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스토리]'갑툭튀' 필립스곡선 논쟁

  • 2017.08.25(금) 17:02

오랜만에 경제 공부 한번 해볼까요. 필립스 곡선(Phillips curve)을 아시나요? "들어는 봤는데 뭐였더라?", "경제 관련 책이나 기사에서 봤던 것 같은데….". 첫 반응은 이쯤 되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필립스 곡선은 영국의 경제학자 필립스(A.W. Phillips)에 의해 발표돼서 필립스 곡선으로 불립니다. 실업률과 화폐임금 상승률 사이에 함수 관계를 나타내는 모델입니다. 좀 더 쉽게 풀자면 실업률과 물가와의 상충관계를 보여주는 곡선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실업률이 낮을수록 물가 상승률이 높고, 물가 상승률이 낮을수록 실업률은 높아지는 관계를 나타냅니다.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서는 물가 상승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인데요. 경제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인플레이션을 감내해야 하고, 물가를 안정시키려면 경제 성장을 희생해야 한다는 것이죠. 필립스 곡선은 완전 고용과 물가 안정이란 두 가지 경제정책 사이의 모순을 지적함으로써 경제 정책 문제 분석에 큰 공헌을 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 필립스 곡선. π는 물가상승률 u는 실업률을 나타냅니다.

 

뜬금없이 필립스 곡선 얘기를 왜 꺼냈나 싶겠지만 대충 눈치채신 분들도 있으실 겁니다. 힌트 키워드를 몇 개 더 드려보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와 금리입니다. 미국 연준은 지난해 말부터 본격적으로 금리를 인상하고 있는데요. 지난해 12월 말부터 올해까지 벌써 3차례나 금리를 올렸습니다. 연내 1회, 내년에는 2~3회의 금리 인상이 추가로 예정돼 있습니다.

 

금리를 올리는 것은 미국의 경제가 그만큼 좋아졌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더 좋아질 것으로 보이면 금리를 계속 올려가는 것이 맞겠죠. 하지만 미국 연준은 물론 전 세계 중앙은행들은 고민에 빠져 있습니다. 경제가 좋아지고는 있지만 물가가 좀처럼 오르지 않고 있어서인데요.

 

미국의 실업률이 사상 최저 수준으로 하락하고 있지만 임금 상승률은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무르면서 필립스 곡선이 맞지 않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동안 실업률 하락에도 물가 상승이 나타나지 않으면서 필립스 곡선은 기존의 우하향 형태를 벗어나 평평해지고 있고 금리 인상 속도는 계속 더딘 상태입니다.

 

필립스 곡선이 유효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자 그간 필립스 곡선을 염두에 두고 금리 정책을 짜온 정책 당국자들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죠. 경제가 회복되는데도 물가가 오르지 않는데 따른 긴축 지연 덕을 톡톡히 본 시장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낮은 물가 덕분에 부릴 수 있었던 여유가 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다 보니 요즘 국내 증권가에서도 필립스 곡선 논쟁을 주의 깊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필립스 곡선에 대한 소고를 적은 리포트들이 속속 나오고 있는 것이 이를 반증합니다.

 

필립스 곡선의 붕괴 또는 기울기 둔화는 실업률이 하락해도 급격한 물가 상승이 나타날 가능성이 제한적임을 뜻한다. 연내 추가 인상 가능성이 존재한다. -신한금융투자

 

(필립스 곡선의 비선형은) 미국 연준이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인플레 압력이 아직 높지 않음에도 정책금리를 인상한 이유가 설명된다. -한화투자증권

 

필립스곡선이 평평해진 것은 일시적일 수 있지만 여러 구조적인 변화로 그렇게 됐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이를테면 인플레이션 자체가 낮아졌고 생산성이 저하되고 핀테크 등의 기술 발전도 영향을 줬다는 것이죠.

 

메리츠종금증권은 슈퍼스타 기업이 필립스곡선을 평평하게 만들었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하기도 했는데요. 점점 더 많은 산업에서 승자가 독식하는 구조가 정착되면서 '슈퍼스타' 기업이 탄생했고 부가 이들에게 집중됐습니다. 이에 따라 대다수의 노동소득 분배율이 하락하면서 임금 상승률을 낮췄고 계속 낮은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있다는 논리입니다. 듣고 보니 그럴듯하죠?

 

당장 명확한 답을 제시하기는 어려워 보이지만 물가가 오르지 않아도 경제가 성장할 수 있다는 새로운 경제이론이 나온다기보다는 결국엔 제자리를 찾게 될 것이란 전망이 아직은 우세한 편입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필립스 곡선의 변화 이면에 숨겨진 투자 기회를 찾는 쪽도 있다는 겁니다. 메리츠종금증권은 과거보다 필립스 곡선이 평탄해졌지만 장기적으로 유효하다고 판단하고 있는데요. 대신 슈퍼스타 기업들의 독과점 체제는 더욱 견고해질 것이라며 이들 기업(아쉽게도 특정 기업을 언급하진 않았습니다)을 매수해볼만하다고 귀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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