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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3·4세]⑤現重 정기선의 유일한 카드 '정공법'

  • 2018.06.20(수) 17:24

부친 재산공개때 본인 자금도 같이 공개
지주회사 지분 5% 매입에 세금 1440억원
투명승계가 해답.. 공익법인 역할 가능성

예금 2440만원과 산타페 차량 1대(2002년식)

 

재계서열 8위 현대중공업그룹의 후계자 정기선(37) 부사장의 12년전 재산목록이다. 25살이던 2006년 육군 장교(ROTC)로 복무하던 시기다.

 

현재 정 부사장은 3034억원어치 계열사 주식을 가지고 있다. 2440만원의 예금과 출고한 지 4년 된 중고차 1대가 전부였던 20대 청년이 수천억원대 주식부호로 성장한 것이다.

다만 정 부사장의 승계 과정은 편법 논란에 휩싸여온 다른 대기업 후계자와는 걸어온 길이 다르다. 

 

 

◇ 초고속 승진…관건은 지분승계

정 부사장은 군복무를 마치고 2009년 현대중공업에 대리로 입사한 이후 다시 외국을 나갔다가 2013년 부장으로 재입사했다.

 

재입사 2년만인 2015년 현대중공업 상무로 임원 반열에 오르며 본격적인 경영 승계를 알렸고 1년 뒤인 2016년 전무로 승진했다. 다시 1년 뒤 2017년에는 부사장이 됐다. 최초 입사기준으로 8년, 재입사 기준으로 4년 만에 지금의 직함 ‘부사장’에 오른 것이다.

 

정 부사장이 초고속 승진을 하던 시기 현대중공업은 조선업 불황의 파고에 시름하던 때여서 '로열패밀리만 승승장구한다'는 논란도 있었다. 그러나 다른 대기업과 달리 부친이 경영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 현대중공업의 특수한 상황도 감안해야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경영 승계를 ▲직위 승계 ▲지분 승계로 나눠서 본다면 정기선 부사장의 직위 승계는 시간문제일 뿐이다. 언제든 '부(副)’자를 떼고 사장, 또는 그 이상의 직위에 오르더라도 이상할 것은 없다.

 

관건은 지분 승계다.

 


◇ 투명하게 드러난 재산목록

다른 대기업 후계자들은 숨겨진 재산이 잘 드러나지 않지만 정 부사장은 다르다. 너무 뻔히 드러나 있다. 부친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이 정계에 몸담을 때 제출한 재산 신고내역에 그의 재산목록도 함께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정 부사장은 현대중공업 대리로 입사한 2009년에 예금 4242만원과 산타페 1대가 재산의 전부였다. 3년전 육군장교 시절과 큰 변동이 없다. 해외에 거주하던 2010년~2012년에는 차량을 처분하고 예금액도 오히려 줄었다. 현대중공업 부장으로 복귀한 2013년(32살)에는 1억770만원의 예금을 신고했다. 국내 굴지의 재벌 3세 재산이 처음으로 1억원을 넘긴 순간이다.

 

정 부사장의 재산목록이 마지막으로 확인되는 시점은 부친이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위해 국회의원직을 내려놓은 2014년. 그해 1억9560만원의 예금과 4360만원짜리 호텔 헬스회원권을 신고했다.

상장이든 비상장이든 주식은 단 한 주도 없었다. 통상 재계 3·4세들은 향후 경영권 승계에 대비할 자금줄로 비상장회사 주식을 보유하고 있지만 정 부사장은 예외였다.

지금으로부터 4년 전 바로 이 재산이 정 부사장의 승계자금 출발점이다. 다른 재산이 있었다면 허위로 재산을 신고한 셈이고 공직자윤리법 위반이다. 정 부사장은 마지막 재산신고 다음해 현대중공업 주식 53주를 상여금으로 받았다. 이듬해에도 564주를 상여금으로 받았지만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 지분 5% 확보하는데 세금 1400억

본격적인 지분 승계 신호탄을 쏘아올린 건 올해 들어서다. 현대중공업그룹이 지주회사 전환을 마무리한 올해 3월 현대로보틱스(현 현대중공업지주) 지분 5.1%(83만1000주)를 3540억원에 매입했다. 그룹 지분구조의 꼭대기에 있는 지주회사 주주순위에 부친 정몽준 이사장(25.80%)에 이어 두 번째로 이름을 올린 것이다.

 

그러나 4년 전 자신의 통장에 1억9560만원만 있었던 정 부사장이 단숨에 3540억원어치 주식을 매입할 자금이 있을 리 없다. (다시 강조하지만 당시 신고하지 않은 재산이 있다면 법 위반이고 4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수천억원의 재산을 불렸다해도 의심의 눈초리를 살 수밖에 없다.)

 

정 부사장의 주식매입자금은 부친 정몽준 이사장이 증여한 돈(3040억원)이다. 나머지 부족분은 현대로보틱스 주식을 담보로 증권사에서 대출을 받았다.

일단 지분은 확보했다. 다음은 세금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3040억원을 증여받은 정 부사장은 최고세율 50%를 적용받아 1500억원에 가까운 증여세를 내야 한다. 기존에 증여받은 재산이 없다면 자녀 증여재산공제(5000만원)와 신고세액공제(5%)를 적용받는데, 이를 빼더라도 자진 납부할 증여세는 1439억원이다.

 

증여시점으로부터 6개월 후인 오는 10월말까지 관할 세무서에 신고한 후 증여세를 현금으로 일시 납부하거나 5년간에 걸쳐 일정 이자(1.8%)를 부담하고 나눠서 낼 수 있다.

 

지주회사 지분 5%를 매입하는데 1440억원의 세금을 내야하는 상황인데 4년전 전 재산이 2억원 남짓이던 정 부사장이 천문학적인 세금은 또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도 관건이다.

 

 

물론 가족 명의의 재산 중 주식을 제외한 토지·건물 등 부동산자산을 지난 4년간 증여세를 내고 물려받았을 수도 있다. 지난 4년간 연봉공개 의무가 없는 미등기임원으로 재직하면서 받은 급여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후계자에서 최고의 절세전략(tax planning)을 조언해줄 세금전문가도 있을테니 증여세 걱정을 하는 것은 ‘연예인 걱정’과 유사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증여세를 해결하고 난 후에도 여전히 그는 현대중공업그룹 지주회사의 2대주주여서 부친 지분(25.80%)을 ‘정공법’으로 물려받을 또다른 플랜을 고민해야한다는 점이다.

공익재단의 활용 가능성도 떠올려 볼 수 있다.

 

부친이 이사장으로 있는 아산사회복지재단은 현재 지주회사 지분 1.87%를 가지고 있다. 동생 정남이씨가 상임이사로 있는 아산나눔재단도 지주회사 지분 0.48%를 보유중이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라 비영리 공익법인에 증여하는 지분은 재단별로 5%까지 세금을 물리지 않는다.

 

따라서 정몽준 이사장이 보유한 지주회사 지분 중 일부를 재단에 증여하면서 개인의 세부담을 줄이는 방안도 있다. 다만 현 정부 공정거래위원회는 공익재단을 통한 우회승계 논란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정 부사장의 승계 방식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투명한 정공법이 유일해 보인다.

 

정당하게 대가(세금)를 지불하는 승계 경로. 이는 모든 대기업 후계자가 밟아야할 코스였지만 우리나라 기업문화는 그렇지 못했다. 정 부사장은 정공법의 승계와 정공법의 경영 모두를 보여주는 최초의 3세 경영인이 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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