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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길을 묻다]'리쇼어링?' 규제 확 풀어라

  • 2020.06.10(수) 09:00

[비즈니스워치 창간 7주년 기획 시리즈]
글로벌 공급망 마비…'리쇼어링' 급부상
수도권 총량제 완화 등 당근 쥐어줘야
노사 양측 한발 물러서는 대타협 필요

한국 산업이 미증유(未曾有)의 위기에 빠졌다. 미국과 중국간 갈등 및 보호무역 강화, 후발주자 추격 등은 수출중심으로 성장해온 한국 산업에 큰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19라는 거대한 돌발변수는 그 영향을 배가시키는 상황이다. 국내 굴지 기업들마저 존망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위기가 기회'라는 말처럼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을 냉정하게 분석해 강점(strength)은 '살리고' 약점(weakness)은 '보완하며' 기회(opportunity)를 '잡고' 위협(threat)은 '대비해야'만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시점이다. 한국 산업이 처한 다양한 상황에 대한 진단과 대안을 4편에 걸쳐 제시해 보고자 한다.[편집자]

"국내 기업 해외 공급망을 다시 미국으로 가져와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복심으로 알려진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정책국장이 지난 2월23일(현지 시간) 폭스 비즈니스에 출연해 한 발언이다.

미국 고위 관료가 리쇼어링(Reshoring·기업의 본국 복귀) 필요성을 언급한 것은 단순히 수사적 발언이 아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국제 마스크 수급에 곤혹을 겪었던 초강대국 미국 뿐만이 아닌 세계 각국은 생산망 복귀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저렴한 인건비, 시장 접근성 등을 이유로 중국, 베트남 등 인건비가 저렴한 해외에 생산기지를 대거 짓는 '국제 분업 시스템'이 국가 기능을 총체적으로 마비시킬 수 있는 위험 요인인 것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코로나19를 포함해 유사한 전염병이 올해 뿐만 아니라 기간을 두고 연중 창궐할 수 있다는 우울한 전망도 각국이 리쇼어링에 매달리게 한다.

한국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일상화된 미세먼지 문제로 마스크 공장을 자국에서 가동한 덕에 마스크 수급 문제에선 그나마 자유로웠지만, 제조업을 잇는 하부 모세혈관은 큰 위기를 겪었다.

올 초 현대차는 자동차 내부에서 전기, 전자적 신호 체계를 전달하는 전선 뭉치 '와이어링 하네스'를 전적으로 중국에 의존해 고초를 겪었다.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일시적으로 부품 수급이 어려워져 국내 공장이 일시적으로 가동을 멈췄다. 전염병에 더해 미국과 중국간 무역분쟁 등 지정학 위기는 대외 경제환경(2019년 명목 GDP 가운데 수출 비중 33%)에 취약한 한국의 해외 생산공장 복귀 필요성에 불을 지피고 있다. 

◇ '다시 와라'

문재인 대통령(가운데)이 1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6차 비상경제회의에 참석해 리쇼어링 장려책 등이 담긴 '한국판 뉴딜'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사진=청와대 제공

주요국들은 리쇼어링을 장려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을 내놓고 있다. 특히 미국이 적극적이다. 미국 의회와 재계는 250억 달러(약 30조원) 규모 리쇼어링 펀드 조성을 논의 중이다. 래리 커들로 미국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지난달 10일(현지 시간) 폭스 TV에 출연해  "중국에서 돌아오는 미국 기업의 이전비용을 모두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리쇼어링 정책은 전임 버락 오바마 정부 시절부터 이어졌다. 취임사로 '미국 경제 재건(Remaking America)'를 외친 오바마 대통령은 본국에 복귀하는 기업에 2년간 설비투자 세재감면, 여기에 더해 제조업은 여기에 더해 법인세 우대세율을 적용하는 등 기업 불러들이기에 몰두했다. 이를 통해 미국 자동차 업체 포드가 멕시코와 중국에서, 중장비 제조사 캐터필러는 일본에서 생산기지를 본국에 돌려놓는 등 소기의 성과가 나왔다.

다른 선진국들도 리쇼어링 장려에 팔을 걷었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22억 달러(약 2조7000억원) 규모 기금을 조성해 중국에 위치한 자국 기업의 생산기지를 본국으로 돌리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독일은 연구개발 보조금 지원 등 각종 혜택을 리쇼어링 기업에 지원하고 있다.

