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갤럭시 실록]①삼성전자 먹여살리던 그 시절

  • 2020.08.27(목) 16:51

2010~2013년 스마트폰 부흥기
'S'로 시작해 '노트' 가세 승승장구
IM 영업이익률 20%…반도체 안 부러워

삼성전자가 '갤럭시'라는 스마트폰 은하계를 펼친 지 꼬박 10년이 흘렀다. 갤럭시는 삼성전자의 현재이자 다가올 미래다. 브랜드 플래그십(최상위) 모델 'S'와 '노트'가 그 중심이다. 이 둘은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10차례 변신해 올해 숫자 '20'을 달았다. 후발주자로 시작해 글로벌 1위 브랜드로 자리매김한 갤럭시의 발자취와 성과를 되짚어본다.[편집자]

스마트폰 시장에 처음 불을 지핀 것은 2007년 애플의 '아이폰'이다. 하지만 삼성전자 역시 2000년대 초부터 이 시장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소비자들에게 스마트폰이라는 개념이 익숙하지 않았을 2000년대 초반부터 삼성전자는 인터넷 접속과 게임 등이 가능한 'SPH-1000'·'SPH-2000' 등 당시로는 혁신적인 기술을 담은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스마트폰 브랜딩을 시작한 것은 2006년 '블랙잭'부터다. 쿼티(qwerty) 키패드를 장착한 블랙잭은 100만대 이상 판매되며 호평을 받았다. 2007년 한 때 블랙베리를 제치고 미국 스마트폰 판매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울트라메시징'이라는 이름으로 출시됐다.

블랙잭 다음은 2008년 '옴니아'였다. 물리적으로 자판을 누르는 것이 아닌 첫 터치스크린방식 스마트폰으로 애플 아이폰의 대항마로 내놓은 모델이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야심작이었던 '옴니아2'가 실패로 끝나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칼을 갈아 내놓은 것이 바로 '갤럭시'다.

◇ 10년 스테디셀러의 첫 등장

갤럭시 S는 2010년 3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북미 최대 이동통신 전시회 'CTIA 2010' 행사에서 첫 공개됐다. 반응은 뜨거웠다. 공식 출시 전부터 글로벌 통신 사업자들의 예약 주문량이 100만대에 육박할 정도로 인기를 모았다. 애플의 신작인 '아이폰4' 발표가 예정돼 있던 그해 6월 갤럭시S의 국내 공식 론칭 행사를 연 것도 이같은 자신감에서였다.

당시 삼성전자는 "갤럭시 S가 삼성전자 스마트폰 최초의 '텐밀리언셀러'(1000만대 판매)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리고 이는 7개월 만에 현실이 됐다. 갤럭시S는 국내 출시 일주일만에 누적판매 21만대를 넘겼고 70일만에 100만대를 팔아치웠다. 미국 시장에서는 속도가 더 빨랐다. 출시 45일만에 판매량 100만대를 달성한 데 이어 석달 만에 200만대를 팔았다. 당시 삼성전자가 미국에서 출시한 휴대폰중 최단, 최대 기록이었다.

90여개국에서 불티나게 팔린 갤럭시S는 출시 7개월만에 1000만대 판매고를 달성했다. 하루 4만대 이상, 2초에 1대씩 판매한 셈이다. 이는 2009년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전체 판매량보다 많은 수준이었다.

삼성전자 갤럭시S.

이듬해 출시된 '갤럭시 S2'는 갤럭시 브랜드가 롱런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다줬다. S보다 두 배 이상 빠른 속도로 팔려나가면서 전작이 세운 기록을 단숨에 넘어섰기 때문이다.

2011년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MWC 2011' 행사 전 공개된 S2는 글로벌 예약 주문만 S의 3배인 300만대에 달했다. 국내 판매 100만대 기록 역시 70일에서 한 달로 앞당겼다. S가 85일만에 판매량 300만대를 돌파했다면 갤럭시S2는 같은 기간 500만대를 팔았다. 텐밀리언셀러도 S보다 두 달 빠른 출시 5개월 만에 달성했고 출시 10개월 만에 판매량 2000만대를 넘겼다. 이 역시 S의 기록을 7개월 단축한 것이었다.

삼성전자가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낸 것도 이때부터였다. 갤럭시S2가 300만대 판매를 돌파했던 2011년 2분기, 삼성전자는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노키아를 누르고 2위 자리에 올랐고 3분기에는 애플을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

시장조사기관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2011년 3분기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판매량은 2810만대로 애플(1710만대), 노키아(1680만대)를 앞질렀다. 스마트폰 사업을 본격화한 지 1년여만에 애플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까지 성장한 셈이다. 삼성전자가 애플과 글로벌 스마트폰 1위 자리를 두고 '주거니 받거니' 선두다툼을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삼성전자는 그해 여름 또 다른 플래그십 모델을 내놨다. 바로 '갤럭시 노트'다. 노트는 전자펜(S펜)과 패블릿(스마트폰+태블릿) 개념을 도입한 갤럭시 S시리즈의 변종 모델이었다. 하지만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며 'S'라인과 함께 삼성전자 플래그십 스마트폰을 대표하는 모델이 됐다.

