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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혁신]현대중공업, '5G'에서 길을 찾다

  • 2019.06.14(금) 08:37

[창간 6주년 특별기획]
작년 말 세계 최초로 5G 도입...'KT 협업'
업무 효율성·안정성·보안성↑...생산성 향상

#1. "3번 도크 문제 발생" 현대중공업 울산 조선소 근로자 A씨가 부리나케 달려간다. 그런데 손이 가볍다. 예전 같으면 도면 뭉치나 기계 설명서, 야드 약도 등을 들고 달렸을 터지만 지금 그의 손에 오직 스마트폰 뿐이다. 그는 앱으로 설계 도면을 열고 AR(증강현실) 글라스를 착용했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 그의 눈에 보이지 않았던 화살표가 도면 위에서 깜빡인다. 문제 발생 지점이다. A씨가 마이크에 대고 "점검 이력과 해결 방법을 알려줘"라고 말하자 이력표와 설명서가 나타났다.

#2. 늦은 오후, 야간 경비원 B씨는 지금 화상 순찰 중. 갑자기 야드 한편의 밀폐 구역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B씨는 화재 발생 화면과 장소를 야드 내 안전 요원들과 바로 공유했다. 그러자 사고 현장서 가장 가까운 C씨가 달려가 화재를 진압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이 곳은 통신 장애가 잦아 CCTV 감시가 쉽지 않았던 곳. 그러나 최근 5G를 설치한 이후 밀폐구역이나 사각지대까지 감시가 가능해지면서 큰 화재를 막을 수 있었다.

여의도 면적(약 290만㎡)의 2.4배에 이르는 현대중공업 울산 조선소의 일상이 되고 있는 장면들이다.

◇명품 조선소에 5G를 더하다

'5G(5세대 이동통신) 시대'에 접어든다는 것은 단순히 통신 속도의 빨라짐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을 실시간으로 연결함으로써 작업 환경, 한발 더 나아가 산업계 전반의 새 패러다임을 기대케 한다. 흔히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대표적 산물로 정의된 공장 자동화나 자율주행, 사물인터넷(loT)등이 구현 가능한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리고 이같은 산업적 혁신은 세계에서 제일 먼저 5G를 상용화 한 우리나라 제조업 현장에서 가장 빠르게 일어나고 있다.
 
'세계 1위 조선사' 현대중공업은 작년 말부터 세계 최초로 5G를 생산 현장에 적용하고 있다. 10년 넘게 손발을 맞춰 온 '통신짝꿍' KT의 5G기술을 도입, 선박 제조 과정에 일부 활용하고 있다.

아직은 시범 단계에 불과하지만, 5G가 가져온 작업장의 변화는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무엇보다 시간과 인력에 대한 불필요한 낭비가 줄면서 업무 효율성이 크게 높아졌다.

예컨대 조선소에는 다양한 자재들이 적치 돼 있는데 위치가 분산돼 있을 경우 근로자들이 자재를 찾고 이를 다시 현장에 투입하는 데 많은 인력과 시간이 소모된다. 또 복잡한 기계 작동 방식을 익히고, 방대한 야드의 이동 경로를 숙지할 때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5G 세대에선 이 모든 게 '불가능' 하다. 스마트폰이나 패드만 있으면 '앱' 접속만으로 자재나 기계 위치, 기계 작동 방법, 이동 경로 등 작업장 곳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종종 발생하는 조선소 내 작업자들의 안전 사고도 크게 줄었다. 그동안 조선소는 워낙 거대하고, 밀폐공간이 많아 통신 환경을 구축하기가 쉽지 않았다. 때문에 전파가 잘 닿지 않는 사각지대에선 작업 상황과 근로자들의 안전 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다.

지난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MWC 2019' 전시관에서 360도 라이브 시큐리티를 체험하는 한 관람객의 모습/사진=KT제공

KT가 개발한 '360도 스마트 서베일런스'는 360도 폐쇄회로(CCTV)를 통해 밀폐공간이나 사각지대의 관제가 가능하다. 고해상도의 360도 영상을 5G 네트워크로 연결해 실시간 모니터링 할 수 있다.  화재 발생이나 유해가스 유출, 근로자가 쓰러지는 등 비상 상황이 바로 감지된다.

