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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그들이 폭염 속 거리에 선 까닭

  • 2018.08.02(목) 16:06

진에어 직원들 면허취소 여부에 '일자리 잃을라…'
총수갑질 더해, 오락가락 국토부까지 '불안 가중'

낮 최고 39.6도. 지난 1일은 111년만에 서울이 가장 뜨거웠다는 날입니다. 위에서 뙤약볕이 아래서 아스팔트가 뿜어내는 열기가 아직 뜨거운 그날 오후 7시께 서울 시내 복판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 150여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 지난 1일 피켓을 들고 선 진에어 직원. /사진=진에어 직원모임 제공
 

도심집회 치고는 규모가 작은, 잘 눈에 띄지 않는 규모입니다. 이들은 한진그룹 계열 대한항공의 동생 격인 저비용항공사(LCC, Low Cost Carrier) 진에어 직원들입니다. 네, 맞습니다. 바로 그 총수 막내딸의 '물컵  갑질'로 올 초부터 구설에 오른 그 항공사입니다.

 

요즘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 항공사 직원들을 거리에서 볼 일이 잦습니다. 이들은 총수 자신 혹은 일가의 비상식적인 언행과 무리한 판단 탓에 잘못을 저지른 사람 대신 사회적 지탄을 받고, 또 승객 응대 업무를 하며 온갖 불편한 상황을 겪는 것을 견디지 못할 지경입니다. 그래서 누군가 이를 책임지도록 하고,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 달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진에어 직원들의 목소리는 그 내용과 결이 조금 다릅니다. 이 더위에 모자,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승무원과 정비사, 일반직 직원들은 "잘못된 항공법 우리는 억울하다", "총수일가 책임져라", "대통령님! 일하고 싶습니다"라는 주장을 적은 선전용 종이를 손에 들었습니다.

  

이들이 폭염을 무릅쓰고 거리에 나선 이유는 자신들의 일터인 진에어가 공중분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맨 앞에 있습니다. 휴가철 성수기 하루 종일 업무에 지쳤을 텐데 에어컨 켜진 실내를 박차고 나온 데는 그런 절절한 고용불안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 지난 1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진에어 직원들이 '생존을 위한 대국민 호소대회'를 열고 있다/사진=진에어 직원모임 제공

  

알 만한 분들은 아시겠지만 상황은 이렇습니다. 진에어 물컵 갑질 사건 후 그와 별개로 미국 국적을 가진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진에어의 등기이사로 재직했던 사실이 문제가 됐습니다.

 

현행 항공사업법 상(9조6항) 등기임원 중 외국인이 있으면 정기항공운송사업 면허를 받을 수 없습니다. 이는 국가기간산업인 항공업을 보호하기 위해 항공사 임원에서 외국인을 배제한다는 취지입니다. 하지만 진에어는 과거 조 전무 재직(2010년 3월~2016년 3월)에도 불구하고 면허를 받았다는 겁니다.

 

항공당국인 국토교통부는 처음에는 이에 대해 비공식적으로 당시 법령상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가, 이후 공식적으로 '당시 항공법령에는 등기이사 변경 등에 관한 보고의무 조항이 없어 지도·감독에 제도상 한계가 있었다'고 해명을 내놨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항공사를 관리하는 국토부와 진에어 소속 한진그룹이 유착이 있는 것 아니냐는 식의 지적이 더해지자 수세에 몰린 국토부는 태세를 바꿨습니다. 김현미 장관 지시로 내부 감사를 실시하고, 면허 취소 등 후속처분이 가능한지 법률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으로 돌아선 겁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석달 넘게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 달 여 전인 지난 6월29일, 법리검토결과 '면허 취소'와 '현 시점 취소는 어렵다'는 엇갈린 견해가 있다며 판단을 청문절차로 넘겨둔 상태입니다. 이러다가 실제로 면허가 취소되면 당장 비행기가 뜨지 못하고, 진에어 직원들은 출근할 곳을 잃을 수 있습니다.

 

▲ 지난달 25일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 대로변에서 첫 집회를 가진 진에어 직원들./사진=진에어 직원모임 제공

 

느닷없는 사태를 맞게 된 이 LCC 직원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항공 관련법을 뜯어보니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해석이 가능할 정도로, 허술하게 만들어져 있던 걸 발견했다고 합니다.

 

면허 취소 여부의 근거가 되는 현행 항공사업법 9조에는 외국인을 임원으로 두지 못하도록 한 규정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와 달리, 항공안전법 10조에는 외국인이 법인등기부상 대표자이거나 외국인이 등기 임원 수의 2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법인이 소유하거나 임차한 항공기는 등록할 수 없게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항공안전법상 규정으로는 외국인이 등기 임원 수의 2분의 1 미만인 법인의 항공기는 등록 가능한 것으로도 해석 할 수 있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게 이들 주장입니다. 항공법 취지를 살피면 실질적 항공업체 소유 주체가 외국인이어서는 안된다는 게 핵심인데, 임원 한 명도 두지 못하게 하는 건 모순이라는 겁니다.

 

특히 항공사업법 9조는 항공안전법 10조의 등록 기준을 가져다 쓰고 있다는 점에서 앞뒤가 안맞는다고 게 이들의 말입니다. 그러니 이를 근거로 삼아 면허를 취소하는 것 역시 말도 안된다는 겁니다. 자기들만 '부실 행정의 희생양'이 될 판이라는 겁니다.

 

진에어 면허취소를 가를 청문회는 지난달 30일 한차례 열렸고 오는 6일과 이달 중하순 께 등 세 차례에 걸쳐 이뤄집니다. 청문결과에 따라서 진에어 직원들은 하루 아침에 직장을 잃을 수도 있는 처지입니다. 진에어 직원들은 2일 3000여장의 탄원서를 들고 세종시 국토부를 찾기도 했습니다.

 

"이런 사태를 만든 총수 일가에게 면죄부를 주거나 봐달라고 하는 게 아닙니다. 문제가 있는 부분은 바로잡아야 하고 법을 어겼다면 벌을 받는 게 마땅합니다. 하지만 명확하지 않은 법령과 비판 여론을 의식해 오락가락 하는 국토부의 또다른 갑질 탓에 우리는 하루하루가 죽을 맛입니다."

 

진에어 한 직원은 이렇게 울분을 토해냈습니다. 국토부는 면허 취소 여부 판단이나 후속 조치에 근로자 고용문제도 감안할 것이라지만 이들의 불안감은 가시질 않습니다. 지난달 25일, 그리고 지난 1일 시내에서 집회를 한 진에어 직원모임은 노동조합 설립도 공식화 했습니다. 진에어뿐 아니라 항공업계에 몸담고 있는 이들에게 이번 여름은 더욱 푹푹 찌는 찜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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