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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 워치]'정치적 인정' 확보 가능할까

  • 2018.01.24(수) 09:44

[가상화폐 정의]
이왕휘 아주大 정치외교학과 교수
"화폐의 신용·신뢰 보장하는 장치 필수적
기술결정론의 맹점·인간의 광기 주의해야"

가상화폐를 규제할 것인가? 만약 한다면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가상화폐의 두 가지 측면, 즉 ‘가상’ 기술과 ‘화폐’로서의 기능을 모두 다 고려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가상’ 기술의 발전을 명분으로 규제에 반대하는 입장이 더 우세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가상화폐가 ‘화폐’로 어떤 기능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화폐는 어떤 형태이든 간에 교환 수단, 가치 척도, 가치 저장이라는 세 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다. 2008년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정체불명의 사람이 쓴 논문에서 기원한 비트코인은 세계적으로 다수의 거래소에서 비슷한 시세로 거래되고 있다. 이 사실만 보면 가상화폐는 세 가지 기능을 다 가지고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상화폐가 사기라는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버크셔 헤서웨이 워런 버핏 회장에 따르면, “가치가 얼마나 오를지 말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는 점이 비트코인의 진정한 거품이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 역시 올해 초 후회한다고 했지만 작년에 “비트코인은 사기다. 그 거품은 곧 꺼질 것이고, 여기에 절대 투자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언한 바 있다. 

 

이런 주장의 근거는 거의 대부분의 가상화폐가 세 가지 기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2012년 말 10달러에 불과했던 비트코인의 가치는 2013년부터 폭등하기 시작해서는 2018년 1월 1만1000달러를 상회했다. 이렇게 가격이 크고 빠르게 변하는 화폐는 교환 수단과 가치 척도로서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다. 물론 가격이 계속 오른다는 전망이 있다면 비트코인은 가치 저장을 수단으로 활용될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가격이 폭락한다면 투매가 가속화되어 거래가 급속히 줄어들어, 이 기능마저 무효가 될 것이다. 따라서 지금처럼 가격이 큰 폭으로 계속 변동할 경우, 가상화폐는 화폐라기보다는 ‘카지노(casino) 자본주의’의 투기 수단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가상화폐가 장기적으로 안정적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내는 물론 국제적 차원에서는 정치적 권력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지폐가 법정통화(legal tender)로 부상하는 과정은 근대국가에서 재무부와 중앙은행이라는 경제제도의 성립 과정과 중첩되어 있다.  가상통화는 금과 은 같은 귀금속 화폐는 물론 지폐보다도 액면 가치와 실질 가치의 차이가 훨씬 더 크기 때문에, 화폐에 대한 신용과 신뢰를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가 더욱더 강력해야 한다.

 

▲ 달러화와 파운드화의 법정통화(legal tender) 표시

 

명목가치와 실질가치의 차이는 화폐주조차익(seigniorage)이라는 정치적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국가에서 그 차익은 발권력을 독점하는 중앙은행을 통해 국가 재정으로 귀속된다. 국가가 차익을 독점하는 근거는 재정을 공공의 목적과 이익을 위해서 활용한다는 정치적 정당성에 있다.


현재 가상화폐의 개발자와 채굴자 모두 익명이기 때문에 가상통화의 화폐주조차익을 누가 어떻게 보유하고 분배하는지 정확하게 파악을 할 수 없다. 또한 거의 대부분의 국가에서 막대한 거래 수익을 올리는 투자자와 거래소에 대한 세금도 부과되고 있지 않다. 화폐주조차익과 과세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가상화폐는 법정통화에 필수적인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 없다.

 

가상화폐가 정치적으로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가상화폐 열풍은 단기적으로 고수익을 거두려는 투자(사실상 투기)를 조장하는 단점만을 여실히 노출시켰다. 그러나 핀테크(과학기술과 금융의 결합)의 시각에서 보면, 가상화폐는 금융시장에서 소외된 계층에게 금융 서비스의 접근성 및 이용 기회를 확장하는 포용 금융(inclusive finance)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대다수 가상화폐가 국경을 넘어서서 자유롭게 거래되고 있다는 점에서, 특정한 가상화폐가 기축통화(key currency)로 부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 세계적 차원에서 경제통합이 시작된 19세기 중반 이후 현재까지 기축통화로 인정받는 법정 통화는 금, 영국 스털링 파운드, 미국 달러이다. 귀금속인 금을 제외하면 파운드와 달러는 모두 패권국의 법정통화였다. 따라서 가상통화가 기축통화가 되기 위해서는 패권국의 정치적 지지가 필수적이다. 이런 점에서 현재 패권국인 미국과 향후 패권국으로 평가되는 중국의 정책 방향이 가상화폐의 국제화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현재 미국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나오지 않았지만, 중국은 비트코인 거래소를 폐쇄하는 것은 물론 개인간 거래까지 단속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가상화폐에 대한 논의에서 이익 상충 문제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가상화폐나 블록체인에 연관된 과학기술자나 투자자는 규제를 거의 무조건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미래에 유망한 기술이라는 명분으로 포장된 기술결정론은 '화폐를 만드는 기술이 얼마나, 어떻게 변화하든지 화폐의 속성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다'는 역사적 교훈과 배치된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논리 뒤에 규제가 강화되면 가격 하락으로 손해를 본다는 이해관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영국 조폐국(Royal Mint) 국장 시절인 1720년 ‘사우시 거품’ 사건에서 약 2만 파운드의 손실은 본 아이작 뉴턴은 “나는 천체의 움직임을 계산할 수 있지만 인간의 광기를 계산할 수 없다”(I can calculate the movement of the stars, but not the madness of men)고 한탄한 바 있다. 블록체인과 인공지능(AI)과 같은 새로운 기술이  화폐를 만들고 사용하는 사람의 본성을 변화시키지 않는 한, 뉴턴의 후회는 계속 유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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