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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터닝포인트]①탈출보다 더 중요한 것

  • 2020.03.30(월) 12:49

총수들 위기관리능력 시험대..유동성 최우선
"뉴 노멀 깨진다"..코로나 후 새 지속가능성 '화두'

한국 경제가 코로나19 확산과 함께 기로에 놓였다. 외환위기를 겪은 1998년 이후 22년 만에 역성장까지 거론된다. 생산부터 판매까지 기업활동의 전과정이 예측 불허다. 기업들은 현재의 위기를 벗어나는 것은 물론 그 이후 맞을 경제 생태계 변화 대응책 모색에 더 여념이 없다. 각계의 코로나 대응 현황을 짚어보고 팬데믹 해소 이후 각 기업과 산업의 진화방향을 다각도로 점검한다.[편집자]

지금도 위기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된 후가 더 중요하다.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위기 상황이 예상되는 만큼, 우리의 비즈니스 전략을 효과적으로 변화시켜야 지속 성장이 가능하다.
-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24일 비상경영 화상회의에서.

스스로 생존을 위해 자원과 역량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 투자자들에게 지속가능성에 대한 신뢰를 얻는 데 힘써야 한다.
- 최태원 SK그룹 회장, 24일 수펙스추구협의회 화상회의에서.

코로나19(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에 유수 대기업집단 총수와 최고경영자(CEO)급 인사들이 전에 보기 드문 긴장감을 드러내고 있다. 단순히 코로나 극복이라는 당면과제 앞에 기업과 경영진의 위기관리 능력이 도마에 올라서만이 아니다. 위기를 잘 빠져나가는 것에 이어 확 달라질 코로나 이후의 경영환경에 대비하는 것이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가르는 절체절명의 과제가 됐기 때문이다.

◇ 리스크 관리 '시스템→컨틴전시'

당장은 코로나로 닥친 경제 위기상황에서 '최악'만큼은 피해야 한다는 게 대다수 기업들에게 급선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일반 제조업에서 매출이 10~20%만 줄어도 손익분기점을 맞추기 어려운데 매출이 반토막 난 경우가 태반"이라며 "이미 상당수 기업이 올 상반기 적자는 각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에는 사업적 리스크를 시스템으로 해소해 왔지만 코로나 국면에서는 급변하는 상황에 따른 컨틴전시(contingency, 비상경영) 대응만이 유효하다"고 강조했다.

기업들도 제각각 상황에 따라 현안 관리에 바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우 코로나 국면 시작 직후 경기도 화성 반도체사업장, 경북 구미 세트 사업장, 충남 아산 디스플레이 사업장 등을 차례로 돌아봤다. 해마다 하던 것이지만 올해는 더욱 큰 긴장감 속에 사업 현황과 전략을 직접 점검하고 있다.

하지만 1년 전보다 반도체 업황이 나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는 올 1분기 작년 같은 기간보다 5~10% 감소한 6조원대 미만의 영업이익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 전에는 6조원을 무난히 넘긴다는 전망이 많았지만 3월 이후 스마트폰과 TV, 디스플레이 부문 영업타격이 크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리스크도 있어 삼성의 위기감은 더하다.

현대차 역시 지난 2월 중국 판매량이 1007대에 그치는 등 영업 쇼크를 겪고 있다. 중국 판매량은 전년동기보다 97%나 급감한 것이었다. 1분기 영업이익도 환율효과에도 불구하고 다시 1조원 미만으로 떨어질 공산이 커졌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정의선 부회장은 실적 우려로 주가가 떨어지자 현대차, 현대모비스 등 주요계열사 주식을 최근 800억원어치 사들이며 책임경영 의지를 외부에 내보이고 있다.

특히 소비자들의 물리적 이동 제한으로 실물경제가 큰 타격을 받은 상황에서 성장률 하락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 큰 걱정은 코로나로 인한 경영난이 기업의 유동성 부족으로 이어질수 있다는 것이다.

유럽 주요국들뿐 아니라 한국 역시 마이너스(-) 성장을 할 수 있다는 것까지 염두에 두고 비상상황 탈출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게 재계의 주장이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장은 지난 25일 "실물과 금융의 복합위기, '퍼펙트 스톰'의 한가운데에 우리 경제가 놓였다"며 "방역 만큼이나 경제분야에도 특단의 대책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 팬데믹 장기화, 그리고 그 이후 세계

기업가들의 관심은 나아가 코로나, 그 이후로 관심을 옮겨가고 있다. 세계적 팬데믹(대유행) 상황이 길어지는 것 뿐만 아니라 사태 이후 달라질 사업환경, 경제 생태계의 질서를 먼저 포착하고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는 것이 생존을 위해 절실하다는 판단에서다. 유동성에 기댄 저성장·저물가라는 '뉴 노멀'도 이제는 지속을 장담하기 어려워졌다는 목소리다. 기업들은 새로운 지속가능성 확보를 숙제로 안게 됐다.

롯데그룹의 경우 비교적 일찍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될 것으로 예측하고 올해 2·3분기에 대한 영향 분석을 했다. 사태 초기 주력 사업장인 롯데백화점 본점 폐쇄 상황까지 겪으며 체감이 빨랐다는 전언이다. 롯데는 그룹 경영 계획 수정을 검토하는 한편 미래전략연구소를 통해 사태 이후의 시장환경 변화를 예측하고 이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에 머물고 있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최근 화상회의에서 "지금도 위기이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된 후가 더 중요하다"며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위기 상황이 예상되는 만큼 우리의 비즈니스 전략을 효과적으로 변화시켜야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LG그룹도 지난주까지는 코로나19에 대응해 계열사별로 글로벌 시장에서의 공급과 수요상황을 일일 단위로 점검하며 생산·공급망관리(SCM, Supply Chain Management)·재고관리 등 대응방안을 마련해 실행해왔다. 하지만 이번주부터는 구광모 회장이 직접 경기침체 장기화에 대비해 주요 사업 현황과 코로나19 이후 달라질 기업 환경에서 대응해야 할 일을 점검할 계획이다.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이 업무환경의 변화를 '일하는 방식 변화' 계기로 삼아달라고 직원들에게 당부하고 있다. 그는 "'잘 버텨보자'는 식의 태도를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씨줄과 날줄로 안전망을 짜야 할 시간"이라고 밝혔다.

정부도 코로나 이후 환경 변화에 대응해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장석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차관은 지난 26일 개최한 ICT(정보통신기술)비상대책회의에서 "원격근무와 교육 등 ICT를 활용한 비대면서비스가 우리 경제에 자리잡고 있다"며 "코로나19를 슬기롭게 대처하고, ICT가 경제체질을 개선하며 사회를 혁신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함께 고민하고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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