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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3·4세]⑨한화 3형제의 마지막 승부수

  • 2018.06.25(월) 15:39

13년전 한화S&C 지분 30억에 매입
현재가치 1.3조..지배구조 정점으로

"자식 키우는 일이 마음대로 안되는 것 같다."

지난해 11월 김승연(67) 한화그룹 회장의 셋째아들 동선(30)씨가 음주 폭행으로 물의를 일으킨 사실이 알려지자 김 회장은 "아버지로서 책임을 통감한다. 피해자들께 사과드린다"며 이 같은 말을 남겼다. 한화 관계자에 따르면 김 회장은 폭행 사건 소식을 듣고 낙담해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고 한다.

 

자식의 철없는 행동에 속 썩는 부모가 하나 둘이 아니지만 김 회장에게는 대놓고 말할 수 없는 사연이 있었다. 김 회장과 부인 서영민(58)씨는 동관·동원·동선 등 아들 3형제를 뒀다. 동선 씨가 사고를 친 시기(지난해 9월말)는 3형제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기 위해 10여년간 공들인 작업이 정점으로 치닫고 있던 때다.

이를 이해하려면 먼저 한화그룹의 IT서비스 회사인 한화S&C를 알아둘 필요가 있다.

▲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왼쪽부터), 장남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 차남 김동원 한화생명 상무, 삼남 김동선 전 한화건설 팀장.


◇ 대물림을 위한 회사

 

한화S&C는 2001년 3월 ㈜한화의 전산사업부문을 떼어내 설립한 회사다. 그룹내 전산시스템 구축과 유지·관리 사업으로 커온 탓에 재벌의 일감몰아주기 사례에서 단골로 등장했다. 이 회사의 주주는 단 3명. 바로 동관·동원·동선 씨다.

 

동선 씨의 폭행 사건은 한화S&C가 '묵은 때'를 벗겨내려던 시기에 일어났다. 당시 한화그룹은 한화S&C를 계열사 지분을 관리하는 투자회사(존속회사)와 IT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회사(신설회사)로 물적분할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물적분할이란 존속법인이 신설법인의 지분을 100% 보유하는 형태로 회사를 쪼개는 걸 말한다. 존속회사 주주가 자신의 지분율만큼 신설회사 지분을 나눠갖는 인적분할과 차이가 있다.

◇ 회사를 나눈 까닭

물적분할이 일어나면 '동관·동원·동선→한화S&C'의 지배구조가 '동관·동원·동선→투자회사→한화S&C'로 살짝 바뀐다. 그냥 놔둬도 될 것 같은데 한화그룹이 이런 머리 아픈 작업을 한 것은 일감몰아주기 제재를 피하려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현행 총수일가의 사익편취는 총수 일가의 지분이 일정 수준(상장사 30%·비상장사 20%) 이상일 때만 제재할 수 있다. 실제로는 투자회사를 통해 한화S&C를 지배하는 구조라 하더라도 단지 한화S&C에 대한 총수 일가의 직접 지분이 없다면 제재대상에서 빠진다는 얘기다.

 

삼성 계열사를 상대로 급식업을 하는 삼성웰스토리도 비슷한 이유로 제재를 받지 않고 있다. 삼성웰스토리는 삼성물산이 지분 100%를 보유한 회사다. 삼성물산의 최대주주는 이재용 부회장으로 그를 포함한 특수관계인의 지분이 40%에 달하지만 총수 일가가 삼성웰스토리 지분은 단 한 주도 들고 있지 않아 제재대상에서 벗어나 있다. 한화는 삼성웰스토리의 사례를 눈여겨본 게 아닐까.

 


◇ 삐끗할 뻔한 과거사 지우기

 

김 회장 입장에서 그나마 다행인 건 동선 씨 사건이 물적분할이 끝났을 때 불거졌다는 점이다. 그 전에 알려졌다면 한화 총수 일가에 대한 비난여론이 들끓으며 분할 계획에 차질이 생겼을지 모른다.

 

한화S&C는 지난해 10월 물적분할 뒤 사명을 'H솔루션(존속회사)'으로 바꾸고, 새로 설립한 IT서비스 회사(신설회사)에 기존 명칭(한화S&C)을 넘겼다. 곧 지금의 한화S&C는 과거의 한화S&C와 다른 회사다.

 

오는 8월부터는 지금의 한화S&C를 군수사업을 하는 한화시스템과 합병해 더는 한화S&C라는 이름을 쓰지 않는다. 이와 함께 합병법인(한화시스템)에 대한 H솔루션의 지분을 20% 밑으로 낮춰 총수일가의 간접지배 논란도 잠재우기로 했다. 쉽게 말해 한화S&C의 어두웠던 과거를 깔끔하게 지우겠다는 뜻이다.

