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현지시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마침내 양적완화 축소(테이퍼링)를 시작했다. 1~3차 양적완화를 통해 유동성을 쏟아부은지 5년만이다.
시장 충격은 없었다. 이미 지난 여름 테이퍼링 예고로 한차례 부침을 겪은 영향도 컸지만 연준이 테이퍼링을 시작하는 대신 또다른 선물을 한아름 안겼기 때문이다. 이날 연준이 준 명확한 메시지는 경제가 확실히 회복기조에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에 예정됐던 기간보다 훨씬 더 오래 저금리 기조를 유지할 것이란 확신이었다. 시장은 버냉키의 저주가 아닌 깜짝 크리스마스 선물로 해석하고 있다.
◇ 테이퍼링 개시에 담긴 경제회복 자신감
연준의 테이퍼링 개시 결정은 다소 이른감이 있다. 12월 중에도 일부 예상은 했지만 대부분 내년 초에야 테이퍼링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대세였다. 경기회복이 지속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남아있는데다 물가 상승 압력 역시 낮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준은 테이퍼링을 결국 선언했다. 내년 1월부터 매달 100억달러씩 자산매입규모가 줄어들게 된다. 그동안 시장에 넘쳐났던 유동성의 수도꼭지를 서서히 잠글 것이란 공식적인 경고다.
하지만 시장은 이를 그만큼 확신에 찬 경기 회복 신호로 읽었다. 연준이 물가보다 고용회복에 방점을 찍은 것에도 주목했다. 연준은 올해 미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상향했고 실업률 전망치는 하향했다.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베스 앤 보비노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이날 결정은 경제 회복의 지속성에 대한 확신을 놓고 벌인 투표 결과"라며 "10,11월 고용지표 개선에 더해 (최근 미국 예산안 합의로) 정치 불확실성이 줄어든 것도 일조했다"고 평가했다.

▲ 시장의 환호. 18일(현지시간)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500 지수 추이. 연준의 테이퍼링 개시 후 큰 폭으로 올랐다(출처:NYT) |
◇ Taper 아닌 T에 불과..시장과도 소통
연준은 내년 실업률 전망치를 6.4~6.8%로 제시했다. 이대로라면 내년 실업률은 양적완화 축소 가늠자로 제시됐던 6.5%에 다다르게 된다. 예전 같으면 시장이 잔뜩 긴장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를 감안해 연준은 저금리만큼은 걱정말라며 시장을 다독였다. 테이퍼링이 개시되는 대신 기준금리 인상 시점을 늦춘 것이다. 연준 성명에 비춰보면 연준의 금리인상 시점은 일러야 내후년 말 이후로 점쳐지고 있고 넉넉하게는 2017년까지 미뤄졌다.
CNBC는 연준이 테이퍼링에 나선 것이 아니라 테이퍼링의 T만큼만 실행에 옮겼을 뿐이라고 평가했다. 시장도 이를 즉각적으로 받아들였다. 뉴욕 증시는 급등했고 아시아 증시 역시 큰 폭으로 오르고 있다.
연준이 테이퍼링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로 막대한 연준 재정도 주목받고 있다. 연준의 재정은 지속된 양적완화로 인해 4조 달러에 이르면서 이를 덜어줄 필요성이 계속 제기돼왔다.
◇ 버냉키 소임 다해..공은 옐런에게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은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경기 회복세가 완벽하진 않지만 고용이 개선되면 자산매입을 계속 줄여나갈 것이라고 밝히며 자넷 옐런 의장이 이를 계속 지지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은 테이퍼링 개시 시기에 대한 불안뿐 아니라 8년만에 바뀌는 연준 신임의장과 정책 불확실성을 거의 없앤 채 내년을 맞이할 수 있게 됐다.
지난 여름 테이퍼링 연급 이후 상당한 부침이 있었고 연준이 시장과의 의사소통에서 실패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지만 이날 만큼은 이런 불명예를 어느정도 씻게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연준의 테이퍼링은 한동안 금리인상과 같은 긴축 신호로 해석되면서 시장이 공포에 떨었지만 이번에는 버냉키의 바람과 의도대로 이런 상황에 재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장은 연준이 계획하고 있는 테이퍼링과 긴축 시간표가 상당히 긴 시간에 걸쳐 이뤄질 것임을 확실히 인지하게 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테이퍼링이 긴축이 아니라는 최종적인 확신이 들게 했고 이런 면에서 시장 소통전략에서 성공의 쐐기를 박았다"며 "다음 시험대는 옐런 의장이 통화정책 정상화 경로를 이어갈지 여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