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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한국은 왜 주식보다 부동산인가

  • 2018.09.12(수) 15:33


요즘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빠지지 않는 대화 주제는 부동산이다. 서울에선 강남뿐 아니라 '노도강(노원·도봉·강북)'까지 가격이 치솟았으니 너도나도 부동산 얘기뿐이다. 주택이 있는 사람은 있는 사람대로 신이 나서, 없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박탈감과 추격 매수를 위한 대화를 시도한다.

여의도 증권가도 다를 바 없다. 여의도의 식당이나 카페를 둘러보면 이쪽 테이블도 저쪽 테이블도 부동산 얘기로 한창이다. 주식, 채권, 펀드 등 금융상품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도 현실은 부동산을 쫓는 형국이다.

증권업계에 오래 몸을 담은 일부 증권맨은 부동산 제국이 된 우리나라의 현실이 안타깝다는 말을 자주 하곤 한다. 우리나라만 유독 자산의 대부분을 부동산에 '몰방'하고 부동산의 노예로 살아간다며, 장기로 보면 주식이 더 올랐는데 우리나라 국민들은 단단히 착각하고 있다고 아쉬움을 토로한다.

맞다. 내 주변을 둘러봐도 많은 사람이 부동산이 자산 대부분을 차지한다. 미국처럼 자본시장이 오랜 시간에 걸쳐 발달한 국가는 개인 자산에서 주식의 비중이 크지만, 우리나라는 자본시장 성숙도가 아직 미약하고 여전히 금융 시장은 은행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어 실물 자산의 비중이 크다.

이런 현상은 단순히 자본시장이 발전하지 않아서, 혹은 국민들이 아직 자본시장을 몰라서일까. 과연 부동산 시장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 탓일까. 둘 다 아니다. 문제는 자본시장의 신뢰다.

최근 30년 동안 코스피와 부동산 시장은 함께 올랐다. 누가 더 수익률이 높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또 어떤 투자 대상이든 상승장과 하락장은 존재하기 마련이기 때문에 특정 시장이 항상 좋다고 평가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 국민이 항상 주식시장을 멀리했던 것은 아니다. 언젠가는 많은 국민이 주식시장에 관심을 가졌던 때가 있었고, 또 언젠가는 펀드 열풍이 불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자본시장의 변동성이 시장 전체의 신뢰를 무너뜨렸다. '물 반, 고기 반'이라며 어떤 종목을 사도 오른다고 했을 때가 있었지만 IT 버블과 함께 투자자들의 꿈은 산산조각 났고, 펀드에 가입하면 수십에서 백 퍼센트까지의 수익률을 볼 수 있다고 해서 너도나도 가입했다가 금융위기로 마이너스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기도 했다.

부동산은 가격이 하락하더라도 물건을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는 회복할 것이란 믿음이 있고, 하락기에도 임대소득을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주식시장은 내가 가진 종목이 상장 폐지돼 휴짓조각이 되기도 하고, 내가 가입한 펀드가 마이너스의 굴레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오랜 시간 지나면서 소수 펀드로 방치되기도 했다.

주식이나 펀드는 꾸준히 오랜시간 투자하다 보면 수익이 나기 때문에 장기로 투자해 노후에 찾아 써야 한다고 하지만, 언제든지 찾아쓸 수 있는 '목돈'에 집착하는 우리 국민들에게는 어쩌면 어울리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물론 부동산의 환금성이 가장 안 좋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 국민의 자산 관리에서 환금성이 가장 떨어졌던 것은 주식과 펀드였다.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마이너스의 굴레에 빠져 내가 원치 않는 장기 투자를 해야만 했고, 돈이 필요해도 손실을 보고는 나올 수 없어 묵혀둬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들이 쌓여 하나둘 자본시장으로부터 등을 돌렸고, 이제 회복하기엔 그만큼 많은 시간이 필요하게 됐다. 누군가 죽으면서 자식에게 '너는 절대 주식을 하지 말아라'라고 했다고 한다. 그것이 과연 개인의 무지함으로 치부할 일일까.

금융투자업계에서도 우리나라에서의 자본시장의 입지와 국민들의 자본시장 무지만을 탓할 것이 아니라, 시장의 건전성 확보와 시장 변동성에 대한 위기관리에 더 철저히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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