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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대제의 우려대로' 인텔의 반도체 수직계열화 '시동'

  • 2019.10.21(월) 15:19

신형 메모리 반도체 개발 공표…디램과 낸드 혼합
RD램 이어 야욕 드러내…삼성전자·하이닉스 '촉각'

인텔은 비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 업체다. 중앙처리장치(CPU) 분야에서 80~90% 점유율로 2위 업체 AMD를 멀리 따돌리고 있다. CPU는 운영체제(OS)의 명령을 받아 D램, 낸드플래시를 포함한 메모리 반도체 등 컴퓨터 주변기기를 조율한다. 이 때문에 CPU는 '비메모리 반도체'의 꽃이라 불린다.

CPU는 역할이 막중한 만큼 하위 생태계를 좌지우지 할 힘도 지녔다. 자사 CPU와의 호환성을 무기로 특정 기업·제품을 편애하거나 멀리하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어서다. 특정업체 메모리 제품을 동시에 쓸 경우 전력 사용량을 줄이고 성능을 더 높이도록 '궁합'이 맞도록 반도체 설계구조를 짜는 방안도 가능하다.

지금은 블록체인협회 회장을 역임중인 진대제 전 삼성전자 사장은 회사 1990년대 이같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인텔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메모리 업체가 CPU 업체 말 한 마디에 '바람 앞에 등불 신세'가 될 가능성을 염려한 것이다.

그는 지금은 중단됐지만 과거 '알파칩'으로 상징되는 자체 CPU 개발을 추진하며 "곧 인텔의 영향력에서 독립하자는 독립선언과도 같은 의미였다"고 강조하기까지 했다.(※관련기사 : 삼성전자, '알파칩의 아쉬움' 지울까)

그런 그의 걱정은 기우가 아니었다. 그것도 더 안좋은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인텔이 비메모리뿐만 아니라 신형 메모리에도 손을 뻗어 '반도체 생태계 수직계열화'를 추진하고 있어서다.

◇ 인텔의 연이은 도전

인텔은 사실 메모리 반도체 시초다. 1970년대 메모리 반도체 D램을 처음 만들어내는 쾌거를 이뤘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기술력은 물론 상대적으로 저렴한 인건비를 지닌 일본의 공세에 직면했다. 결국 인텔은 1985년 D램 사업에서 철수하고 대안으로 CPU 사업에 진출한다. 일본이 과거 삼성, 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에 메모리 반도체 주도권을 뺏겼던 과거를 인텔은 이미 경험했다.

2000년대 RD램 필두 생태계 영향력 강화방안 모색
낸드 단수 높이면서 차세대 제품 내놓으며 '칼 갈아'
삼성과 하이닉스, 차세대 제품 내놓고 대체처로 대응

인텔이 물론 메모리 시장에 두 손 놓고 있지는 않았다. 직접 제품을 만들지는 않지만 간접적으로 생태계에 영향력을 행사한 전례가 있다. 램버스 D램이 대표적이다.

2000년대 인텔은 경쟁사 AMD와 경쟁에서 고전했다. 7세대 CPU 경쟁에서 AMD가 뛰어난 성능의 7세대 제품 '애슬론'을 내놓자 인텔은 시장의 외면을 받았다. 인텔이 이에 대응해 내놓은 신제품이 그 유명한 '펜티엄4'다. 다만 이를 탑재할 메인보드가 불량으로 전량 리콜(결함보상)되는 악재를 겪으며 초기 모델 수요가 급감했다. 당시 90%에 육박했던 인텔의 CPU 시장 점유율은 60%대까지 축소됐다.

인텔은 회심의 카드로 램버스사가 만드는 램버스 D램(RD램)과 CPU 호환성을 내세운다. 당시 메모리 시장 판도가 싱크로너스 D램(SD램)에서 다음 세대 D램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D램 성능향상이 더뎌 향상된 CPU 성능을 소비자가 온전히 체감하지 못해서다.

RD램은 더블데이터레이트(DDR) D램(DDR D램)과 더불어 떠오르는 기대주였다. 인텔은 성능 제고, 저전력 등 호환성을 무기로 RD램을 전략적으로 밀어주며 AMD와의 차별화를 시도했다. AMD는 자사 CPU와 DDR D램 조합을 밀었다.

문제는 RD램의 가성비였다. 속도는 DDR D램보다 빨랐지만 높은 가격이 소비자들에게 높은 문턱으로 여겨졌다. 더군다나 램을 짝수개로 꽂아야만 작동하는 구조도 걸림돌로 작용했다. 당시 조너선 로스 골드만삭스 애널리스트는 "램버스 D램과 DDR의 전반적인 성능차이는 아주 작지만 비용차이가 엄청나다"고 혹평했다. 판도는 결국 DDR D램으로 넘어간다.