한국도 이같은 움직임에 발을 맞췄다. 문재인 정부는 1일 '2020년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며 코로나 그 이후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한국판 뉴딜' 정책을 전격 추진키로 했다. 한국 기업 본국 귀환을 위한 종합 방안도 포함됐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10일 취임 3주년 특별연설에서도 "한국 기업의 복귀는 물론 해외 첨단산업과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과감한 전략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리쇼어링 입지 규제완화,  세제 지원, 이전비용과 시설투자 지원이 핵심이다. 복귀 기업에 수도권 공장총량제 범위내 부지 우선 배정을 정부는 약속했다. 서울, 인천, 경기도에 2020년까지 연면적 500㎡ 이상 공장을 새로 짓거나 증설할 때 허용된 면적은 550만㎡로 현재 절반 가량이 소진됐다. 산업단지 입주시 분양우선권 제공, 맞춤형 용지 공급 등 공장이 들어설 곳을 최대한 알선해준다.

또 해외 의무 생산량 감축 한도도 폐지한다. 국내 기업들이 해외 사업장 생산량 감축분을 국내로 돌린 양에 비례해 세제 감면이 이뤄진다. 기존에는 국내 기업들이 본국으로 공장을 돌려도 법인세와 소득세를 감면 받으려면 해외사업장 생산량을 50% 이상 감축해야 했다. 

보조금 지급 문턱은 낮추고 범위는 확대한다. 비수도권 복귀 기업에 대해서는 보조금 지급 한도가 100억원에서 200억원으로 높아진다. 수도권은 보조금을 받지 못했지만, 앞으로는 첨단산업이나 연구개발 센터에 한해 150억원까지 보조금이 지급된다.

◇ '그래도 아쉽다'

삼성전자 평택사업장 전경/사진=삼성전자 제공

국내 경제계는 리쇼어링을 포함해 국내 생산기지 건설에 관심이 많다. 지난해 SK하이닉스는 2022년까지 경기도 용인시 일대 약 448만㎡(135만평) 부지에 2024년까지 120조원을 투자해 반도체 생산기지 4곳을 포함해 국내외 50개 이상 협력사를 입주시킨다는 계획을 밝혔다. 삼성전자는 지난달부터 2달 연속으로 두 건의 총 18조원 규모 반도체 생산기지를 평택사업장에 구축하는 계획을 밝히며 국내 생산기지 육성에 의욕을 보였다. 

하지만 정부의 연이은 리쇼어링 제안에 경제계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지난달 말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금융업에 속하지 않은 연매출 1000억원 이상 기업 가운데 불과 3%만 리쇼어링을 고려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지난달 15일 삼성전자, 현대자동차그룹, LG, SK, 롯데 5대 그룹 최고경영자(CEO)들이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만나 리쇼어링 확대 방안을 요청하는 등 해외 생산공장 복귀에 적극적임에도, 현실적으로 여건이 미흡하기 때문이다.

경제계가 리쇼어링에 시큰둥한 모습을 보이는 가장 큰 요인으로 수도권 입지 규제가 꼽힌다.

정부는 '수도권 공장 총량제'를 통해 수도권에 새로운 공장이 들어서거나 기존 공장을 확장하는 것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수도권으로 공장이 몰릴 경우 지방 지역경제가 무너지면서 지역 균형발전 목표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다만 기업들은 인재 수급의 필요성을 이유로 지속적으로 수도권 공장 총량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번 정부 대책도 수도권 공장 총량제 자체를 손대지 않고, 우선 배정권을 할당하는 등 미봉책에 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웃나라 일본은 이와 반대로 수도권 입지 규제를 꾸준히 풀어왔다. 일본은 1956년 '수도권정비계획법' 제정을 시작으로 도쿄를 포함한 수도권에 제조업 공장이 들어서는 것을 엄격히 규제했다. '공업재배치촉진법', '공장입지법', '공업 등 제한법'을 필두로 한 이른바 '공장제한 3법'이 주축이 됐다.