2011년 9월 베를린에서 열린 'IFA 2011' 전시회에서 첫 공개된 갤럭시 노트는 대화면 '5.3인치' 디스플레이를 특징으로 내걸었다. 큰 화면을 활용해 인터넷이나 문서에서 더 많은 정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데다, S펜을 활용해 필기가 가능하다는 점으로 중국 등 한자 문화권에서도 큰 인기를 모았다.

S 시리즈보다 고가로 책정된 프리미엄 제품이었지만 성과는 좋았다. 국내 LTE폰 중 처음으로 일 개통량 1만대를 넘겼고 출시 5개월 만에 글로벌 판매량 700만대, 9개월 만에 1000만대를 돌파했다. 특히 노트의 가세로 삼성전자는 휴대폰 사업 시작 24년 만에 휴대폰 출하량 연 3억대 시대를 열었다. 당시 전세계에서 휴대폰 연간 출하량 3억대를 넘은 곳은 노키아뿐이었다.

삼성전자 갤럭시노트.

갤럭시 S3는 2012년 런던 올림픽이라는 스포츠 행사의 수혜주였다. 삼성전자는 올림픽 개최를 두 달 앞둔 5월 런던에서 언팩(신제품 공개) 행사를 열었다.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런던에서 전략 스마트폰을 선보여 마케팅 효과를 극대화 하겠겠다는 전략이었다. 결과는 대성공. 행사 이후 900만대에 이르는 선주문이 들어왔다. 갤럭시S(100만대)보다 9배, 갤럭시S2(300만대)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수준이었다.

제품 출시 후 기록 갱신은 이어졌다. 출시 50일만에 1000만대, 100일만에 2000만대를 팔았다. 하루에 20만대씩 팔린 셈이다. 나아가 출시 5개월 만에 판매량 3000만대, 7개월 만에 4000만대를 돌파했다.

삼성의 스마트폰 시장에서의 입지도 더욱 확고해졌다. 2012년 2분기 삼성전자는 애플보다 2배가량 많은 스마트폰을 판매해 1위 자리를 굳혔다. 아이폰4S 이후 신제품을 내놓지 못한 애플은 2분기 판매량이 2600만대에 그쳤지만, 삼성전자는 5020만대를 팔았다. 갤럭시 노트와 갤럭시 S3 등 신제품을 꾸준히 내놓은 결과였다.

갤럭시 노트2도 후속작으로서 성공을 이어갔다. 2012년 8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IFA 2012' 개막에 앞서 공개된 노트2는 커진 화면과 개선된 S펜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특히 S펜은 그립감을 높이기 위해 한쪽 면이 평평한 반원형 디자인을 도입했고, 필압 감지 기능도 256단계에서 1024단계로 높였다. 섬세한 조작을 통해 실제 종이에 펜으로 쓰는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한 변화였다.

개선된 기능은 좋은 결과로 돌아왔다. 노트가 출시 3개월 만에 300만대를 넘겼다면, 갤럭시 노트2는 이를 37일로 앞당겼다. 출시 두 달 만에 글로벌 공급량 2000만대를 달성했다.

갤럭시 S4는 초기 갤럭시 전성기의 대미를 장식한 제품이었다. 2013년 3월 삼성전자는 애플의 안방으로 불리던 미국 뉴욕에서 최초로 언팩 행사를 열어 S4를 선보였다. 화려한 등장을 뒷받침 하듯 전작들에 비해 제품 기능도 많이 개선됐다. S 시리즈 중 처음으로 5인치가 넘는 아몰레드(능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 패널을 탑재해 초고화질 화면을 구현하면서도 제품의 두께와 무게는 줄였다. 800만 화소에 머물렀던 후면 카메라도 1300만 화소까지 끌어올렸다.

S4 역시 전작들을 뛰어넘는 기록을 세웠다. 출시 한 달 만에 글로벌 1000만대 판매를 달성했고, 갤럭시 S3가 세운 '출시 100일만에 2000만대 판매' 기록도 40일가량 앞당겼다. 하지만 이같은 추세는 오래가지 못했다. 스마트폰 보급량이 늘고 중국 후발업체들의 가세로 경쟁이 점차 치열해지면서 갤럭시 S4의 판매량이 급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갤럭시노트3.

이런 상황에서 몰리자 그해 하반기 선보일 갤럭시 노트3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변화의 시작은 갤럭시 S과 유사한 디자인을 내려놓는 것이었다. 그간 노트 전작들이 갤럭시S의 디자인을 따랐다면 갤럭시노트3는 노트만의 차별성을 꾀했다.

