때 친척들을 만나 크게 기죽을 일 없고, 친구들 모임에서 한턱 낼 수 있다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일까. 직장생활은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이 상품 들여놨다가 안 팔리면 당신이 책임질 거냐'며 따지는 점주들을 달래는 것부터 쉽지 않다. 잘 팔리면 다행이지만 반대라면 욕 한 번 먹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뒤에는 신상품 설명을 듣는 둥 마는 둥, 내 가게에서 웬 참견이냐는 냉랭한 반응이 돌아온다. 애써 쌓아올린 신뢰가 한꺼번에 무너진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다.

"사실 우리(영업관리)는 손발 역할을 합니다. 머리 역할을 하는 곳은 마케팅이죠. 그런데 현장의 스트레스는 우리가 짊어지니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최근 정 씨는 직장생활의 냉혹함을 접하고는 더욱 우울해졌다. 그는 "사내에서 능력을 인정받던 팀장인데 1년만에 날아갔다. 모 임원의 눈밖에 나서 잘렸다고 하더라. 직장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게 '라인(Line)'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씁쓰레했다.


▲ 지난해 12월말 열린 채용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취업정보를 둘러보고 있다. /이명근 기자 qwe123@

◇ 기쁨은 잠시…곧 닥친 현실 

좁은 취업문을 뚫었다는 기쁨도 잠시뿐 신입사원들은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것 같은 차가운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취업대란에서 자신을 구해준 동아줄이 더는 올라가지 않고 그렇다고 뛰어내릴 수도 없는 어중간한 지점에서 멈춰버렸다면? 비즈니스워치가 접촉한 신입사원(만3년 이하) 10명 중 절반은 취업 전 생각했던 직장생활과 입사 후 맞닥뜨린 현실에 괴리가 있다는 답변을 내놨다.

이런 생각은 연차가 쌓일수록 더 크게 나타났다. 2015년부터 컨설팅 업종에서 근무한 한 모(29·남)씨는 "일자리를 구할 때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깊게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며 "입사 후에도 지금 하는 업무가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인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인지를 늘 고민하게 된다"고 말했다. 한 씨의 답변에서는 '업무성과(Performance)'를 강조하는 조직문화와 '그게 전부는 아니다'라는 개인 사이의 긴장감이 느껴졌다.

정수기 제조업체에서 영업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입사 3년차 이 모(30·남)씨도 비슷한 얘기를 꺼냈다. 이 씨는 "입사 전에는 연봉이 높은 회사가 좋은 회사라고 여겼지만 지금은 아니다. '워라밸(Work & 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을 뜻함)'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그는 신입사원의 퇴사이유도, 장기근속의 해법도 워라밸에서 찾았다. 불필요한 야근, 퇴근 후 및 휴일 업무지시만 없어도 신입사원들의 고충 상당수가 풀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신입에게 '워라밸'을 許하라

근속연수에 대한 기대치가 낮은 것도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정년까지 다니고 싶다'거나 '계속 다니고 싶다'는 의견은 10명중 2명에 불과했다. 평생직장이라는 신화가 깨진 마당에 신입사원에게만 인생을 책임져줄 것처럼 열정을 바치라고 요구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기성세대의 '꼰대짓'은 아니었을까.

청소년수련원에서 학생지도 등을 담당하는 조 모(29·남)씨는 "새로운 가치와 진로를 꿈꾸게 된다면 용기있게 사직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런 생각이 싹튼 배경에는 롤모델로 삼을 만한 선배가 있는지 여부가 적지 않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조 씨는 "이상과 현실의 온도차이를 크게 느꼈다"며 "자아실현이나 소명감을 가진 선배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보면서 실망할 때도 있었다"고 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대졸 신입사원이 입사 후 1년내 퇴직하는 비율은 2012년 23.6%→2014년 25.2%→2016년 27.7%로 꾸준히 늘고 있다. 어렵게 입사하고도 4명중 1명이 1년 안에 회사를 떠난다.

해법은 무엇일까. 물류스타트업에 다니는 김 모(27·여)씨는 "꿈과 희망을 심어줄 수 있어야 한다"고 답했다. '비전'이나 '동기부여'라는 추상적 가치부터 연봉·복지 등 물질적 혜택까지 방법은 다양하지만 신입사원들의 결론은 하나로 모아졌다. 

"우리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회사이구나, 존중받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끊임없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오 모씨, 26·여, 2018년 입사)

 


◇ "용기있게 사표쓰고 싶다"…상처입은 흙수저들

취업이라는 힘겨운 관문을 통과했기 때문일까. 신입사원들 사이에는 노력에는 반드시 보상이 따라야한다는 심리가 작동하는 것으로 보였다. 학력이나 학점, 성별, 지역, 신체조건 등을 보지 않고 뽑는 '블라인드 채용'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직무능력과 학벌은 무관하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한 사람은 소수고 블라인드 채용의 부정적 측면을 걱정하는 이들이 많았다. 상당수가 "학점도 노력해서 딴 것이다. 열심히 한 사람들에 대한 대한 역차별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로또 같이 한 방만 노리는 취준생이 많아질 것"이라는 답변도 나왔다.

출신학교·학점·자격증 등이 한 사람의 인성과 능력, 잠재력에 대한 보증서가 아님에도 이것마저 외면받으면 흙수저들의 '노오력'은 도대체 어디에서 인정받을 수 있냐는 답답함이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신입사원들은 직장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소통'이나 '대인관계' 등을 들었다. 아쉽게도 그 밑바탕인  '배려'와 '양보', '희생'과 '헌신' 등을 언급한 이들은 한명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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