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무는 세계化시대]②입맛따라 경제영토 가르기

  • 2013.10.18(금) 11:22

소규모 권역별 합종연횡으로 진화
합의과정 험난..선진국 제몫찾기 논란도

15년전 마이크 무어 전 국제무역기구(WTO) 사무총장은 WTO가 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 국제연맹처럼 붕괴될까 두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자유무역을 표방했던 도하라운드는 논의만 됐을뿐 유명무실해진지 오래다. 자유무역을 갈망하는 듯했던 국가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서로 등을 돌렸다.

 

시장에 가득찼던 자만심은 금융위기 직후 1930년대 대공황이 재현될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변모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대공황이 재현되진 않았다. 이미 당시 경기침체를 더 심각하게 만들었던 보호주의가 과거만큼은 크게 강화되진 않았기 때문이다. 이미 겪었던 위기를 통해 교훈을 얻은 결과였다.

 

◇ 세계화 2.0=경제영토 가르기

 

세계화는 탈세계화라고 단정짓기에는 애매한 조금 다른 형태로 대체되고 있다. 정책 입안자들은 교역 상대를 더 세심하게 고르고 외국인 투자자들의 접근 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지난주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이런 상황을 앞이 꽉 막힌 벽은 아니지만 상대방을 확인하기 위해 열고 닫을 수 있는 문으로 표현했다. 서로 빗장을 갈어둔 채 선택적인 교역을 추구하는 것이다.

 

각 나라들 사이에는 새로운 경제영토의 선이 그어지고 있다. 모든 패를 다 보여주고 동등하게 거래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유리한 것을 취할 수 있는 상대를 골라하는 경제권역의 합종연횡이다.

 

초기만해도 광범위한 권역을 아울렀던 자유무역협정(FTA)은 개별국가로 범위를 좁혔지만 이제는 지역적으로 인접해 있는 국가들로 협정을 맺는 소규모의 다자간 형태로 진화했다. 과거 유럽연합(EU)이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보다는 협의의 형태로 일부에서는 FTA 2.0으로 부르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이 같은 움직임이 활발하다.  역내 포괄적 경제협정(RCEP)이나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협정(TPP) 등이 그것이다.

 

▲ 출처:삼성경제연구소

 

 

◇ 쉽지 않은 과정..선진국 제몫 찾기 논란 

 

각국의 이기심에서 비롯되긴 했지만 더 작은 권역을 통한 거래는 효율성을 훨씬 높일 수 있다. TTP만해도 지적재산권 보호나 국영기업에 대한 규정 등을 다루는 등 논의의 주제가 더 세분화됐다. 잘만 고안된다면 오히려 권역 내 자유무역이 더 체계적으로 활성화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부작용도 있다. 세분화된 합의에 실패한다면 교역을 늘기보다는 서로에게서 더 멀어질 수도 있다. 입맛에 맞는 상대를 찾으려는 국가들끼리 합종연횡을 이루는 과정인 만큼 이해관계가 충돌할 가능성도 크다.

 

전문가들은 FTA들이 제각각 뚜렷한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서로 견제하는 상태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TTP와 RCEP 간에 회원국 확대 경쟁이 지속되고 각종 통상규범을 둘러싼 대립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각각의 FTA 내에서도 이미 갈등이 나타나고 있다. 각국의 경제발전 속도나 수출품목이 달라 합의 도출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TPP는 '예외없는 관세 철폐'라는 당초 취지와는 다르게 사안별로 예외를 두는 다자간 FTA로 변질됐다. RCEP는 중국이 주도하고는 있지만 선진국과 개도국간 관세 철폐를 원하는 항목이 달라 타결에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탈세계화의 흐름은 결국 선진국들의 제몫찾기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권역별 무역개방이 이뤄지고 있지만 결국 이를 주도하고 있는 것은 소수의 강국들이다. 선진국의 경우 신흥국을 견제하고 중국 역시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양새다.  

 

실제 미국과 EU는 글로벌 규범을 만들어내는 입지를 더 강화해 세계 경제와 기술 주도권을 더욱 선점할 수 있다. 이들은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을 대상으로 국유기업에 대한 특혜 취소나 지식재산관 환경 노동 정책 개선을 요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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