사후 대처도 빨라졌다. '360도 라이브 시큐리티 서비스'는 피트360 시큐리티라는 장비를 활용해 360도 영상을 고해상도로 촬영하고 5G 네트워크로 딥러닝 기반 영상분석서버에 실시간으로 전달한다. 이후 전달받은 영상을 분석해 그 결과를 현장에 출동한 요원과 공유하도록 지원한다.

작업의 질도 개선됐다. '5G AR(증강현실) 서포터'는 AR글라스를 활용한 산업현장 원격지원 솔루션이다. 영상통화뿐 아니라 산업 환경에서 필요한 도면, 문서, 동영상 등을 AR 글라스를 통해 볼 수 있다.

이처럼 5G 도입은 업무 효율성을 올림과 동시에 작업자들의 안정성과 조선소내 보안성을 높이면서 작업장의 전체 생산성도 크게 개선시켰다는 평가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조선소 작업자가 360도 카메라가 달린 목걸이 밴드를 착용하고 증강현실 기술을 접목한 'AR글라스'를 활용하면서 작업장 생산성이 40%가량 향상됐다"며 "5G 기술 덕분에 가능한 변화다"고 말했다.

◇수익성 및 세계 최대 스마트 조선소 입지 강화

현대중공업은 5G가 가져온 작업장 혁신을 몸소 체험한 만큼, 올 하반기 KT와의 본계약에 나선다. 이를 통해 모든 작업장의 생산성을 향상시켜 오랫동안 답보 상태에 빠진 수익성을 개선시키겠다는 각오다.

아울러 명실상부 세계 최대 스마트 조선사의 입지도 다진다. 사실 현대중공업과 IT의 결합은 그리 낯선 일이 아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작업장에  ERP(기업자원관리), 3D설계(CAD)를 이용해 작업장내 업무 효율성을 지원해 왔다.

이동통신망이 들어선 2009년엔 KT와의 협약을 통해 세계 처음으로 조선소에 와이브로(무선광대역통신망)를 설치했다. 이후 3G, LTE 설치 등을 잇따라 도입하면서 글로벌 스마트 조선소로 자리메김해 왔다.

현대중공업은 이번 5G 기술을 통해 국내외 경쟁 업체들의 추격을 따돌리는 한편, 세계 최대의 5G 조선사로서의 입지를 재차 확고히 한다는 계획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오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코리안 5G 테크 콘서트에서 5G 플러스(+) 추진전략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때마침 정부의 지원도 더해진다.

정부는 내년부터 4년간 부산·울산·경남의 주요 조선소를 대상으로 스마트(초연결·초저지연·지능형) 통신환경을 조성하는 '5G 기반의 조선해양 통신플랫폼' 개발키로 했다.

또 조선사들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한국형 스마트 야드' 핵심기술 개발 5개년 사업을 내년에 착수, 곧 신규사업을 위한 예비타당성 조사에 들어갈 방침이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5G기술의 선제적 도입을 통해 통합 스마트 선박 솔루션을 고도화하는 한편,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접목한 스마트 야드 구축을 위한 기술 확보에도 적극 나설 예정"이라며 "이는 향후 현대중공업의 핵심 역량과 글로벌 경쟁력을 더욱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혁신(革新). 묵은 제도나 관습, 조직이나 방식 등을 완전히 바꾼다는 의미다. 과거 한국 기업들은 치열한 변화를 통해 성장을 이어왔고, 유례를 찾기 힘든 역사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 성장공식은 이미 한계를 보이고 있다. 성장이 아닌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처지로 몰리고 있다. 비즈니스워치가 창간 6주년을 맞아 국내외 '혁신의 현장'을 찾아 나선 이유다. 산업의 변화부터 기업 내부의 작은 움직임까지 혁신의 영감을 주는 기회들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새로운 해법을 만들어 내야 하는 시점. 그 시작은 '혁신의 실천'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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