인텔은 결국 시장의 외면으로 RD램 지원을 2003년부터 포기한다. CPU를 통해 메모리 생태계에도 영향력을 미치려던 시도가 좌절됐다. 마이크론과 손잡고 생산하던 낸드플래시 사업도 2013년 삼성전자가 셀을 세로로 적층하는 최초의 V낸드를 내놓으며 영향력이 미미해졌다. 인텔이 V낸드를 내놓은 것은 그로부터 2년 뒤인 2015년이다.

◇ 차세대 제품으로 '재공략'

인텔은 그 뒤로도 메모리 시장에 대한 관심을 꺼두진 않았다. 메모리 시장의 폭발적 성장력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의 발전로 대용량 데이터를 처리하고 저장할 수요가 늘고 있다. 인텔 입장에서 CPU와 더불어 메모리까지 생산하면 이익이 배가 된다.

인텔은 2017년 마이크론과 연구한 기술이 투입된 '옵테인'을 내놓는다. 이 제품은 D램과 낸드의 장점을 액기스로 뽑아 담았다. 컴퓨터를 껐다 켜면 정보가 사라지는 D램의 단점을 극복했다. 또 데이터 처리속도를 끌어 올려 정보를 저장하면서도 속도가 느린 낸드의 아쉬움을 보완했다. D램보다 성능은 높지만 낸드보다 저장용량은 작아 두 제품 사이 '중간지대'를 공략하는 일환이다.

인텔은 더 나아가 지난달 26일 서울 종로구 JW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에서 열린 '메모리&스토리지 데이 2019'에서 내년까지 성능을 높인 2세대 옵테인, 144단 낸드(QLC)를 내놓을 계획을 밝혔다. 메모리 반도체 1, 2위인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안마당에서 선전포고를 한 셈이다. 삼성과 하이닉스의 낸드 단수는 TLC(144단)와 달리 QLC는 96단에 머문다. QLC는 TLC에 비해 속도가 느리고 수명이 짧다.

인텔은 메모리 반도체 가격경쟁력도 제고하려 하는 등 RD램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절치부심 중이다.

◇ 삼성·하이닉스 '손 놓지 않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다. 확고한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1, 2위 업체지만 가치사슬 상위 업체가 호환성 등을 무기로 밥그릇을 침범한다면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아직은 옵테인이 초기 제품인 만큼 신뢰성 등의 이유로 서버업체들이 구매를 망설이고 있지만 CPU와 연계성이 높아진다면 메모리 업체에 타격이 갈 수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인텔이 메모리 반도체를 CPU와 함께 묶어 파는 등 마케팅을 할 가능성도 있다"며 "CPU 시장 점유율이 90%에 육박하는 인텔이 위협으로 부상하는 것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삼성과 하이닉스는 인텔의 공세에 대비하고 있다. 역시 D램과 낸드 장점을 결합한 차세대 메모리를 준비 중이다. 인텔 옵테인이 위상변화램(P램)인 것과 달리 두 회사는 자기저항램(M램)에 집중한다.

삼성전자는 올해 초부터 28나노 내장형 M램을 출하했다. 플래시 메모리 대비 쓰기 속도가 약 1000배 빠르고 전력 소모가 적다고 삼성은 설명했다. SK하이닉스는 지분을 투자한 도시바와 공동으로 M램을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가 AMD와 개발 초기단계부터 협력한 서버용 D램 모듈/사진=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는 여기에 더해 인텔 경쟁업체 AMD와 연합군을 형성했다. 지난 8일 AMD의 서버용 CPU 2세대 EPYC 프로세서(7002)와 호환되는 SSD, D램 모듈 양산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양사는 제품 개발단계부터 긴밀히 협력해 AMD CPU와 메모리 호환성을 높일 수 있게 노력했다. 인텔이 CPU와 메모리를 연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만큼 대체 시장을 굳건히 확립하는 방안이다.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학회장인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인텔의 움직임에 대해 "CPU는 메모리에 비해 성장률이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인텔이 메모리 부문 기술력이 뛰어나다"면서도 "다만 국내 기업들의 D램, 낸드 성능이 좋아 여전히 한국의 경쟁력이 우위"라고 말했다.

P램과 M램

P램과 M램은 데이터를 입력하는 방식에 따라 구분된다. P램은 물질에 전류를 가하면 내부 구조가 변하면서 정보가 기록된다. M램은 자석 마냥 자기장이 밀고 당기는 현상으로 정보를 저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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