 

 

◇ 13년전 그 때 그 순간

 

주목해야할 건 H솔루션이다. 개명만 했을 뿐 동관·동원·동선씨의 지분율은 변함이 없다. 지난해 말 이 회사의 순자산은 1조3637억원. 발행주식수(500만주)로 나누면 1주당 27만원짜리다. 이 같은 주식을 동관씨는 250만주(50%), 동원씨와 동선씨는 125만주씩(각각 25%) 갖고 있다. 금액으로 치면 동관씨는 6818억원, 동원·동선씨는 각각 3409억원어치를 보유한 셈이다.

 

3형제가 H솔루션, 곧 과거 한화S&C의 주식을 처음 사들인 건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화그룹의 승계플랜이 본격적으로 작동한 시기다.

그해 4월 먼저 동원·동선씨가 아버지 김 회장에게서 한화S&C 지분 33.3%를 총 10억원(주당 5000원)에 사들였고, 곧이어 장남 동관씨가 ㈜한화가 갖고 있던 나머지 지분(66.7%)을 20억4000만원(주당 5100원)을 주고 전량 매입했다.

 

현재 1조3000억원짜리 회사의 경영권을 확보하는데 들어간 초기 자금이 30억4000만원에 불과했던 셈이다. 그들의 나이 23세, 21세, 15세 때다.

 


◇ 30억 주고 산 회사, 지금은 1.3조

 

공교롭게도 2001년 설립 이후 비교적 먹고 살만했던 한화S&C가 동관·동원·동선씨가 지분을 매입하기 직전 해인 2004년 돌연 적자로 돌아섰다. 이는 3형제가 액면가(5000원) 수준으로 한화S&C 지분을 확보할 수 있는 근거로 작용했다.

 

2010년 시민단체가 ㈜한화가 헐값으로 한화S&C를 매각해 회사에 손실을 끼쳤다며 소송을 제기했으나 지난해 9월 대법원은 문제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동선씨가 음주 폭행 당시 "나를 주주님으로 불러라"라고 언급했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한화S&C 지분을 100% 확보한 뒤에는 일사천리였다. 3형제는 2007년 말까지 3차례에 걸친 유상증자에 참여해 총 1312억원을 한화S&C에 투입한다. 부족한 돈은 아버지에게서 받은 ㈜한화 주식을 팔아 조달했다.

이게 끝이었다. 한화S&C가 계열사 일감으로 쑥쑥 크면서 3형제는 더 이상 돈을 집어넣을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2014년부터는 매년 배당금을 받아 지금까지 총 1150억원을 회수했다. 배당금의 재원이 그룹 일감에서 나왔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물적분할 전인 2016년 한화S&C의 그룹 일감 의존도는 전체 매출의 약 70%에 달했다.

 

 

◇ 알짜사업, 3형제 품으로

H솔루션을 눈여겨봐야하는 건 단지 3형제의 돈줄 역할을 하는데서 끝날 회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앞으로 한화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자리잡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한화S&C는 2006년까지만 해도 지배구조 측면의 존재감은 이렇다 할 게 없었다. 그러다 2007년 군장열병합발전을 설립해 이듬해 100% 자회사로 편입하고, 2009년에는 여수열병합발전을 손자회사로 만들면서 서서히 태풍의 눈으로 부상했다. 군장열병합과 여수열병합을 합쳐 탄생한 게 한화에너지다.

한화에너지는 2014년 삼성과 한화의 '빅딜'을 계기로 삼성종합화학(현 한화종합화학)을 인수한다. 그러고는 2년 뒤 한화종합화학은 한화그룹의 태양광사업을 담당하는 한화큐셀코리아 지분(50.2%)을 사들였다. 이렇게 해서 'H솔루션→한화에너지→한화종합화학→한화큐셀'로 이어지는 지배구조가 탄생했다. 한화그룹의 주요 에너지 사업이 H솔루션, 더 정확히는 3형제 손에 들어간 것이다.

 


◇ 승계를 위한 마지막 단추

 

앞으로 3형제는 H솔루션을 통해 ㈜한화의 지분을 직접 매입하거나 ㈜한화와 합병시켜 그룹 전체의 지배권을 확보하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동관·동원·동선씨의 ㈜한화 지분율이 7.8%에 불과해 이대로는 그룹 전체에 대한 안정적인 지배력을 행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H솔루션이 ㈜한화 지분을 시장에서 직접 사들이는 방안은 가장 잡음이 덜한 방식이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부담이 커지는 단점이 있다. H솔루션 자체적으로 ㈜한화 지분을 살 돈을 마련해야하고, 돈이 있더라도 ㈜한화 주가가 오르면 원하는 만큼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론되는 게 H솔루션과 ㈜한화의 합병 시나리오다. 현재의 ㈜한화와 합칠 수도 있고 ㈜한화를 분할해 지주회사를 만든 뒤 이 지주회사와 합치는 등 여러 방식이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상장사인 ㈜한화와 비상장사인 H솔루션이 합칠 때 그 파장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할 때도 그랬다. 두 회사는 상장사였음에도 나중에 총수 일가로 불똥이 튀었다. 3형제는 감당할 수 있을까. 한화그룹의 마지막 단추는 아직 채워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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