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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포스코는 포기하지 않았다' 수해현장 가보니…

  • 2022.11.24(목) 11:19

78일간 100만명 복구참여
내년 2월 정상 가동 목표

포항제철소 인근 하천인 냉천 모습 /사진=김동훈 기자

[포항=김동훈 기자] 78일. 지난 9월6일 태풍 '힌남노'가 포항제철소를 덮친 이후 흘러간 시간이다. 국가기간 철강산업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현장은 현재 어떤 상태일까. 지난 23일 포항제철소로 향했다.

포항제철소를 들어가기 전 들러야 할 곳이 있었다. 침수의 원인으로 지목된 제철소 인근 하천 '냉천'이다. 냉천 주변은 부러진 나뭇가지가 여기저기 어지럽게 엉켜있었다. 태풍의 흔적이 아직 남아 있었다.

더군다나 전날 비가 내린 탓에 흙탕물이 빠른 속도로 흐르고 바람도 강하게 불었다. 

냉천 둔치에서 하류 방향을 보면, 포스코 간판을 단 건물들이 한눈에 보인다. 냉천이 범람하면 곧장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위치에 제철소가 있다. 

피해는 제철소만 입은 게 아니다. 냉천 인근에 위치한 이마트는 아직도 운영 중단 상태다. 차 한대 없는 넓은 주차장이 을씨년스러웠다.

500년만의 폭우

지난 9월 힌남노가 상륙했을 때 포항에는 시간당 100mm 이상의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 설상가상으로 만조 시점과 겹쳐, 여의도 면적의 3배에 달하는 포항제철소도 첫 쇳물 생산후 49년만에 대부분 침수됐다.

포항제철소 관계자는 "그날은 500년만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폭우가 쏟아졌다"며 "냉천은 비가 오지 않을 땐 건천인데, 기록적인 폭우에 설상가상으로 만조가 겹치면서 제방과 제방 사이가 품을 수 있는 용량을 초과, 포항제철소와 인근을 모두 침수시켰다"고 말했다.

포항제철소 2열연공장에서 복구작업이 진행되고 있다./사진=포스코 제공

그날 포항제철소엔 자체 추산 약 620만톤의 흙탕물이 유입됐다고 한다. 여의도를 2.1미터 높이로 채울 수 있는 규모다.

천시열 포항제철소 공정품질부소장은 "길이는 40km이고 깊이가 8~15미터인 지하설비에 물이 가득 찼고, 전체가 342만평인 제철소 지상으로도 1~2미터 이상 물이 차올랐다"고 설명했다.

정상 가동 '속도'

이날 방문한 포항제철소에선 흙탕물의 흔적을 쉽게 찾을 수는 없었다. 

쇳물을 받아 제강공정으로 옮기는 장비인 용선운반차(토페도카)도 제철소를 아무 문제없이 누비고 다녔다.

토페도카도 이번에 쇳물을 담은 채로 굳는 피해를 보았는데, 광양제철소 토페도카를 옮겨오고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서도 5대를 긴급 지원한 바 있다.

포항제철소 3고로에서 쇳물이 쏟아지고 있다./사진=포스코 제공

현재 포스코는 1열연, 1냉연 등 7개 공장을 정상가동하고 있다. 이날 3고로에 가보니 1515도의 쇳물이 분당 3톤 규모로 쏟아지고 있었다. 쇳물이 쏟아지는 모습은 눈이 부셔 정면으로 응시하기 어려웠고, 새빨간 쇳물은 두꺼운 바닥 아래로 흐르며 다음 공정으로 넘어갔다. 

1열연공장에서도 철강 반제품 '슬라브'가 뜨거운 열기를 쏟아냈다. 슬라브는 롤러 테이블 위를 빨간 혓바닥처럼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압연 공정을 거치고 있었다.

'침수공간·밀폐공간·가스지역 출입 전 가스검지 및 가스검지기 상시휴대'라는 내용을 담은 현수막은 이곳이 침수됐던 곳임을 알리고 있었다. 

제철소 관계자 역시 "이곳은 흙탕물로 가득 찼던 곳이었다"며 복구현장임을 알렸다.

포항제철소 1열연공장에서 제품이 생산되고 있다./사진=포스코 제공

남은 복구 어떻게

아직 복구중이라는 2열연 공장으로 이동했다. 곳곳에 바닥부터 천장까지 침수 흔적이 있다. 각종 장비를 헝겁으로 닦다가 말리고 있는 등 여전히 복구 작업이 진행중이지만 대부분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2열연공장은 포항제철소가 연간 생산하는 1350만톤의 제품 중 500만톤이 통과하는 공장이다. 자동차용 고탄소강, 구동모터용 고효율 무방향성 전기강판(Hyper NO), 스테인리스 고급강 등 주요 제품들이 꼭 거쳐야 하는 매우 중요한 공장으로 꼽힌다.

제철소 관계자들은 "소방청에서 물을 뽑아내는 초대형 펌프를 지원해줬고, 정부 지자체·해병대 등 지역에서도 엄청난 도움을 줬다"며 "사람들이 구석구석에 있는 뻘을 하나하나 긁어낸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설명을 들으면서 좁은 통로의 계단을 30분 가까이 내려가고 올라오면 지하설비 공간을 수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고생하며 씻어내고 있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다.

