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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컬처]망하길 기다리는 사람들

  • 2019.04.04(목) 14:58

영화 '빅 쇼트'·'국가 부도의 날'
위기에 투자하는 역 베팅 투자

드라마, 영화, 뮤지컬, 도서, 동영상 콘텐츠 등 문화 속 다양한 경제 이야기를 들여다봅니다. 콘텐츠 속에 나오는 경제 현상이 현실에도 실제 존재하는지, 어떤 원리가 숨어있는지 궁금하셨죠. 쉽고 재미있게 풀어드리겠습니다. [편집자]

작년 말 금융맨들 사이에서 한참 화두가 된 영화가 있습니다. 1997년 한국의 IMF 경제위기 당시를 묘사한 '국가부도의 날'인데요.

당시 급박한 상황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와, 같은 위기를 다르게 대처한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함께 보여주면서 극적인 요소를 늘려 그 시대를 겪은 40~50대에게는 기억에 남을 만한 영화로 꼽히기도 합니다.

특히 배우 김혜수, 유아인, 허준호 씨의 연기가 돋보이면서 인물들의 심리 상태가 잘 드러났다는 평을 받았죠. 그중에서도 윤정학(유아인 분)의 심리 변화가 인상 깊었습니다.

윤정학은 잘 나가는 종합금융회사에 다니는 금융맨이었는데요. 곳곳에서 감지되는 위기의 시그널을 포착하고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국가 부도라는 위기에 투자하는 역 베팅을 결심해 투자자들을 모읍니다.

"저는 일주일 안에 대한민국이 망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부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고 있지 않습니다. 저는 그 무지와 무능에 투자하려고 합니다. 위기가 기회입니다."

그동안 윤정학을 믿고 투자했던 투자자들이 모였지만, 이 말을 듣고 모두 허황된 말이라 생각하며 자리를 뜨고 맙니다. 하지만 두 사람만이 윤정학을 믿고 베팅하기로 하죠. 그리고 정말 국가부도의 위기가 찾아와 그들은 떼돈을 벌게 됩니다.

영화 '국가부도의날' 포스터

대체 국가가 망하는데, 어떻게 베팅을 해서 돈을 벌었다는 걸까요?

우리나라는 1970~1980년대 본격적인 경제개발이 시작됐지만 무역수지는 계속 적자였습니다. 수출이 늘어도 원자재 수입 비중이 크다 보니 적자가 날 수밖에 없는 거죠. 여기에 1990년대에는 금융시장 개방으로 금융기관이 외국자본을 빌려 기업이 발행한 어음을 사들입니다. 이래저래 외화 부채가 쌓였죠.

외화부채가 늘어나면서 위기를 직감한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 투자를 중단하고 빌려준 자본을 거둬들이기 시작합니다. 외국 자본이 빠져나가면서 기업들이 줄부도에 이르고, 원화 가치가 하락하는 것을 외환보유고를 동원해 막아봤지만 결국 대한민국은 부도 위기에 봉착합니다.

영화에서 윤정학은 무분별한 대출과 붕괴 신호를 감지하고 달러를 사들입니다. 결국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환율이 급등할 것으로 예상해서 역 베팅을 한 것이지요.

예상은 정확했습니다. 당시 1000원 안팎이었던 원달러환율이 1900원대까지 오르면서 단숨에 2배 가까이 폭등하게 됩니다. 이때 미리 사둔 달러를 팔아 차익을 얻은 거죠.

또 기업과 가계의 부도로 폭락한 부동산을 대거 매입해 부동산 자산을 늘리기도 합니다.

오렌지(류덕환 분) "저길 봐 나라가 진짜 망하고 있어 우린 이제 부자가 될 거야"
윤정학 (유아인 분) "내 앞에서 딱 두 가지는 하지 마라. 반말하지 말고 돈 벌었다고 좋아하지 말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거액의 자산을 얻게 됐지만, 윤정학은 국가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고뇌에 빠집니다. 인간적인 면을 볼 수 있는 부분이죠. 근데 이 장면에서 교묘하게 영화 '빅쇼트'의 장면이 오버랩됩니다.

벤 리커트(브래드 피트 분) "우린 지금 미국 국민들이 망하는 데 베팅한 거야. 춤 추지 마."

빅쇼트는 2008년 금융위기를 그린 미국 영화인데요. 44만명의 관객 수를 기록하긴 했지만, 어려운 경제 용어와 원리를 설명하다 보니 대중들이 다가가기는 어려웠다는 평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2008년 금융위기를 이처럼 잘 설명할 순 없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빅쇼트' 스틸이미지

영화 제목부터 경제 용어로 시작하죠. 빅쇼트(Big Short)에서 쇼트(Short)는 하락을 예상하고 주식이나 채권을 가지지 않는 상태에서 매도 주문을 내는 공매도를 뜻합니다. 가치가 하락하는 쪽에 집중 투자 하는 전략이죠.
 
이들이 공매도한 것은 주택저당증권(MBS)과 부채담보부증권(CDO) 인데요. 용어만 들어도 머리가 아프죠? 쉽게 말하면 MBS는 주택담보대출을 기초 자산으로 하는 채권입니다. 근데 당시 미국에서는 주로 신용등급이 낮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MBS를 대거 발행했고요.

CDO는 그중에서도 팔리지 않은 MBS를 묶어 담보로 발행한 새로운 채권입니다. 신용등급이 낮아 팔리지 않는 상품들을 묶어 하나의 상품으로 만들고 높은 신용등급을 부여했으니, 극 중 투자자들은 '쓰레기' 상품으로 평가하죠.

그래서 마이클 버리(크리스찬 베일 분)는 부채 위험을 감지하고 MBS와 CDO를 공매도하기 위해 신용부도스와프(CDS)를 만들어 대규모로 투자합니다. 평소 MBS와 CDS의 신용위험에 대한 프리미엄을 지불하고 부도가 나면 손실을 보장받는 상품인 거죠.

당시 은행들은 담보도 신용도 없이 무분별한 대출이 만행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미상환액이 늘어 결국 담보대출을 기초자산으로 한 상품들이 줄지어 무너지게 된 겁니다. 또 주택 가격마저 폭락하면서 담보 상환도 불가능하게 됐죠.

'돈 버는 사람은 따로 있다'고 하죠. 국가 부도의 위기에도 미리 위기를 감지하고 역발상 빅쇼트를 통해 성공한 사람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들이 겪는 인간적인 고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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