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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한국GM, 박수는 너무 이르다

  • 2018.05.14(월) 17:23

한국GM이 14일 오전 10시에 열려던 '경영 정상화 기자회견'이 무산됐다. 표면적으로는 이날 일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벌인 돌발 집단행동이 이유다. 하지만 애초에 경영진이 이런 사달도 예상하지 못했을까? 오히려 한국GM, 또 제네럴모터스(GM) 본사의 섣부름이 화를 자초했다는 생각과 함께 현장에서 발을 돌렸다.

 

▲ 14일 오전 10시 한국GM 부평공장에서 예정됐다가 취소된 '경영정상화 간담회' 단상 위에 빈 의자가 놓여 있다./윤도진 기자 spoon504@
 

애초부터 서두른 티가 꽤 났던 미디어 소집 행사였다. 이날 기자간담회는 사흘 전인 지난 주 금요일(11일) 저녁 늦게서야 자동차 담당 기자에게 통보됐다. 이미 한국 정부와 GM 본사 사이에 협상이 마무리 됐고, 지원 내용도 대부분 공개된 상황이었지만 GM은 더 보여줄 게 있다며 매체들을 불러모았다.

 

한국GM에서 ▲신형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디자인·개발 및 생산 ▲신형 크로스오버차량(CUV) 생산 ▲3기통 다운사이징 가솔린 엔진 개발과 생산 등을 약속했다는 게 미리 알려진 간담회 요지였다.

 

협상의 키를 쥐고 흔들었던 배리 엥글 GM 해외사업부문 사장과 카허 카젬 한국GM 사장, 데일 설리번 한국GM 영업·서비스·마케팅부문 부사장 등 고위임원 5명도 자리하기로 돼 있었다.

 

간담회장에는 줄잡아 40~50여개 매체 100여명의 기자들이 모였다. 기자들 사이에선 이미 협상도 마쳤는데 뻔한 얘기뿐이지 않겠느냐는 얘기도 오갔지만, 그래도 협상 내막이나 향후 신차 출시계획 등이 더 구체적으로 언급될 수 있다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간담회 시작을 앞둔 9시45분께, 외부에서 집회를 벌이던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비정규직지회 노조원 10여명이 간담회장인 부평공장 홍보간 대회의실로 들어왔다.

 

이들은  "비정규직 해결없이 정상화는 기만이다", "부실경영 불법파견 카허카젬 구속하라"라는 구호를 외친 뒤 한쪽 편에 피켓을 들고 서 간담회 참관을 요구했다. 예정없이 행사장에 들어왔지만 더 소란을 피우지 않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 금속노조 부평한국지엠지부 비정규직지회 노조원 10여명이 경영정상화 간담회장인 부평공장 홍보관 대회의실 한쪽에 들어서 피켓을 들고 있다..

 

한국GM 사측은 이들을 밖으로 물리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들이 자리를 버티자 경영진도 나타나지 않았다. 간담회 시작은 20여분 지체됐다. 이후 간담회를 준비한 사측 관계자는 노조의 참관 가부를 "기자들이 거수로 결정해달라"고도 했다. 하지만 몇 분 지나지 않아 현장 참석자들 의사확인 없이 "간담회를 취소키로 했다"고 소식을 전했다. 현장 밖 모처에 있던 경영진의 결정이라고 했다.

 

한국GM 사측 관계자는 "어떤 행동을 할지 알 수 없는 노조원들이 들어와 있는 상황에서 간담회를 정상적으로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회사 임직원들의 안전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라고 취소 결정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애초 비정규직 노조원들도 행사장 밖 시위까지는 협의가 된 상황이었는데 약속이 깨졌다. 사실 한국은 노조 소요문제로 GM 본사에서도 출장금지 구역으로 지정해 둔 상황이라 감행은 어렵다"고 말했다. 또 다른 돌발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걸 장담하지 못하기 때문에 경영진이 간담회를 취소했다는 결론이었다.

 

▲ 14일 오전 경영정상화 간담회 취소 발표 직후 박해호 한국GM 홍보담당 부장이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굳이 세세히 적은 건 한국 GM의 '경영 정상화'가 이미 거둬진 결실이 아니라 여전히 숙제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2월13일 군산공장 폐쇄 발표부터 요란했던 한국GM 사태가 최근 협상 종결로 모두 정리되지 않았다는 점, 현장은 여전히 봉합되지 못한 갈등이 수두룩하다는 사실이 이날 부평공장에서 드러난 민낯이었다.

 

시위에 나섰던 황호인 비정규직 노조 지회장은 "군산공장 폐쇄 발표 이후 지금까지 정부와 GM 양측 모두 비정규직 문제는 거론하지 않고 있다"며 "한국GM 경영 정상화가 어느 정도 진전한 만큼 이제는 법원에서도 불법으로 판정이 난 비정규직 사용 문제도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문제뿐만이 아니다. 군산도 마찬가지다. 한국GM 사태가 일단락 됐다고 하기에 그 '진앙'이었던 전북 군산에는 대책이랄만한 게 없는 게 사실이다. 폐쇄를 앞둔 한국GM 군산공장의 활용방안, 150개에 이르는 협력업체 지원 방안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얼마전 만난 전북 지자체 고위 관계자는 "군산지역 경제를 실질적으로 회생시킬 논의는 아직 시작도 안됐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 간담회 취소 직후 진행된 한국GM 사회공헌 행사. 왼쪽부터 한국GM 카허 카젬 사장,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인천지역본부 박은숙 본부장, 수혜자 가족, GM 해외사업부문 배리 엥글 사장,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임한택 지부장, 한국지엠 협신회 회장 문승 ㈜다성 대표(사진: 한국GM)

 

간담회 취소 직후 한국GM은 유정복 인천시장 등 지역 정치권 인사들을 대동하고 쉐보레 자동차 1000대가 팔릴 때마다 1대는 기증한다는 '네버 기브 업(Never Give Up)' 캠페인 소식을 전했다. 정상화 계획을 바탕으로 시장 신뢰를 찾아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회공헌활동 포장이나, 정상화에 대한 자화자찬식 간담회가 한국GM 구성원들의 생활을 이전 정상궤도로 이끌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날 행사에서 한국GM 경영진이 하려던 말들은 듣지 못하고 돌아왔다. 하지만 헛걸음은 아니었지 싶다. 한국GM 구성원들에게 경영 정상화는 '현재의 결실'이 아니라 '가져와야 할 미래'라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GM과 산업은행이 7조원 넘는 돈을 회생에 쏟아붇겠다고 해도 여전히 불확실한 부분이 많다. 한국GM 협상이 종결됐다고 해서 박수를 치기에는 너무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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