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에서는 이미 디플레를 막기 위한 부양에 나서고 있어 한국도 귀추가 주목되는 시점이다. 한국 역시 적극적으로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정책 당국자 입장에서는 판단이 쉽지 않은 모습이다.
◇ 점점 커져가는 디플레 먹구름
디플레는 최근 매년 지속적으로 나오는 '노이즈'다. 실제 모습을 드러낸 적은 없다. 하지만 논란은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고 우려가 되풀이되는 양상이다.
최근에는 디플레를 예감케하는 지표들이 전 세계적으로 더욱 뚜렷해졌다. 저물가 상황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양적완화를 결정한 유럽은 지난해 0%대에서 지속되던 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로 전환했다. 일부 동유럽 국가들은 이미 디플레에 빠진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도 0%대 물가가 이어지며 지난달 물가상승률이 5년만에 최저치를 기록했고 경제 회복세가 비교적 뚜렷한 미국도 금융위기 이후 물가목표인 2%를 한참 밑돌고 있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물가상승률이 1%보다 낮으면서 디스인플레이션 상황이거나 디플레이션에 빠진 국가는 선진국(33개국) 가운데 82%에 달했고 개도국의 비중도 30%선까지 높아지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의 물가상승률은 지속적으로 낮아지면서 디스인플레이션이 강화되는 중이다. 2011년만해도 4%대였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지속적으로 낮아지면서 2012년 이후 물가안정 목표치를 꾸준히 하회하고 있다. 지난 1월 소비자물가는 2개월 연속 전년동월대비 0.8% 상승률에 그쳤다.
▲ 한국 CPI와 기준금리 추이(출처:KTB증권) |
◇ 유가 하락에 기대 인플레도 저조
이미 지난해 시장에서는 올해 시장 화두로 낮은 인플레이션이 지속되는 '로우플레이션'을 지목한 바 있다. 저물가가 그다지 새로운 이슈는 아닌 셈이다. 그러나 디플레 쪽으로 다시 무게중심이 이동하면서 성장둔화 우려를 더욱 키우고 있다.
디플레 우려가 강화된데는 무엇보다 국제유가 하락이 크게 작용했다. 원자재 가격이 오랫동안 하락세를 보인 가운데 지난해부터 유가가 급락하자 가뜩이나 낮은 물가를 더욱 끌어내렸다.
이런 유가 하락 뒤에는 수요 둔화가 자리하고 있고 이는 성장이 계속 더뎌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국제유가 하락 등은 한국 물가에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다.
또하나 주목할 점은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가 계속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저성장·저물가 국면이 지속되면서 물가가 오를 것이란 기대 심리가 꺾였고 디플인플레이션을 더 심화시키고 있다는 논리다.
한국은 경세 성장세가 상대적으로 양호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잠재성장률은 이미 3%대로 줄었고 장기 인플레이션 기대도 크게 낮아진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 한국도 금리 인하? 글쎄…
이미 전세계적으로는 디플레를 타개하기 위한 부양 조치가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한국은 지난해 두차례 금리를 인하한 후 당장 추가 부양 조치에 나설지 여부가 상대적으로 오리무중이다.
정책당국은 아직까지 디플레를 크게 의식하지 않고 있다. 이달초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현재의 저물가 상황은 디플레보다 디스인플레 상황이라며 유가 하락에 따른 교역조건 개선 등으로 3.8% 성장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지난 1월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에서도 금통위 위원들은 지난해 금리 인하 효과와 가계부채 문제를 주의깊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채현기 KTB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저물가 기조가 재부각되고 있지만 물가안정 목표치를 오랫동안 하회했다는 점에서 지나친 우려로 보기는 어렵다"며 "현재 국내 경기 경로가 변곡점 상에 위치해 한은의 경기판단이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한국투자증권도 채권시장 인플레 기대치가 반등하고 있는 점은 시장의 디플레 우려가 다소 과도했도 되돌림이 나오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며 인플레이션을 염두에 둔 트레이드를 추천했다.
그러나 디플레 우려에 제대로 대처하지 않으면 인플레를 유도하기 쉽지 않아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한국의 가계부채가 급증한 상황에서 디플레는 실질금리를 높여 부채 부담을 더 가중시킬 수 있다.
강중구 LG경제연구원 연구원은 "인플레 기대 하락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통화정책 유효성이 상실되는 시기가 앞당겨질 수 있음을 의미하다"며 "유효한 정책수단이 남아있을 때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