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인터파크, SK엔카 등은 국내 스핀오프(spin-off·회사 분할)의 효시로 꼽힌다. 이들 기업은 모두 대기업의 사내벤처로 출발해 현재 업계를 대표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스핀오프가 대기업의 전유물은 아니다. 제약바이오 업계에선 모회사의 특정 파이프라인을 떼어내 관련 연구개발(R&D)에 매진하는 자회사를 설립하는 경우가 많다. 후보물질을 독립시키면 R&D 전문성 강화 등의 장점이 있지만 주주 간 이해관계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반대로 과거 스핀오프했다가 다시 합병하는 사례도 나온다.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스핀오프 현황과 업계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본다. [편집자]
스핀오프에 나선 바이오 기업이 늘고 있다. 스핀오프는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특정 사업을 독립시키는 회사 분할을 말한다. 바이오 업계의 스핀오프는 유망한 파이프라인의 권리를 신설 자회사에 기술이전(L/O)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를 통하면 특정 후보물질에 대한 연구개발(R&D) 자금 조달이 수월해진다. 해당 후보물질에 자원을 집중적으로 투입해 신약 개발 속도도 앞당길 수 있다.
지난 2020년 상장한 소마젠은 국내 1세대 바이오 기업의 스핀오프 성공 사례로 꼽힌다. 소마젠은 국내 1세대 바이오텍 마크로젠이 2004년 미국 현지에 설립한 유전체 분석(NGS) 기업이다. 국내 기업에서 출발한 기업이 미국 시장에서 인지도와 점유율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인정받고 있다. 주력 사업인 NGS 분야 외에도 단백질체 분석, 마이크로바이옴 분석 등 신사업을 활발하게 추진 중이다. 지난해 매출은 역대 최대인 2492만달러(약 285억원)를 달성했다.
테라젠이텍스도 활발하게 스핀오프를 추진한 바이오기업이다. 테라젠이텍스는 지난 2013년 메드팩토를 분사한 데 이어 2020년에는 바이오 사업을 물적분할해 테라젠바이오를 설립했다. 메드펙토는 골육종·췌장암·대장암 등을 적응증으로 면역항암제 후보물질 '백토서팁'을 개발하고 있으며 지난 2019년 코스닥 시장에 상장했다.
메드팩토는 골육종·췌장암·대장암 등을 적응증으로 면역항암제 후보물질 '백토서팁'을 개발하고 있다. 백토서팁은 지난달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난치성·진행성 골육종 환자를 대상으로 한 백토서팁 단독요법 임상1·2상 임상시험계획(IND)을 승인받았다. 또 미국 머크(MSD)의 면역항암제 '키트루다'와 백토서팁을 병용투여하는 대장암 임상3상도 앞두고 있다. 테라젠바이오는 국내 의료기관 700여곳과 해외 40여개국 연구기관에 NGS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개인 맞춤형 항암제를 개발 중이다.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 기업 티움바이오 역시 성공적인 스핀오프 사례로 거론된다. 티움바이오는 지난 2016년 SK케미칼에서 분사했다. 이후 2019년 11월 기술특례상장으로 코스닥 시장에 입성했다. 티움바이오의 면역항암제 후보물질 'TU2218' 임상과제는 최근 국가신약개발재단(KDDF)의 혁신신약 임상연구비 과제로 선정, 약 18억원 규모의 임상 연구비를 지원받을 예정이다. TU2218도 키트루다와 병용임상을 진행하고 있다.
바이오 기업이 스핀오프에 나서는 이유는 특정 신약 후보물질을 집중적으로 키워낼 수 있어서다. 바이오텍은 인력이나 자금이 제한적인 탓에 여러 후보물질에 동시에 대규모 자원을 쏟기 어렵다. 스핀오프를 통해 특정 후보물질을 떼어내면 자원을 집중적으로 투입해 R&D 전문성을 강화할 수 있다. 덩치가 작아진 만큼 모기업보다 의사결정 속도도 빨라지고, 외부 투자나 L/O도 유리해진다.
스핀오프 기업을 글로벌 진출의 거점으로 사용하는 바이오텍도 많다. 각각 미국과 독일에 자회사를 분사한 파멥신은 미국에 자회사 원칼, 큐리언트는 독일에 자회사 QLi5테라퓨틱스를 설립했다. 최근엔 바이오 기업뿐만 아니라 유한양행, 녹십자 등 전통 제약사도 해외 지역에 자회사를 설립하는 모습이다. 스핀오프 기업을 해외 거점 지역에 위치시켜 현지 기업과의 오픈이노베이션을 활성화한다는 구상이다. 현지 규제 당국과의 소통이 더 원활해 임상이나 품목허가에도 속도를 낼 수 있다.
특히 바이오 업계에선 스핀오프 전략이 인수합병(M&A)을 활성화하는 데도 도움을 줄 것으로 전망한다. 필요한 파이프라인만 골라 사거나 팔 수 있어 매수자와 매도자 모두 부담이 줄어들 것이란 분석이다. 새로운 신약 파이프라인을 발굴하고 기업 규모를 키우기 위해선 M&A가 필수적이지만, 국내 바이오 업계에선 대형 M&A 사례가 많지 않은 실정이다.
실제 해외에선 스핀오프한 기업을 중심으로 M&A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호라이즌 테라퓨틱스가 지난해 인수한 비엘라 바이오는 아스트라제네카(AZ)에서 분사한 기업이다. AZ는 지난 2018년 개발 초기 단계의 자가면역 질환 신약 후보물질을 독립시켜 비엘라 바이오를 설립한 바 있다. 다만 글로벌 빅파마의 스핀오프는 경영 효율화를 위해 수익성이 떨어진 사업 부문을 떼어낸다는 점에서 국내 바이오텍의 스핀오프와는 다른 측면이 있다.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여러 파이프라인을 가진 바이오 기업의 경우 스핀오프 방식으로 특정 질환 분야 R&D에 집중하고 기업의 가치도 더욱 키울 수 있다"면서 "상장하거나 연구 성과를 내는 스핀오프 기업이 늘면서 바이오텍의 스핀오프가 점점 더 활발해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