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김동훈 기자] 3.5초. 기아가 지난 4일 내놓은 고성능 전기차 'EV6 GT'(The Kia EV6 GT)가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를 기록하는데 걸리는 시간이다. 이는 한국 자동차 역사상 가장 빠른 것이다. 지난 6일 충남 태안 HMG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 센터를 방문해 EV6 GT를 타봤다.
결론부터. 기자가 직접 이 차량 가속페달을 밟아보니 3.58초였다. 전기차 특유의 '이이이잉'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시속 100km에 도달했다. 일반도로에서 출발할 때 실수로 꾹 밟으면 과속단속 카메라에 꼼짝없이 찍힐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사륜구동 단일 트림인 EV6 GT는 최고출력 270kW·최대토크 390Nm 후륜 모터와 최고출력 160kW·최대토크 350Nm 전륜 모터를 더해 합산 최고출력 430kW(585마력)와 최대토크 740Nm(75.5kgf·m)를 갖춘 덕에 이같은 스피드를 낸다.
잘달린다
EV6 GT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를 기반으로 한 기존 전기차 'EV6'의 고성능 버전이다. 역동적인 '주행의 맛'을 보여주겠다는 기아의 포부가 담긴 차다.
이날 기자는 일반도로 주행을 시작으로 HMG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 센터에서 △고속주회로 △마른 노면 △젖은 노면 △제로백 △커브트랙 △드리프트 △짐카나 등 다양한 코스를 약 3시간 동안 직접 주행해보고 인스트럭터가 운전하는 차량에도 탑승하며 차량의 한계 성능을 느낄 수 있었다.
고속주회로에선 EV6 GT의 최고속도 시속 260km를 경험했다. 차량은 시속 100km를 그야말로 순식간에 넘겼고, 시속 200km까지도 잽싸게 치고올라갔다. 앞서가는 차량이 200~300m 이상 멀어져도 금방 따라잡았다.
차량 모터의 분당 회전수(rpm)는 최고 2만1000회에 달해 저속에서부터 최고 속도인 시속 260km까지 모든 속도 영역에 대응할 수 있다고 한다. 게다가 시속 260km에서 맴도는 것이 아니라 속도는 조금 더 올라가기도 했다.
다만 시속 230km 이상에서 시속 260km까지 도달하는 과정은 초반 스피드처럼 빠르다고 보긴 어려웠다.
이는 전기차의 특성 때문이다. 전기차는 출발할 때 가장 많은 힘을 쓰는 모터의 특성상 대체로 내연기관차 대비 초반 스피드가 빠르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힘에 부친 모습을 보인다.
반대로 내연기관차는 초기엔 전기차보다 느리지만 힘이 한번 붙은 이후에 더욱 강한 힘을 낸다.
운전하는 재미에 안정성도
기아 최초로 EV6 GT에 적용된 '드리프트'(drift) 모드도 체험해봤다. 주행할 때 핸들을 사정없이 한쪽으로 돌리면 차량이 빙글빙글 돌았다. 극한의 회전을 거듭하면서 타이어에선 '끼이이익'하는 굉음과 함께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드리프트 기능을 이용하면 차량이 선회할 때 후륜 모터에 최대 구동력을 배분해 차량이 실제 조향 목표보다 안쪽으로 주행하는 현상인 '오버스티어'(over steer)를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기능을 이용하려면 차량에 기본 적용된 각종 안전 기능을 모두 해제해야 한다.
이런 극단적 기능을 사용하지 않을 때는 어떨까. 커브트랙을 시속 180km 이상 고속으로 주행할 땐 차량의 안정성을 체감할 수 있었다. 핸들을 조금만 덜 꺾으면 도로에서 이탈하는 것을 넘어 전복 사고가 날 것 같은 급커브 구간, 젖은 노면에서도 차량은 별다른 미끌림 없이 안정적으로 달려나갔다.
EV6 GT는 운전자가 고속에서도 차량을 쉽게 제어할 수 있도록 '전륜 스트럿링'과 '후륜 러기지 플로어 보강바' 등 차체를 강화해 민첩한 핸들링 성능을 갖추도록 했다고 한다.
속도에 따른 조향 응답성을 최적화하고, 미쉐린의 퍼포먼스 타이어를 적용해 안정성을 추가로 확보했다.
이와 함께 전자식 차동 제한장치(e-LSD)는 좌우 바퀴 구동력을 제어해 안정적이고 빠르게 곡선 구간을 주행할 수 있게 돕고, 전자 제어 서스펜션(ECS)은 주행모드에 따라 댐퍼(진동 에너지를 흡수하는 장치) 감쇠력을 조절함으로써 차량 자세를 최적화해 균형 잡힌 승차감과 핸들링 성능을 구현해준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실제로 트래픽 콘 사이를 이리저리 휘젓고 다녀야 하는 '짐카나' 코스에선 차량의 민첩성과 안정성이 돋보였다.
기자가 해당 코스를 처음 주행할 때 걸린 시간은 57초였으나, 두번째 주행에선 10초를 단축할 수 있었다. 고속으로 주행해도 안정적인 코너링이 가능하다는 믿음이 생기면서 속도를 높일 수 있었다는 생각이다.
이날 위험한 주행 코스를 고속으로 달리며 차량의 한계성능을 체험할 땐 헬멧을 착용했는데, 굳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전비는 1회 충전 기준 342km(복합기준)다. 3시간 동안 과격한 주행을 마쳤을 때 남은 배터리는 기존 79%에서 11%로 줄어있었다.
기존 EV6의 전비는 475km. GT가 고성능 차량인 점을 고려하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수준이다. 또한 차량은 400V·800V 멀티 충전 시스템이 적용돼 800V 초급속 충전 시스템을 이용하면 18분만에 10%에서 80%까지 충전이 가능하다고 한다.
기아는 EV6 GT 출시를 통해 운전의 재미를 추구하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역동적 주행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목표다. 차량 가격은 개별 소비세와 세제 혜택 적용 기준 7200만원이다. 기아가 고성능 전기차 시대를 열 수 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