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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초대형 IB 닮은 기금형 퇴직연금

  • 2018.02.26(월) 14:53

기금형 퇴직연금 돌연 무산 '운용업계 속앓이'
정권 바뀌고 지지부진 '초대형 IB' 운명과 비슷

"왜 갑자기 무산됐는지 도대체 영문을 모르겠어요. 나름 열심히 준비를 해왔는데 준비가 안됐다고 하니 자산운용사들 입장에서는 그저 허탈할 수밖에 없죠"

 

최근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이 미뤄진 것을 두고 자산운용 업계에서 심심치 않게 나오는 말이다.

 

기금형 퇴직연금은 퇴직연금 적립금을 기금에 신탁해 운용하는 연금이다. 특정 금융회사에 퇴직연금을 통째로 맡기는 기존 계약형과 다르게 노사와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기금운용위원회에서 퇴직연금 운용 방향과 자산 배분을 결정한다.

 

 

정부는 단일 기업형 기금 형태로 이를 도입해 기업들이 계약형과 기금형 중 선택할 수 있도록 허용할 방침이었다. 하지만 올해 초 고용노동부는 관련 법안을 철회하면서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은 없던 일이 돼버렸다.

 

정부가 기금형 퇴직연금을 도입하려 했던 데는 그동안 변변치 못했던 퇴직연금 수익률에 있다. 현재 국내 퇴직연금은 계약형으로 운용되고 있는데 대개 계약형의 경우 사업주가 이를 주도하고 주로 은행과 보험사들이 퇴직연금을 운용하면서 수익률 관리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실제로 지난해 은행의 퇴직연금 확정급여(DB) 형 수익률은 0.91%로 1%에도 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물가 상승률까지 감안하면 마이너스(-) 손실인 셈이다. 수익률 흐름도 2016년 1%대에서도 크게 축소되며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같은 해 국민연금은 4.75%의 수익률을 올린 바 있다.

 

보험 역시 지난해 말 기준 직전 1년 개인형 퇴직연금(IRP) 수익률은 평균 2.32%로 집계됐고 퇴직연금 자금이 몰려있는 대형 보험사들의 경우 대부분 1%대에 머물렀다.

 

이처럼 기대에 미치지 못한 성과로 인해 정부는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을 적극 추진해왔고 자산운용사들도 준비에 열심이었다. 지난해 활발하게 출시한 타깃데이트펀드(TDF) 역시 장기적으로는 이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TDF는 은퇴시점에 맞춰 자산을 자동적으로 배분해 굴려주는 퇴직연금 펀드다.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 후 개인연금에 디폴트 옵션을 도입하는 개인연금법 제정안이 추진되면서 TDF는 대표적인 디폴트 상품으로 주목받았다. 실제로 미국 노동부는 2006년 401(k) 디폴트 옵션 중 하나로 TDF를 지정했고 이후 TDF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국내 자산운용업계에서는 지난해 뒤늦게 TDF 출시 열풍이 불었고 올해도 중소형사를 중심으로 TDF 출시 준비가 활발하게 진행 중이었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해 말까지 공식 석상에서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를 도입해 노후 안전망 사각지대를 없애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 입법안을 마련해 법제처 심사까지 마친 상태였지만 올해 들어 돌연 입법을 철회하며 운용사들만 날벼락을 맞게 됐다.

 

이에 대해 정부는 명확한 이유 없이 준비가 부족하다는 식의 답변만을 주고 있다. 자산운용업계로서는 그동안 준비를 많이 해왔는데 계속 부족하다고 하니 할 말이 없다는 입장이다.

 

위험자산 편입에 대한 위험성을 우려했다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시장 전문가들은 장기적인 자산 배분 펀드야말로 충분히 변동성을 줄이면서 지금보다 높은 중수익을 추구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과거 금융위기를 겪었지만 2000년 초반부터 자산 배분 펀드를 통해 꾸준히 자금을 불입했을 경우 연 5%대의 수익률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분석도 있다. 이런 주장을 뒤로 한 채 투자자들로서는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으로 새롭게 열릴 수 있는 투자 기회를 송두리째 잃게 됐다.

 

일각에서는 은행이나 보험 등 기존 연금사업자들의 기득권을 의식한 조치가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기금형 퇴직연금과 초대형 투자은행(IB)이 닮은꼴이라는 지적도 있다. 리스크만 상대적으로 더 부각하거나 전 정권에서 추진된 탓에 진행이 지지부진하다는 점에서다. 정부가 진정으로 근로자를 위하고 금융 발전을 바란다면 이런 문제 제기에 설득력 있는 해답을 내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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