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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人워치]"'퇴직연금=TDF' 고정관념은 'No'"

  • 2019.11.28(목) 17:34

지철원 트러스톤자산운용 연금포럼 이사 인터뷰
"30~40년 논스탑 적립 가정한 TDF 너무 이상적"
"DB→DC로 중간에 옮기면 수익률 저하될 우려"

퇴직연금의 역할은 커져만 간다. 초고령화 전환이 가파르게 이뤄지고 국민연금 적립금 고갈 우려가 끊이지 않는다. 민간 재원인 퇴직연금 적립금은 작년 말 기준 190조원 규모에서 10년 내 400조원 가량으로 커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중요한 사회적 자본으로 떠오르고 있다.

문제는 수익률이다.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를 생각하면 수익률이 1%만 올라도 수백억 단위로 적립금 차이가 벌어진다. 현재 퇴직연금 연 수익률은 대체로 2%가 채 안 되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정부가 범부처 차원에서 퇴직연금제도 개선안을 발표한 이유다. 디폴트옵션 도입이 대표적이다.

디폴트옵션은 퇴직연금 가입자가 별도 운용 지시를 내리지 않는 경우 사전에 설정해 놓은 투자 상품에 자동적으로 가입케 한 제도다. 현재 국회에 관련 법안이 계류돼 있다. 법안이 통과된다고 제도가 완성되는 건 아니다. 디폴트옵션을 도입한 이후 어떤 투자 상품을 적정 상품으로 선정할지가 관건이다.

금융투자업계가 주목하는 상품은 단연 TDF(Target Date Fund·생애주기펀드)다. TDF는 사전에 설정한 생애주기곡선에 맞춰 위험자산과 안전자산 비중을 바꿔가며 안정적 수익 창출을 노린다. 최근 3년 새 국내 주요 운용사들은 집중적으로 TDF 상품을 내놓고 있다. 마케팅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한 결과 '적정상품=TDF'라는 인식이 어느정도 성립된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TDF가 과연 적정상품으로 어울리는지 여부다. 지난 22일 만난 지철원 트러스톤자산운용 연금포럼 연구위원(이사)은 TDF가 사람이 살면서 만나는 사고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점을 꼬집었다. 대형사 위주의 시장이 편성되는 점도 경계했다.

지 연구위원은 금융투자업계에서 손꼽히는 자산관리 생애설계 전문가다. 연세대 졸업 후 Pvalue 자산관리와 미래와금융 등을 거쳤다. 지방행정연수원 베스트강사로 선정되는가 하면 투자교육협회 금융투자산업발전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사진=이돈섭 기자/dslee@]
살면서 무슨일 생길지 몰라…"TDF 너무 이상적"

우리나라에서 공무원을 제외하고 은퇴할 때까지 직장 생활을 한 번도 쉬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최근 통계청 자료를 보면 민간기업에서 일하는 근로자의 절반 이상은 직장 한 곳에서 근속년수 5년을 못 채운다. 지 연구위원은 현실을 감안할 때 40여년간 꾸준히 적립식 투자를 하는 게 가능할지 묻는다.

퇴직연금은 확정급여(DB)형과 DC형으로 나뉜다. 외부 금융기관에 일정금액을 꾸준히 적립해 퇴직급여를 조성한다는 점은 같지만 운용 주체가 각각 기업과 개인이라는 점은 다르다. 작년 말 기준 DB형과 DC형 비율은 7:3 수준이었다. 8년 후에는 DC형 비중이 늘어 5:5 가량으로 바뀔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TDF의 주요 타깃 투자자는 DC형 퇴직연금 가입자다. TDF가 디폴트옵션 적정상품으로 선정되고 DC형 비중이 늘면 TDF 재원이 대폭 확대한다. TDF는 글로벌 자산배분 전략을 기초로 적립식 투자 효과를 극대화한 상품이다. 적립금만 꾸준히 쌓을 수 있다면 수익률 안정성 측면에서 손색이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문제는 사람이 살면서 앞날을 예상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지 연구위원은 "이직이나 사고 등 인생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져 적립금을 쌓을 수 없을 때를 생각해야 한다"며 "TDF 특징은 초기 적립금이 쌓이면서 생기는 복리효과를 주식투자 등을 통해 극대화하는데 조건이 충족되지 못하면 실적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TDF는 최초에 설정한 생애주기곡선에 맞춰 운용하면 되기 때문에 운용사 입장에서는 편한 것이 사실"이라며 "글로벌 자산배분 전략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해외 펀드에 재투자하는 펀드가 많아 수수료가 높은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 수익률 1% 차이가 복리로 쌓이면 나중에 상당한 실적 차이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사진=이돈섭 기자/dslee@]
[사진=이돈섭 기자/dslee@]
"혁신기업 성장에도 불리" 목소리도

디폴트옵션 적정상품으로 TDF를 설정한 상태에서 회사가 DB형을 DC형으로 전환하는 경우도 문제가 될 수 있다. TDF는 적립 투자를 통해 투자 위험 요소를 줄여주는 효과를 노린 투자 상품이다. DB형을 DC형으로 바꿀 경우 회사가 쌓아둔 목돈이 개인 계좌로 이동하면서 초기 적립 투자 효과가 대폭 상쇄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 연구위원은 "DC형 전환 이후 추가 적립을 한다고 해도 투자 금액이 일정 이상 수준으로 올라가면 적립 효과는 사라진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증명됐다"고 소개하며 "아무리 DC형 퇴직연금 운용주체가 투자자 개인이라 하더라도 운용 결과에 대한 책임 공방 소지가 사라진다고 말하기 힘들 것"이라고 꼬집었다.

TDF가 글로벌 자산배분 전략을 삼고 있는 점도 국내 자본시장 입장에서는 썩 반갑지 않을 것이란 설명도 덧붙였다. 퇴직연금 자본이 국내 자산보다는 해외 자산으로 투입될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펀드매니저가 하는 일이 지금 별거 아닌 것처럼 보여도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기업을 발굴하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는 지적이다.

지 연구위원은 "퇴직연금 시장 발전을 위해서는 운용사 역량이 중요한데,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시장 내 공정한 경쟁이 이뤄져야 한다"며 "현실적으로 TDF를 운용할 수 있는 운용사가 대형사밖에 없는데 운용규모와 회사크기 등을 보고 투자를 결정할 것이 아니라 운용사가 가진 투자 철학에 주목해 사회 자본을 운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러스톤자산운용의 운용규모(AUM, 설정원본+계약금액)는 27일 기준 7조188억원이다. 지난해 별도기준 당기순이익은 전년(17억원)대비 대폭 감소한 6억원 가량을 기록했다. 현재 약 2240억원 가량의 퇴직연금 재원을 운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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