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스토리]황영기와 하영구, 싸움의 끝은?

  • 2017.02.22(수) 15:28

이번엔 신탁업법 공방…증권사 법인 지급결제 논쟁과 유사
양측 절실함에도 밥그릇 싸움 인상…중요한 고민 간과 지적

두 마을이 있습니다. 마을 사이에는 커다란 저수지도 두 개 있습니다. 평소 두 마을엔 비가 자주 내려 각자의 마을에서 가까운 저수지에서 마음껏 물을 끌어다 썼습니다. 하지만 가뭄이 들자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두 마을 모두 평소 잘 쓰지 않던 상대방 저수지에도 물길을 만들겠다고 고을 현령에게 앞다퉈 요청합니다. 현령은 과연 누구의 물길을 내줘야 할지 고민에 빠졌습니다.

 

최근 은행과 금융투자업계 사이의 다툼을 보면서 그려본 이야기입니다. 불과 2주전 증권사 법인지급결제를 둘러싼 이들의 논쟁을 전해드렸는데요. 곧바로 신탁업법 공방으로 이어졌습니다. 없던 것을 갖겠다고 나선 주체는 다르지만 양쪽의 아전인수격 주장은 판박이입니다.

 

 

 

◇ 신탁업 놓고 또다시 격돌

 

지금 금융업계에서는 때아닌 운동장 논쟁이 한창입니다.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이 "증권사들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기를 치르고 있다"고 밝히자 하영구 은행연합회장은 "은행과 증권사가 쓰는 운동장은 종류가 다르다"며 "종합운동장을 만들어 쓰자"고 응수했습니다. 그러자 다시 금투협은 기존에도 종합운동장이 있었는데 제대로 시너지를 못낸 것 아니냐며 발끈합니다.

 

금융투자업계는 운동장 기울기를 바로 잡아 은행이 해온 법인 지급결제를 증권사에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10년전부터 정책적으로 허용 움직임이 일다 은행권 반대로 미뤄졌습니다. 이에 대해 은행은 전세계적으로 증권사의 법인 지급결제망을 허용한 전례가 없으며, 증권사들이 은행업을 영위하는데 따른 리스크를 안게 된다는 주장을 펼칩니다.


반면, 은행은 종합운동장으로 만들어 금융투자업계에만 허락된 불특정금전신탁을 허용해달라고 나섰습니다. 신탁업
은 주식·예금·부동산 등의 자산을 수탁자가 운용하고 관리해주는 서비스인데요.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은행은 고객이 지정한 상품에 투자해 수익을 돌려주는 특정금전신탁만 할 수 있고 운용자가 주식이나 채권 등에 투자해 수익금을 나눠주는 불특정금전신탁은 허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증권사 법인지급결제 허용처럼 나름 사연도 있습니다. 사실 은행이 본래부터 불특정금전신탁을 하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자본시장 활성화를 위해 2004년부터 금지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위원회가 자본시장법에서 신탁업법을 따로 분리해 신탁업을 육성하겠다고 하자 은행업계가 불특정금전신탁도 다시 허용해 달라고 나선 것입니다.

 

하지만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은행들에게 불특정금전신탁을 허용하면 증권사 펀드 상품과 별차이가 없어지면서 자산운용업 근간을 흔들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보수적인 성향의 은행 거래 고객들을 상대로 은행이 자산운용업 등으로 투자업무를 확대할 경우 시스템 리스크가 늘어날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이에 은행은 대형 투자은행(IB)에 종합투자계좌(IMA)를 허용한 마당에 은행에 대해 불특정금전신탁을 배제하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맞섭니다. 양측 모두 일리가 있어 보이긴 하죠.


◇ 각자 전업 권리 주장하고 겸업 허용 원해

 

하지만 결국 각자 내세우는 논리만 놓고 보면 신탁업을 둘러싼 공방도 증권사 법인지급결제망 싸움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입니다. 공교롭게도 은행은 증권사 법인지급결제망 허용 시 증권업계의 시스템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고 주장하고, 금융투자업계는 은행의 불특정금전신탁 허용시 은행들의 리스크가 커진다고 주장합니다. 각자의 역할을 구분하면서도 상대가 누려온 것은 대해서는 이제는 같이 써야 한다는 겁니다. 겸업주의에 입각해 권리를 주장하고 있지만 각자 해왔던 전업만큼은 고수하겠다는 건데요.

 

이처럼 양측의 이율배반적인 모습은 물론 금융당국이 섣불리 어느 한 쪽의 입장을 들어줄 수 없는 상황이란 점도 흡사합니다. 금융당국은 신탁업법 제정에서 불특정금전신탁 논의를 제외한 상태입니다. 증권사 법인지급결제 허용에 관해서는 근 1년이 넘게 입을 닫으면서 허용이 쉽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제3자 입장에선 어떨까요. 당장은 누구의 편을 들기도, 잘잘못을 따지기도 참 애매한 상황입니다. 이러다가는 정말 법원에 달려가야 할지 모르고, 설사 판결이 난다해도 결과를 쉽게 수용할지도 미지수입니다.

 

연초부터 답없는 소모적인 싸움으로 얼룩지다보니 오히려 이런 싸움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를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는 조언이 눈에 띕니다. 금융산업 영업환경 전반이 녹록지 않아진 영향이 큰 것인데요. 잘 나갈 땐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들이 이제는 아쉬워운 상황이 됐기 때문입니다. 은행과 금융투자업계 모두 시장의 파이를 키우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기 위해 가져야 할 유연성보다 기존의 금융권 수익구조 안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니냐는 지적입니다.

 

앞선 저수지 이야기로 돌아가볼까요. 고을의 현령은 어떤 결정을 내려야할까요. 그냥 두 마을 모두에 공평하게 물길을 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현명할까요. 두 마을이 상대방이 썼던 저수지에서 물길을 내지 않고 저수지를 하나 더 같이 만드는 것은 어떨까요. 물론 땅도 필요하고, 돈도 필요할 겁니다. 그런 고민이 고을 현령이 해야할 진짜 고민일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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