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는 반복된다. 시장의 거품은 탐욕이라는 인간의 본성에서 시작됐다. 거품이 터지면 뒷설거지는 결국 당국의 몫이다. 중앙은행은 시장을 되살리기 위해 돈을 풀고, 정부는 규제의 고삐를 죈다. 그리고 다시 시장이 되살아나면 잠시 물러나 있던 탐욕에 다시 불씨가 댕겨진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위기의 일반적 공식이다.
하지만 이런 위기를 조장하고 더 키운 장본인이 바로 중앙은행이라면? 유감스럽게도 이는 가정이 아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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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 발행을 독점하는 중앙은행은 시장에서 신과 같은 존재다. 이들에겐 시장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화폐발행권이 있다. 시장은 신의 계시에 따를 뿐이다. 하지만 중앙은행은 신을 자처했을 뿐 신은 아니었다. 불완전한 인간으로 구성된 중앙은행은 위기를 치유하려 돈을 풀고, 위기를 막기 위해 다시 조이고를 반복했지만 그 사이 예측불가능한 상황이 벌어졌다.
위기의 산물이 아니라, 신을 자처한 중앙은행이 낳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물이다. 거품과 붕괴,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의 끝없는 반복 뒤에는 결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있었다.
이를 일찌감치 간파하고 비판에 나선 인물이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 교수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프리드먼 교수는 중앙은행의 과도한 경제 조작을 비판하며 이런 행태를 '샤워실의 바보(fool in the shower room)'에 빗대 꼬집었다.
샤워를 하려고 더운물을 틀자 뜨거운 물이 쏟아져 깜짝 놀라고, 다시 찬물 쪽으로 재빨리 수도꼭지를 돌렸지만 이번에 차가운 물에 질겁해 결국 물만 버리고 샤워는 못하는 바보같은 행태를 보인다는 얘기다. 여기에서 바보는 중앙은행과 정부다. 바보들이 유동성을 과도하게 조이고 풀었다를 반복하는 사이 돈은 어디론가 다 흘러가버리고 경제는 통제불능이 된다는 것이다.
'샤워실의 바보들'이란 책의 부제는 '위기를 조장하는 이코노미스트들의 위험한 선택'이다. 책 제목과 부제에서 미뤄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책은 세계 재정과 통화정책 이면에 감춰진 진실을 속속들이 파헤쳤다. 저자는 세계 경제를 대상으로 화폐실험을 자행하고 있는 중앙은행들이 과연 공정한 주체인지 반문하다. 그리고 정부는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해야 한다고 믿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철인이 존재할 수 없다고 일갈한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 저자 역시 대안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정부의 민주적 통제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뜻깊은 계기를 독자들에게 안긴다. 특히 국내 유일의 중앙은행 관찰자로 불리는 저자는 정부와 중앙은행에 대한 냉철한 시각을 견지하며 한 편의 생생한 다큐멘터리와 같은 전개를 통해 소중한 고민의 길로 인도한다.
대공황 이후 디플레이션을 탈피하기 위한 몸부림에서부터 일본의 잃어버린 10년과 2008년 세계 금융위기는 물론 자넷 옐런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시대의 도래와 아베노믹스의 극단적인 실험까지 아우른다. 과거부터 가장 최근의 중앙은행 정책까지 모두 통찰할 수 있는 독보적이고 흔치 않은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저자인 안근모 씨는 국내 유일의 국제 경제 전문매체인 글로벌모니터를 지난 2012년 창간해 편집장을 맡고 있다. 1994년 YTN 공채 2기로 기자생활을 시작, 이데일리에서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등을 출입했고 뉴욕 특파원으로 일하며 국내외 재정 및 통화정책을 밀착 취재했다. 오랜 기자생활을 통해 축적한 경험과 전문성, 기자 특유의 감각까지 더해진 저자의 차별화된 독창성을 '샤워실의 바보들'을 통해 향유할 수 있을 것이다.
[지은이 안근모/펴낸곳 어바웃어북/324쪽/1만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