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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승무원 두 번 울리는 항공당국

  • 2018.04.10(화) 16:03

"최근 일부에서 제기된 것과 같은 과도한 승무시간 초과 사례는 발견되지 않았다."

 

국토교통부가 얼마전 이슈가 된 항공사 승무원 '비행 근무시간 초과'와 관련해 발표한 특별점검 결과의 요지다. 발표 제목이 "9개 국적항공사 승무원 근무시간 초과사례는 미발견"이었다.

 

 

조사 결과 월평균 승무시간은 조종사 68.6시간, 객실승무원 82.7시간이었다고 한다. 이는 미국과 유럽의 유명 항공사 승무원 근무시간과 비슷한 수준이라는 설명이다. 법정 상한은 조종사는 28일에 100시간, 객실승무원은 1개월에 120시간이다. '승무시간(Flight time)'은 여객기가 이륙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 때부터 비행이 종료돼 비행기가 최종 정지한 때까지만 잰다.

 

김상도 항공안전정책관은 "승무원 피로 관리는 항공 안전의 중요한 요인이다. 정부는 안전 감독을 통해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며 "앞으로 승무원 피로 관리 제도를 선진화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 규정을 어긴 항공사는 없었고, 다만 문제가 된 부분은 앞으로 제도를 손질해 고쳐나가겠다는 얘기다. 과로로 쓰러지는 항공사 승무원들이 속출했지만 항공사들에게 당국은 공식적으로 면죄부를 준 것이다. 점검결과 대로라면 승무원들이 '엄살'이었다는 얘기다.

 

최근 논란을 일으켰던 그 '엄살'들을 되짚어보자. 금호아시아나 계열 저비용항공사(LCC) 에어부산에서는 지난 1월~2월께 6명의 객실 승무원이 과로 증상과 함께 잇달아 쓰러져 논란을 촉발했다. 이 항공사에는 하루 14시간 연속 근무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에는 '대한항공 승무원 불법 노동력 착취'라는 제목으로 불안정한 비행과 대기스케줄 때문에 승무시간 외에도 휴식을 보장받지 못하고, 안전마저 우려된다는 내부 고발이 나왔다. 이 청원은 지난 9일 마감되기까지 8419명이 동의를 표했다. 대한항공이 이럴 정도면 다른 항공사는 안 봐도 뻔하지 않냐는 게 항공업계서 들리는 말이다.

 

비행기를 타보면 안다. 이륙전 승객을 도와 수하물을 짐칸에 올리는 것부터 시작해 대피요령 안내, 음료나 기내식 서비스, 여기저기 호출, 짬날 때 면세품 판매까지, 3~4시간 거리라면 정말 기내는 정말 잠깐도 쉴 틈없이 돌아간다. 특히 이착륙 때마다 스트레스가 큰 업무가 많아 하루에도 서너차례까지 단거리 비행을 하는 저비용항공사 승무원들의 과로 호소가 많다.

  

 

지금까지는 문제가 없었다는 항공당국 조사결과는 과연 이런 현실을 제대로 반영한 걸까? 들여다보니 국토부가 특별점검한 기간은 작년 11월부터 올 1월말까지 석달이다. 연말 휴가시즌이 끼긴 했지만 매년 4분기와 설 연휴를 뺀 1분기는 전형적인 항공산업 비수기다. 와중에 승무원 업무가 가장 한가한 때를 특별 점검기간이랍시고 설정한 것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앞으로 고치겠다는 승무원 근무 형태는 어떨까. 국토교통부는 객실승무원들의 과로 해소와 관련해 출퇴근 시간을 휴식시간에서 제외하고, 인력을 확충토록 하겠다는 것을 '항공사와의 권고나 협의로 유도하겠다'고 했다. 딱히 강제하는 것도 아니다.

 

그나마 강제성 있는 항공안전법 시행규칙 개정 내용을 보면 객실승무원은 뒷전이다. ▲휴식시간을 현행 최소 8시간에서 11시간으로 확대하고 ▲시차 4시간 초과지역 비행시 비행근무시간을 30분 축소하며 ▲예측불가 비정상상황 발생시 현재 2시간까지 연장하던 비행시간을 1시간으로 단축하는 내용이 모두 조종사에만 해당한다.

 

항공 규제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성격이 강하다. 한 번 사고가 나면 초대형급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까지 항공당국은 산업 육성 차원에서 규제를 풀어왔다. 그 사이 돈벌이 논리 속에 '서비스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국내 항공사 승무원들의 노동 환경은 옆에 동료가 언제 쓰러질지, 나는 또 언제 실신할지 모를 정도로 바닥을 기게 됐다.

 

얼마전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최근 익명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블라인드'에 장시간 비행 뒤 쉴 수 있는 공간으로 개보수 공사중이어서 물도 안나오는 호텔을 배정받았다는 처우불만이 한 언론사 보도를 통해 드러났다. 항공사가 비용을 아끼려고 저렴한 승무원 숙소를 찾은 결과다. 제 컨디션이 아닌 승무원에게 서비스는 커녕 안전을 기대할 수 있을까.
 

승무원이 건강을 담보하기 어려운 근로 환경 아래서 항공 안전이 확보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국토교통부가 항공산업 육성에 매몰돼 제대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위험 관리에도 소극적이라면 고용노동부라도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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