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날개’단 전자증권 시대 열린다

  • 2015.10.23(금) 16:28

실물증권 불편 해소하는 궁극의 제도
시간·비용 절감하고 불공정거래 잡아

주식 거래가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이 아닌 종이로 인쇄된 실물증권으로만 이뤄진다면 어떻게 될까. 최근 한국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주식수는 코스피와 코스닥 종목을 합쳐 하루 평균 16억주 가량. 이 어마어마한 물량이 디지털의 힘을 빌리지 않고 실물 그대로 돌아다닌다는 것은 현실에선 불가능한 일이다.

 

굳이 실물증권으로 매매하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단 주식을 사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금고나 장롱 속에 보관한 실물증권을 꺼내 부산이든 미국이든 직접 찾아가 건네주고 돈을 받으면 된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주식을 받은 사람은 해당 기업이 발행한 진짜 증권인지 가짜인지를 확인해야 하는데 일반인이 감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근처 증권사 대리점을 방문한다 해도 전문 교육을 받은 직원이 없다면 위조 여부를 깔끔하게 판단할 수 없다.

▲1999년에 발행된 삼성전자 실물증권.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한국예탁결제원 증권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한국예탁결제원 일산센터 지하 금고에는 지난 9월 기준으로 276만장의 실물증권이 보관돼 있다. 한때 이곳의 유가증권을 차곡차곡 쌓아놓으면 백두산 높이에 맞먹을 만큼 실물증권이 많았다고 하지만 현재는 주권불소지제도(주주가 원할 경우 주권을 발행하지 않는 제도)에 따라 그나마 15% 가량 실물만 보관하고 있다.

 

이러한 불편과 위험, 사회적 비용을 없애기 위해 국내엔 지난 1974년부터 증권예탁제도가 도입돼 시행 중이다. 증권을 예탁기관에 보관하는 편리한 제도다. 다만 이 제도는 기본적으로 실물증권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실물증권 발행과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구조적으로 안고 있다. 문제를 말끔하게 해결하기 위해 나온 것이 전자증권제도다. 

 

23일 금융감독당국 및 업계에 따르면 지난 20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전자증권제도를 도입하는 '주식·사채 등의 전자등록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 통과됐다. 전자증권법 제정안은 정부가 다음주 국회에 제출, 연내 법안이 통과되면 약 3년간 시스템 구축 준비를 거쳐 이르면 오는 2019년부터 시행될 전망이다.

 

전자증권제는 증권의 발행과 유통이 실물이 아닌 전자적 등록을 통해 이뤄지는 제도다. 지금도 증권예탁제도 등을 통해 증권의 실물 이동이 없는 부동화(不動化)나 실물을 인쇄하지 않는 무권화(無券化)가 진전됐으나 전자증권이야말로 실물증권에 따르는 위험과 불편함을 확실히 없앨 수 있는 궁극의 제도라 할 수 있다.

 

전자증권제도가 도입되면 우선 실물증권을 만들거나 교부, 보관하는데 드는 비용을 아낄 수 있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실물증권 제조·교부·보관 등에 따른 운용비로 5년간 누적 2458억원을 절감할 수 있다. 여기에 실물증권의 도난이나 위변조, 신규발행 지연에 따른 금융비용 등을 모두 합하면 총 4352억원의 비용 절감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시간도 절약할 수 있다. 실물증권을 작성 및 교부한다거나 예탁·보관·반환 등에 필요한 시간을 아낄 수 있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발행사가 주식수를 줄이기 위해 주식병합을 한다면 기존 실물증권 발행절차 보다 간편해지기 때문에 최대 21일을 단축할 수 있다. 세계적인 컨설팅회사 부즈엘렌헤밀턴에 따르면 발행사와 금융기관에서 실물증권을 다루는데 필요한 매월 약 31만 시간이 단축될 수 있다.

 

각 금융 주체들도 편해진다. 발행회사는 실물증권 발행 비용 절감과 절차 간소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예탁제도에 비해 주주명부 작성이 간편해져 주주내역을 자주 파악해 경영에 참고할 수도 있다.

 

증권사는 실물증권 관리 비용이 줄어들고, 업무처리 시간 역시 감소된다. 증권의 발행·유통 정보의 적시 확인·가공이 가능해짐에 따라 핀테크 서비스 환경 조성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실물증권 인수도에 따른 위험이 줄기 때문에 다양한 온라인 장외거래 플랫폼이 등장할 수 있다.

 

투자자 입장에선 실물증권 유통으로 발생 가능한 분실·도난이나 위·변조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실물증권 위조와 분실 사례는 최근에도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3억원 규모의 코스닥 상장사 나스미디어 위조주권이 매매 과정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지난 2013년 한해 동안 위조와 분실 등 사고 증권 규모는 주식 525억원 채권 707억원 등 총 1407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전자증권제도는 덴마크에선 이미 32년 전에 세계최초로 도입됐으며,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 가운데 우리나라와 독일, 오스트리아 3곳을 제외한 31개국에서 도입을 완료한 상태다. 국내에서도 한국예탁결제원이 지난 1998년 '증권 무권화 기본계획'을 수립하면서부터 전자증권제도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10년 전부터 제도 도입에 대한 논의가 지속돼 왔다.

 

전자증권제도 시행을 위해 현재 마련된 법안은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지난해 11월 발의한 '증권 등 전자등록에 관한 법률안'과 금융위원회가 지난 6월 입법예고한 정부안 두 가지다. 

 

두 법안 사이의 쟁점으로 꼽히는 것은 전자등록기관의 설립 방식이다. 전자등록기관은 전자적으로 발행된 증권을 관리하는 법적 장부를 작성·관리하고 권리행사 대행 등 전자증권 관련 제반 업무를 수행하는 중심 운영기관이다. 이 기관의 설립을 '허가제'로 하느냐 '특허제'로 하느냐를 놓고 법안이 갈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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