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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항공사]③국제선은 있어도 세계화는 없다

  • 2020.02.20(목) 15:39

해외 진출 안하고, 글로벌 기업 진입로 차단
국내 시장에 안주하다 코로나 사태 직격탄
"해외 진출 시도하고 서비스 혁신해야"

아시아 최대 저비용항공사 에어아시아는 2014년 한국 청주공항을 거점으로 한국법인 설립을 추진했지만 무산됐다. 외국법인이 사실상 지배하는 법인은 항공기 등록을 제한하는 법에 막히고 국적 항공사의 경쟁력이 약화된다는 여론에 밀리면서다. 이후 토니 페르난데스 에어아시아 회장은 언론과 인터뷰에서 "차라리 북한 평양에 법인을 세우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토로했다.

국내 항공업계가 코로나19 등 대외 변수로 경영난에 휩싸인 가운데 자체 경쟁력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국내 항공업계는 외국 항공사의 국내 진출은 철저히 막고 국적 항공사끼리 출혈 경쟁을 벌이는 것이 현실이다. 국내 산업군 중 항공업계와 같이 국내시장 진입과 해외시장 진출의 문을 걸어 잠근 '쇄국 정책'을 벌이는 분야는 찾기 힘들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2018년 대한항공과 세계 1위 델타항공이 조인트벤처(joint venture, 이하 JV)를 설립, 국내 항공업계 첫 JV가 나왔다. 하지만 이 JV는 법인이 설립되지 않은 '비법인(unincoporated) 합작'이다. 양사는 태평양노선에 대해 공동 마케팅·영업을 하고 이에 따른 재무적 성과를 나누고 있을 뿐이다.

물론 '비법인 JV' 형태도 공동운항(code share) 등보다 강력한 협력관계로 전세계 항공업계의 추세적인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아시아나항공 등 국내 항공사 중에 합작 법인을 설립해 해외에 진출한 곳이 한 곳도 없다는 점은 철저히 '로컬' 시장에 머물고 있는 국내 항공사 실정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 말레이시아에 본사를 둔 에어아시아는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일본, 중국 등에 합작법인을 세우는 방식으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해 아시아 최대 저가항공사로 자리 잡았다.

국내 항공사가 해외에 눈을 돌리지 않은 이유는 내수만으로도 먹고 살만하기 때문이다. 국내 출국자 수는 2010년 1249만명에서 2018년 2870만명으로 8년만에 2배 넘게 급증했다. 2005년 제주항공, 2008년 진에어와 에어부산, 2009년 이스타항공 등 저가항공이 확대되면서 항공권 가격이 싸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기간 항공사들은 호황기를 누렸다. 2015년 메르스 사태와 2017년 중국의 사드 사태 때도 호황은 이어졌다. 두 사태 영향으로 입국자는 줄었지만 출국자는 오히려 증가한 덕분이다. 2015년과 2017년 내국인 출국자는 전년동기대비 20%, 18% 각각 증가했다. [벼랑 끝 항공사]①사상최대 승객, 사상최악 적자

한국항공전략연구원장을 맡고 있는 윤문길 항공대 교수는 "국내 항공사는 해외 진출을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다"며 "전세계 6~7위 수준의 엄청난 출국자를 몇몇 국적 항공사가 독식하고 있으니 굳이 해외 나가서 경쟁력을 키울 생각이 없다"고 분석했다.

항공사뿐만 아니라 정부도 항공업계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있다. 윤 교수는 "국토교통부가 외국 합작사의 설립을 불허하면서 국내 항공사끼리만 경쟁하는 시장을 만들었다"며 "국내 항공사도 국토부와 잘 관계를 유지해 새로운 노선을 받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작년 한일 관계 악화에 이은 코로나19 사태는 과거 메르스 등과 양상이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출국자가 급감하면서 항공사는 심각한 경영난에 휩싸였다. 내수 시장을 두고 출혈 경쟁을 벌이던 국내 항공사는 구조조정에 직면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유럽과 같이 저가항공사에 혹독한 구조조정이 몰아 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난해 출간된 '항공산업 혁신과 과제'를 보면 1992~2012년 유럽에 설립된 43개 저가항공사중 77%(33개)가 철수했다. 미국은 항공시장 규제 완화 이후 설립된 저가항공사 94%가 사업을 접었다. 국내에 면허를 가진 11개 항공사 중 절반 이상이 퇴출될 수 있는 셈이다. [벼랑 끝 항공사]②"정치논리에 면허 남발"…결국 구조조정

윤 교수는 "지금은 비용을 절감하고 버티는 수밖에 없다"며 "코로나가 진정되고 난뒤 항공 수요 심리를 어떻게 일으켜 세울지 지금부터 항공업계와 정부가 같이 고민해야 한다. 정부가 직접 구조조정할 수 없지만 구조조정 회사에 노선권을 우선 배분하는 등 방식으로 시장 재편을 유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특히 "글로벌 항공사는 이미 15년전부터 혁신에 나서고 있지만 국내 항공사는 국내 시장에 안주하고 있다"며 "항공권만 팔아선 수익을 낼 수는 없다. 해외 항공사처럼 부가서비스 개발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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