포스코에 따르면 피해 발생 이후 포스코 전현직 임직원뿐 아니라 민·관·군에서 총 100만명 이상이 복구 작업에 참여했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도 한몫했다. 제철소 내 목욕탕의 의류 건조기로 전기부품을 건조하고, 농가에서 쓰는 고추건조기도 활용한 것이다.

포항제철소의 '명장' 손병락 상무보는 그동안의 고생스런 현장 복구와 앞으로 남은 일들을 언급하면서 후배들에게 꼭 한마디 하고 싶다며 이같이 외쳤다.

"후배들아. 하면 된다. 이제 다 왔지 않느냐. 가자. 힘내라. 우리의 능력과 기술을 믿는다!"

/그래픽=김용민 기자 kym5380@

빠른 회복 원동력은

포스코가 상상을 넘는 천재지변을 겪고도 복구 작업에 속도를 낼 수 있는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포스코는 태풍이 본격 상륙하기 전부터 준비에 서둘렀다. 회사 관계자는 "힌남노 상륙 일주일 전부터 자연재난대책본부를 가동했다"며 "역대급 위력의 태풍이란 예보에 따라 하역 선박 피항, 시설물 결속, 침수 위험 지역 모래주머니·방수벽 설치, 배수로 정비 등 사전 대비 태세를 더욱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제철소 54년 역사상 처음으로 전 공장 가동중단이란 결정적 판단을 내린 덕에 이같은 공장 가동이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압연지역이 완전 침수됐는데도 제철소 내 인명 피해나 대형 폭발사고가 발생하지 않았고, 이후 복구기간을 대폭 단축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얘기다.

제철소 관계자는 "공장 가동을 중단한 뒤 다시 불을 올려 정상 가동을 하려면 6~7시간이 걸린다"며 "하지만 최고경영진이 공장 가동을 중단하는 결정을 빠르게 내린 덕에 2차 피해를 막았고, 복구의 찬스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제철소의 심장으로 불리는 고로 3기를 동시에 휴풍시키고, 쇳물이 굳는 '냉입'(冷入) 발생을 사전에 방지함으로써 고로를 4일만에 재가동시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아울러 설비 가동을 정지한 덕에 각 설비에 설치된 모터, 변압기, 차단기 케이블 등 전력기기 수만대의 합선·누전으로 인한 대형화재 발생도 막았다.

제철소 관계자는 "2003년 태풍 매미 때도 공장 가동을 중단한 적이 없었고, 포항에 태풍이 한두번 온 것도 아닌데 이번에 공장 가동을 중단한다고 했을 땐 너무 '오버'라는 생각도 했었다"며 "그러나 정상 조업을 하다가 당했다면 복구를 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부지 부족으로 새로운 공장을 짓기도 어려웠을 것이라 생각하니 최고의 결정, '신의 한수'였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포스코그룹 최정우 회장도 글로벌 철강업계의 협력을 이끌며 포항제철소 핵심 공장인 2열연공장 복구기간을 대폭 단축시켰다는 평가다. 최 회장은 인도 JSW의 사쟌 진달 회장에게 협조를 긴급 요청, JSW 열연공장용으로 제작중인 설비를 포스코에 내주기로 결정하면서 2열연공장 복구를 크게 앞당겼다는 것이다.

영일만 인근에서 본 포항제철소 전경./사진=김동훈 기자

내년 2월 정상화 목표

포스코는 총 18개 압연공장 중 연내 15개를 복구할 예정이다. 또 연내 기존 포항제철소에서 공급하던 제품을 모두 정상적으로 재공급한다는 방침이다. 모든 공정의 정상 가동은 내년 2월로 예상하고 있다. 

각 공장의 설비 구동에 핵심 역할을 하는 모터 약 4만4000대 가운데 31%가 침수 피해를 봤으나, 이 중 73%가 복구 완료됐다. 포스코는 당초 해당 침수 설비를 신규로 발주하는 것도 검토했으나 제작·설치에 1년이상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직접 복구하기로 했다.

제철소 관계자는 "제철소 현장에 23명의 명장이 있는데 그렇게 오래 걸려서 제철소를 어떻게 돌리노? 이런 반응이 나왔다"며 "우리가 장비를 직접 제작하진 않았지만 50년 가동한 경험으로 한번 살려보겠다는 각오"라고 말했다.

국내 고객사 피해 최소화 및 시장 안정을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포항제철소 제품을 구매하는 473개 고객사를 대상으로 수급 이상 유무에 대한 전수 조사를 진행, 광양제철소 전환생산, 해외 사업장 활용, 다른 철강사 협업 공급 등 맞춤형 대응계획을 수립하며 수급불안을 해소했다.

포스코그룹 관계자는 "'빠르게 보다 안전하게' 복구를 진행해 초유의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더 단단한 조직과 더 강건한 제철소로 거듭날 것"이라며 "이번 수해 피해 상황과 복구 과정을 면밀히 기록, 분석하고 기후이상 현상에 대응한 최고 수준의 재난 대비 체계를 빠른 시일 내에 구축해 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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