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터당 2000원 시대를 코앞에 둔 정유업계가 역대급 정제마진이라는 화려한 지표 뒤에서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고 있다. 정부의 가격 통제로 원가 상승분을 반영하지 못하는 외화내빈의 처지에 놓인 데다 겉보기에만 화려한 실적 지표가 오히려 규제 압박을 키우는 독(毒)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 때문이다.
상한선 비웃는 가격 폭주
30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오후 1시 기준 서울 주유소의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전날보다 16.09원 오른 1930.55원을 기록했다. 이는 정부가 지난 27일 2차 석유최고가격제를 시행하며 설정한 휘발유 공급 상한선인 1934원에 단 3.45원 모자란 수준이다.
경유 가격 상승세 역시 가파르다. 서울 경유 평균 가격은 하루 만에 13.29원 급등하며 1907.39원을 기록해 1900원 선을 넘어섰다. 정부가 제시한 경유 공급 상한선인 1923원과의 격차도 15원 남짓으로 좁혀졌다. 지난 주말까지 1700원대를 유지하던 주유소들이 국제 유가 상승분을 반영하며 일제히 가격을 올린 영향이다.
현재 시장 시황은 극도의 혼란 국면이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배럴당 99.64달러, 두바이유는 122.14달러를 기록 중이다. 정유사의 수익을 결정짓는 핵심 지표인 정제마진은 주간 기준 배럴당 39.1달러로 역대 최고치 수준이며 일중 기준으로는 63.6달러까지 치솟았다. 정제마진이란 휘발유나 경유 같은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 가격과 수송비 등 비용을 뺀 값으로, 보통 배럴당 4~5달러를 손익분기점으로 본다.
'그림의 떡' 된 마진…보전 산식 미비에 비용 폭등까지
지표상으로는 전무후무한 폭리가 예상되지만 국내 정유업계의 속내는 다르다. 국제 시장의 정제마진은 폭등했으나 국내에서는 최고가격제 시행으로 인해 이 마진을 판매가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석대법)에 손실 보전 규정은 있지만 이를 산출할 구체적인 산식이나 보전 규모가 아직 확정되지 않아 정유사가 당장의 적자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실정이다. 현재 정부가 관련 기준을 검토 중이나 정유사가 실제 발생한 손실을 수치화해 입증하는 과정 자체가 매우 까다로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비용 부담도 역대급이다. 전쟁 여파로 원유 도입 자체가 어려워진 데다 호르무즈 해협 통과 등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해 물류비와 운임, 보험료 등 제반 비용이 일제히 폭등했다. 여기에 정부가 내수 물량 확보를 위해 수출 물량을 지난해 수준 이상으로 늘리지 못하도록 제한하면서 정유사의 주요 수익원인 해외 판로까지 제약받는 상황이다.
수요 파괴에 대한 공포도 현실화되고 있다. 기름값이 급등하면 일반 소비자들이 차량 이용을 자제하고 대중교통으로 옮겨가면서 전체 판매량이 급감한다. 아무리 정제마진이 높아도 실제 팔리는 물량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실적 개선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업계는 오히려 1분기 실적이 양호하게 나오는 상황을 경계하고 있다. 1~2월의 안정적인 실적이 3월의 손실을 상쇄해 겉보기에 실적 파티처럼 비칠 경우 정치권과 정부의 규제 압박이 더 거세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정부와 손실 보전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정유사가 직접 손실액을 산출하고 증명해야 하는 입증 책임이 따를 것으로 보여 실제 보전까지는 험로가 예상된다"며 "글로벌 정제마진이 아무리 높더라도 최고가격제와 수요 위축이 맞물리면 정유사 입장에서는 팔수록 손해가 커지는 구조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