이후 제조업에서 수도권 입지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인식한 일본 정분는 1980년대부터 공장 입지규제 허가 조건을 점차 완화했으며, 2000년대 들어 공장입지법을 제외하고 나머지 두 제도를 폐지했다. 공장입지법은 공장이 일정 규모 이상으로 조성될 경우 녹지와 환경시설 확보를 의무화한 법률이라 입지 규제 성격을 띄고 있지 않다고 서울연구원은 분석했다.

노동 규제도 리쇼어링을 추진하기 어려운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달 말 21대 국회 개원에 맞춰 한국경영자총협회, 전경련 등 30개 경제단체로 구성된 경제단체협의회는 주 52시간 등 근로시간 단축을 보완할 수 있는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를 건의했다.

현행 3개월에서 6개월까지 한도 기간을 확대해 달라는 내용이다. 탄력근로제는 일이 몰릴 때는 길게 일하고, 나머지 기간에 적게 일해 주 평균 52시간 근로시간을 맞는 것이 뼈대다. 단위 기간이 3개월일 때 근로자는 20주 연속 주 64시간을 연속으로 근무할 수 있고, 이 기간이 6개월로 화대되면 40주 연속 주당 64시간 근무가 가능하다. 

경제계는 그간 꾸준히 탄력 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를 요청했다 석유화학, 제조업 등 정비보수, 일감이 몰리는 시기 주 52시간으로는 제 시간에 업무를 처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20대 국회 때 단위 기간을 6개월로 늘리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1년 연장을 주장한 야당 미래통합당 간의 의견 차이로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리쇼어링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강한 세제 인센티브가 필요하다"며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 등 노동 정책도 리쇼어링시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 '노사 양측 타협도'

정부가 경영계 숙원을 해소하는 동시에 노사 양측도 리쇼어링을 위한 사회적 대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경영계가 요구해 온 탄력근로제 등 일부 노동법 개정안이 노동계의 희생을 담보로 한 만큼, 경영계와 노동계 양측이 자신들의 입장에서 한 발 물러선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취지다.

대표적으로 노동계의 사회적 대화 참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크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대통령 직속 위원회 노사정위원회에 1999년 탈퇴한 이래 이름을 바꾼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 21년째 참여하지 않고 있다.

이번 정부 들어서도 탄력근로제 확대 조짐 등 이른바 '노동개악' 움직임에 반발해서다. 노사정 위원회는 노동정책과 이와 관련된 경제와 사회정책 등을 협의하는 곳으로, 각종 정책 입안 전 노동계와 경영계의 총의를 모으는 마중물 역할을 수행한다. 

민주노총 등 노동계의 대화 참여를 위해 경영계의 일부 희생도 요구된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지난달 12일 서울 정동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열린 기자 브리핑에서 "국민 세금으로 경제 상황 극복을 위한 재난지원, 세제헤택을 기업에 주고 있다"며 "이 때문에 해고금지, 총고용 유지, 생계 보장이 확보돼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리쇼어링, 탄력근로제 등 일부 기업에 유리한 규제완화가 진행되는 선결 조건으로 경영계의 노동자 보호 방안을 요구한 것이다. 

정부는 노동계, 경영계에 정치권까지 포함된 사회적 대타협을 주문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2018년 11월 22일 경사노위 출범식에서 "독일은 하르츠 개혁, 네덜란드는 바세나르 협약을 통해 저성장과 고실업의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 재도약과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기반을 다졌다"고 말했다.

한편 리쇼어링에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저임금 체계에 기반한 제조업 복귀를 위해 노동여건을 크게 악화하는 대신 반도체 등 혁신 산업의 유치가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최근 코로나19로 리쇼어링이 다시 언급되면서 경제계에서 세제감면 등 여러 혜택을 요구하고 있다. 전형적 재난 자본주의(재난을 틈타 사회 지배구조를 재생산)적 모습"이라며 "미국과 중국간 무역전쟁으로 글로벌 공급체계가 위태로운데, 이런 상황에서 반도체 등 혁신 산업을 유치할 방법을 고안하는게 진정한 리쇼어링"이라고 강조했다.

수도권 공장 총량제란
수도권에 공장 신증설, 용도변경을 특정 지역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이뤄지도록 하는 규제. 인구집중 완화, 지역균형발전 차원에서 1994년부터 도입됨. 연면적(건축물과 사업장 각층 바닥면접 합계) 500㎡ 이상 공장이 대상으로 지역별로 3년 간 총량이 설정돼 운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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