이를 위해 화면은 더 키우고 각진 외형을 완성했다. 뒷면은 가죽의 질감을 살린 신소재를 적용했고 옆면에는 스티치 디자인을 더해 클래식한 다이어리 느낌을 줬다. 여기 더해 S펜에는 버튼을 누르는 것만으로 메모, 검색 등 5가지 주요 기능을 한 번에 실행할 수 있는 '에어 커맨드' 기능을 처음으로 넣었다.

이런 노력에 노트3는 출시 2개월 만에 판매량 1000만대를 돌파했다. 1000만대 달성까지 노트가 9개월, 노트2가 4개월 걸린 것을 각각 반의 반, 절반으로 앞당긴 것이다.

◇ 반도체 안 부러운 '캐시카우'로

갤럭시 S의 실적이 본격적으로 반영된 것은 2010년 3분기였다. 갤럭시S가 6월 출시돼 2분기 실적에는 일부만 반영됐기 때문이다. 그 해 2분기 실적 발표 당시 삼성전자는 하반기부터 스마트폰 라인업이 확대되고 판매 비중이 늘어나 두자릿수 영업이익률 회복이 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갤럭시 S는 이를 현실로 만들었다. 2010년 휴대폰과 네트워크장비 사업을 담당하던 통신사업부문(현재 IM사업부문의 전신)의 3분기 영업이익률은 10.7%로 두 자릿수로 뛰어올랐다. 스마트폰 중심으로 제품 구성비를 바꿔 평균판매단가(ASP)를 전 분기대비 14% 높인 결과였다.

S2는 삼성전자의 통신사업부문 급성장에 불을 지폈다. S2가 출시된 2011년 2분기 통신사업부문 매출은 전년동기 대비 43%, 영업이익은 6.3% 증가했다. 나아가 3분기에는 스마트폰 판매량에서 애플을 누르고 세계 1위에 오른 것과 동시에, 영업이익률 16.9%를 기록하며 반도체 영업이익률을 처음으로 앞질렀다.

이처럼 통신사업부문이 반도체와 맞먹는 '캐시카우'로 부상하면서 삼성전자의 휴대폰 사업 의존도는 점차 높아졌다. 전통적인 캐시카우였던 반도체는 실적의 계절적 편차가 컸지만, 스마트폰 부흥기를 맞은 통신사업부문은 지속적으로 실적이 좋아진다는 점도 긍정적이었다.

2012년부터는 삼성전자 IM(IT·모바일)부문의 본격적인 성장이 시작됐다. IT(정보기술)업계의 비수기인 1분기부터 스마트폰 판매 강세를 보이며 삼성전자 전체의 분기 최대 영업이익 달성에 큰 몫을 했다. 그 해 1분기 IM부문 영업이익은 4조2700억원으로 처음으로 분기 4조원을 넘겼다.

같은 해 2분기에는 IM부문 매출과 영업이익이 삼성전자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의 각각 51%, 62%에 달했다. 휴대폰이 반도체의 바통을 이어받아 삼성전자의 주력사업으로 자리매김한 시기였다. 3분기에는 IM부문 영업이익 비중이 69.5%로 70%에 달하며 쏠림현상이 가속화됐다.

그러자 휴대폰 의존도가 너무 심각하다는 우려도 나왔다. 2012년 연 기준으로 봐도 IM부문 매출액은 전체 매출의 절반을 넘었고, 영업이익은 전체의 65%에 달했다.

2013년에도 IM부문은 사상 최대 매출과 영업이익 달성을 경신하며 나홀로 성장을 이어갔다. 특히 1분기에는 영업이익이 처음으로 6조5000억원을 넘어섰다. 갤럭시 S와 갤럭시 노트 등 프리미엄 스마트폰 판매가 많아지면서 영업이익률도 19.8%를 찍었다. 당시 애플과의 특허소송으로 지출된 충당금을 제외하면 20%가 넘는 수준이었다.

삼성전자 갤럭시S4.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IM부문 실적이 주춤한 때도 있었다. 바로 갤럭시 S4 출시 이후인 2013년 2분기였다. 당시 IM부문 영업이익은 전분기 대비 3% 하락했다. 그해 4월 갤럭시 S4가 출시된 것을 고려하면 실망스러운 성적이었다. 갤럭시S 등장 이후 처음으로 이익이 감소한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영업이익은 6조2800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걱정이 무색하게 갤럭시 노트3가 출시된 2013년 3분기 IM부문은 영업이익 6조7000억원을 달성하며 역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6조7000억원은 최근 IM부문 3개 분기 영업이익을 합한 것과 유사한 수준이다. 당시 삼성전자가 갤럭시 S와 갤럭시 노트 시리즈 연 1억대 판매를 예고하며 '꽃길'만을 기대했던 자신감도 여기에 있었다.

naver daum
SNS 로그인
naver
facebook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