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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삼성, 20조 보따리 꺼내고도 안 푼 이유

  • 2021.05.25(화) 10:41

한미정상회담 기간중 투자계획 확인했지만
기존 계획과 변화 없고 지역도 미확정
여러 상황에 유리한 패 쥐려는 '신중행보'

/그래픽=김용민 기자 kym5380@

삼성전자가 20조원에 달하는 미국 내 반도체 투자 계획을 확인했습니다. 그러나 기존에 알려진 계획과 비교하면 금액이 증가한 것도 없는 데다 장소도 확정하지 않았죠. 한미정상회담이란 대형 이벤트와 양국의 정치적 입장을 고려해 일단은 투자 규모만 밝히면서 다양한 상황에서 최대한 유리한 조건을 끌어내기 위해 여지를 남긴 '신중행보'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인 김기남 부회장은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 행사에서 170억달러(약 20조원) 규모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 증설 계획을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고도 했죠.

이와 관련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한미정상회담 이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삼성, 현대, SK, LG를 직접 호명하기도 했는데요. 그는 이들 회사 CEO(최고경영자)를 일으켜 세운 뒤 "고맙다"(Thank you)를 3번 이상 말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최태원 SK 회장과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 공영운 현대차 사장, 김종현 LG에너지솔루션 사장 등이 이번 회담 기간에 총 40조원이 넘는 투자계획을 발표한 덕에 이런 인사를 받은겁니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밝힌 숫자 170억달러는 새로운 내용이 아닙니다. 삼성전자는 기존 파운드리 공장이 있는 텍사스주 오스틴시를 포함해 애리조나주, 뉴욕주를 상대로 반도체 공장 증설과 관련 170억달러 투자를 하겠다며 세제 혜택 등을 놓고 협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삼성전자 관계자도 "미국 내 투자금액은 기존에 텍사스주에 투자 신청을 하면서 공개됐던 내용"이라며 "아직까지 투자지역은 구체적으로 결정하지 못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런 까닭에 삼성전자는 다양한 정치적인 이해관계를 고려해 기존에 알려진 투자규모 정도만 대외적으로 확인해준 것이란 해석이 자연스레 나옵니다. 미국 정부는 그동안 한국 반도체, 배터리 기업을 상대로 '미국에 투자해 일자리 확대에 기여해달라'고 공공연히 밝혀왔는데요. 이런 가운데 삼성의 투자규모는 기존에 알려진 숫자만으로 현대차(약 8조원), SK(7조원), LG(6조원)을 압도하기에 이번 회담 전후로 어떤 구체적 내용이 담길지 관심이 모인 바 있습니다. 쉽게 말해 김기남 부회장의 투자 언급은 이벤트 참석자뿐만 아니라 장외 관객의 기대에도 적절히 부응한 정도입니다.

물론, 그룹 총수인 최태원 회장이 참석한 SK그룹에서 SK이노베이션과 미국 자동차 업체 포드의 6조원 규모 합작사 설립 계획, SK하이닉스의 미국 내 연구·개발(R&D) 센터 10억달러 투자 계획이 새롭게 발표한 대목과 대조되는 지점도 있습니다. 이와 견줘 삼성전자가 추가적이거나 새로운 투자계획을 내놓지 못한 배경은 수감중인 이재용 부회장이 미국에 가지 못한 상황 때문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죠. 그러나 최근 38조원에 달하는 국내 투자확대 계획이 나온 사례를 보면 이런 이유가 전부는 아닌 듯합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지난 13일에는 국내 시스템반도체 사업 육성을 위해 오는 2030년까지 38조원을 더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19년에 내놓은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에 담긴 133조원의 투자계획에서 규모를 키운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면서 정부가 우리나라를 세계 반도체 공급망을 주도하는 핵심국가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내놓자 삼성이 화답하듯 꺼낸 계획입니다. ▷관련기사: 삼성 반도체 '133조 묻고 38조 더 투자'(5월13일)

이런 배경을 보면, 오히려 거대한 정치적 이벤트 앞에서도 무리하지 않고 신중한 경영행보를 보이는 점이 눈길을 끈다는 분석입니다.

삼성전자의 의중은 무엇일까요. 삼성 입장에선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는 공장 증설은 중장기적 반도체 사업에 영향을 미치는 민감한 사안인데요. 현재 미국 주정부들과 진행중인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면 투자지역을 미리 알릴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만한 기대이익도 노리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텍사스 주정부에 1조원에 달하는 세금혜택을 요청해왔는데요. 그만큼 지역 내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서죠. 현지 언론은 삼성이 가장 세금을 많이 내는 기업이라고 설명할 정도입니다. 이런 까닭에 다른 지역에서도 러브콜이 이어진 것이고, 삼성은 이를 두고 최적의 수를 두기 위해 고심하고 있는 셈이죠.

삼성은 여기에 더해 미국 연방정부의 추가 제안도 기다리는 눈치입니다. 지난달 미국 백악관 주재로 열린  '반도체 및 공급망 회복을 위한 CEO 회의'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반도체 부문 지원책이 담긴 '연구·개발'(R&D)을 거듭 강조하기도 했으니까요. ▷관련기사: 백악관 만난 삼성전자…'R&D 확대에 수혜 가능성'(4월13일) 미국 정부의 계획에 따르면 반도체 생산과 R&D 지원에 대한 예산 보따리만 500억달러(약 56조원)를 예정하고 있으나, 현재까지 관련 법이 마련되거나 내용이 구체적으로 확정되진 않았습니다.

이번 한미정상회담 전후로도 미연방정부가 삼성전자를 위한 구체적인 제안을 내놓진 않았죠. 그러니 굳이 먼저 패를 보여주지 않는 일종의 '상인의 기술'을 선보인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업계와 외신들은 올 3분기 말이 되어야 결정이 이뤄질 것으로 관측합니다. 삼성전자의 '신중한 딜'이 어떤 결과를 얻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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