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증권사들도 인원 감축 등 뼈아픈 구조조정에 나서며 허리띠를 바짝 졸라맸다. 비용절감도 한계에 다다랐다. 증권사 매물이 줄을 잇고 정부 역시 팔을 걷어 부치면서 내년 증권업계의 화두로 인수합병(M&A)이 부상하고 있다. 시계는 그리 밝지 않다. 다만 경기 회복과 맞물려 업황이 다소 나아진다면 그래도 올해보다는 낫지 않겠느냐는 것이 그나마 가질 수 있는 위안이다.
◇ 매섭게 몰아치는 칼바람..아직 진행형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감원 소식이 흘러나온다. 올해 들어서만 2000명 가까운 인력이 해고됐고 여전히 일부 증권사에서는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다. 증권가의 꽃으로 불리웠던 애널리스트 감축 인원도 100여명에 달한다.
실적이 여의치 않은 증권사들은 비용 절감을 위해 가장 손쉬운 인력 감축에 나서고 있다. 지점 통폐합을 통한 점포 대형화나 관리비도 줄이고 있다. 벌써 이런 구조조정은 2년째다.
증권사들은 더이상 위탁매매 수수료만으로는 살기 힘들어졌다. 금융위기 이후 코스피 지수는 상승 추세를 보였지만 수수료는 오히려 줄었다. 지수 상승에도 불구, 일평균 거래대금과 회전율은 꾸준히 감소했기 때문이다. 이런 거래량 감소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추세다. 증권사로서 이를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단순한 비용절감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대신증권은 증권사들의 이런 노력은 판관비율이 100% 이하가 될 때까지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증권사들의 판관비율은 핵심수익 부진으로 지난해부터 100%를 상회하고 있다.
▲ 코스피, 코스닥 지수와 거래대금 추이(단위:10억원, 출처:나이스신평) |
◇ 증권업계에 유독 시련의 해
증권사들은 지난해부터 거래대금 부진으로 고전을 이어왔다. 올해는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로 시장이 크게 흔들린 탓에 유례없는 채권평가 손실까지 떠안았다. 증권사들이 보유하고 있던 10조원 이상의 채권은 금리가 상승하자 엄청난 손실로 이어졌다. 이 여파로 올해 상반기(4~9월) 증권사 10곳 중 4곳은 적자를 기록했다.
가뜩이나 업황 부진에 시달린 증권업계는 동양사태라는 또다른 강적을 만났다. 직접적인 피해자는 동양증권에 국한됐고 위험한 상황까지 내몰리진 않았지만 증권사들은 계열지원 위험에 따른 평판 리스크를 떠안아야 했다.
연말 들어서는 파생상품 거래 실수로 청산 위기에 내몰린 증권사도 출현했다. 20년 관록의 한맥투자증권은 자동매매 프로그램 입력을 잘못해 600억원 가까운 손실을 기록했다. 이번 사태는 한맥투자증권 외에 증권사들이 출연한 손해배상 공동기금에서 손실액이 충당될 예정이서 결과적으로는 증권업계 전반이 부담을 지게 됐다.
◇ 실적 정상화 관건.. 바닥 확인은 위안
그나마 희망적인 부분은 증권업계의 실적이 올해 바닥을 찍었다는 기대감이다. 주식시장이 오르면서 그나마 펀드수수료는 소폭 증가했고 지난 1분기 대규모 채권평가손실이 발생한 후 주요 증권사 실적은 반등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여전히 증권사 최대 수익원인 브로커리지 부문은 부진이 예상되지만 증권사들의 비용절감 노력과 맞물려 내년 증시가 상승흐름을 탄다면 수익이 다소나마 개선될 것으로 점쳐진다.
현대증권은 코스피 2100포인트와 2%의 인력 감축을 가정할 때 내년 증권업 자기자본이익율(ROE)이 완만하게 개선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증권도 판관비 축소와 주식위탁수익 개선 덕분에 주요 증권사 6곳의 합산 순이익이 60% 가까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ROE는 지난해와 비슷해 수익성 침체는 지속될 것으로 봤다.
◇ M&A 본격화..매물 즐비한데 장터는 한산
업황이 나아지지 않는 한 규모를 줄이는 비용절감 노력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대신증권 분석에 따르면 비용절감을 통해 증권사가 시현할 수 있는 ROE는 4~5%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증권업계는 현재 구조적인 변화를 맞으면서 새로운 수익원을 캐야하는 상황에 봉착했고 증권사들 사이에서도 자연스럽게 구조조정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이미 시장에는 10여개의 증권사들이 매물로 나와있고 현재 매각작업이 진행 중인 우리투자증권 동양증권에 이어 대우증권과 현대증권도 잠재 매물로 대기 중이다. 내년은 증권사 M&A가 화두로 예약된 셈이다.
금융당국도 M&A를 독려하기 위해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들고 나왔다. 최근 금융당국은 M&A 규모에 따라 신규사업을 허용하는 인센티브를 내걸었고 증권사 M&A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규제도 완화에 나섰다. 정부 정책이 아직은 미진하다는 평가가 많지만 이 중 일부라도 M&A에 성사될 경우 분위기를 뒤바꿀 수 있다. 대형 증권사 탄생은 기대해볼 만하다.
다만 너무 많은 중소형급 매물이 쏟아지면서 헐값 매각을 부추길 수 있는 점은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새 주인을 찾게 될 증권사가 사실상 많지 않으면서 증권업계의 합종연횡이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오래전부터 매물로 나온 소형 증권사들의 경우 최근 매각이 잇따라 좌초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