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잘 날 없는 IT업계에 요새 가장 핫한 키워드 두 가지가 있습니다. 'OTT'(인터넷동영상서비스)와 '구글 인앱(in-App)결제'인데요. OTT는 코로나 이후로 구독자가 확 늘어나면서 방송 수준의 지위를 꿰차게 됐죠. 앱 마켓 생태계를 꽉 쥐고 있는 구글은 조만간 게임 외에 모든 앱에서도 콘텐츠 결제를 '자체 시스템'으로 하도록 적용할 예정입니다.
문제는 이 둘이 기존의 생태계를 위협하는 수준이 되다 보니 이를 규제를 해야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는 점입니다. 국내 법을 통해 이 둘을 규제하자는 거죠. 이 주장에 대해 정부나 학계에서는 이견이 없습니다. 물론 아직 법적 지위 자체가 없는 OTT의 경우 산업 활성화를 위한 목적도 있습니다. 실제로 이들에 대한 규제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업계 및 학계 세미나, 정부 공청회만도 올해 수 차례 열렸습니다. 그만큼 IT산업에서 '뜨거운 감자'란 방증이죠.
이슈가 많다 보니 저도 매일 업데이트되는 소식을 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취재 과정에서 유심히 살펴보니 이 둘 사이에 묘한 공통점이 있더군요. '어떻게 규제하느냐'보다 '누가 규제하느냐'가 화제의 중심이란 점입니다. 정부가 뭔가를 규제할 땐 누가 관할할지 담당 부처를 나눠야 하는데, OTT와 앱 마켓은 칼같이 나누기엔 경계가 모호한 모양입니다.
OTT의 경우 무려 3개 부처가 다투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 문화체육관광부입니다. 이들은 내부에 OTT 전담부서도 각자 마련해둔 만큼 주도권 싸움이 치열합니다.
과기부 장관은 지난달 취임 후 첫 간담회에서 "과기부가 주무부처가 돼 OTT 산업을 진흥시켜 나가야 한다"라고 포문을 열자, 이에 질세라 방통위도 이달 초 내부 OTT 조직명을 '시청각미디어서비스팀'으로 확대 개편했습니다. 무언가 묘한 신경전을 벌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구글 인앱결제 규제는 방통위와 공정거래위원회의 갈등이 첨예합니다. 현재 인앱결제 강제를 막는 법안은 일명 '구글 갑질방지법'(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란 이름으로 국회 1차 안건 심사를 통과한 상태인데요. 최종 관문을 뚫고 시행되면 방통위가 앱마켓 시장 규제의 주도권을 쥐게 됩니다.
그러자 공정위가 해당 법안이 현행 공정거래법과 중복된다고 주장하고 나섰죠. 이에 방통위는 최근 기자스터디를 열고 마치 공정위 들으란 듯 "중복규제 방지 조항이 있고, 그간 중복 이슈가 발생한 사례도 없었다"고 맞불을 놨습니다.
고래 싸움에 새우가 눈치 본다 해야 할까요? 업계는 정부 부처간 밥그릇 싸움에 규제 '골든타임'을 놓칠까 노심초사하고 있습니다. 구글 갑질방지법의 경우 최소 10월 안에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야 합니다. 구글이 인앱결제 정책을 전체 앱과 콘텐츠로 확대하는 게 사실상 10월이거든요.
OTT의 경우 디즈니, 아마존 등 '글로벌 공룡'들이 쏟아져 들어오기 전에 적절한 제도화가 필요하다는 게 중론입니다. 현재 토종 OTT들은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비를 조(兆) 단위로 투입하고 있는데요. 넷플릭스와 같은 해외 OTT와 세금 등 여러 면에서 동등한 수준의 규제를 받아야 싸움을 해볼만 하겠죠. 토종 OTT에게 현 상태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니 이걸 바꿔달라는 겁니다.
아이러니한 점은 규제 골든타임을 놓쳤을 때 결국 피해는 소비자에게 돌아간다는 겁니다. 인앱결제가 전체 콘텐츠로 확대되면 앱 사업자들은 구글에 수수료 30%를 반드시 물어야 합니다. 그럼 소비자가 부담해야 할 웹툰이나 웹소설, 음악 콘텐츠의 가격도 그만큼 올라갈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경쟁이 과열된 OTT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정부는 국내 OTT 산업을 진흥시키겠다며 '최소규제원칙'을 제시했는데요. 법적인 지위도 획득하지 못한 OTT는 세금 감면 혜택이나, 글로벌 OTT와의 동등 규제 등도 주장할 수가 없습니다. 만일 이런 이유로 국내 대기업이 OTT 사업에서 발을 뺀다면 소비자들은 지금처럼 다양한 OTT와 콘텐츠를 선택할 기회가 없어질 겁니다.
대부분의 산업이 그렇지만, IT업계는 코로나19 이후 생태계 변화 속도가 유난히 빠른 곳입니다. 과기부와 방통위 등 관계 부처가 규제와 혁신을 동시에 외치는 이유도 이를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처간 자존심 싸움에 골몰하기보다는 누가, 어떤 정책을, 어떻게 시행할 수 있느냐를 면밀히 따져 하루빨리 제도를 만드는 것이 진정으로 소비자들을 위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