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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폴트옵션 시대]②'과연 잘 작동할까'...우려하는 업계

  • 2022.07.15(금) 06:11

구체적인 심사 기준은 위원회 수립 이후
계열사 판매규정 부재, 수익률 훼손 우려
당국 "과거 수익률, 운용 안정성 살펴볼 것"

금융투자업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퇴직연금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이 도입됐다. 시장에선 디폴트옵션이 퇴직연금의 성과 개선과 더불어 주식시장의 불안정한 수급 상황을 타개해 줄 구원투수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반면 일각에선 퇴직연금사업자가 디폴트옵션 상품을 계열사 위주로 밀어주면서 제도의 의미를 퇴색시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디폴트옵션을 둘러싼 기대와 우려의 시선을 짚어보고 향후 업계와 시장에 미칠 영향에 대해 분석해 보고자 한다.[편집자]

근로자가 퇴직연금 운용방법을 사전에 지정하도록 하는 디폴트옵션 제도가 시행된 가운데 금융투자업계에선 우려 섞인 반응도 적잖다. 늑장 가이드라인에 이어 상품 정의와 심사기준에 대한 안내가 부실하다는 불만이 여기저기서 속출하고 있다.

여기에 계열사 펀드 판매 비중 제한이 빠진 점도 도마에 올랐다. 퇴직연금사업자가 같은 금융그룹 내 저축은행이나 자산운용사가 출시한 상품으로만 포트폴리오를 제시하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자칫 증권, 보험, 은행을 낀 자산운용사의 독식 구조가 형성되는 것은 물론, 퇴직연금 수익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그래픽=유상연 기자 prtsy201@

고용부에 심사 기준 문의 쇄도

1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다음달 디폴트옵션 심의위원회를 꾸려 적격상품 심의기준을 수립하고 10월 중 승인 여부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사업자들은 심사를 통과한 상품만 회사에 디폴트옵션 포트폴리오로 제시할 수 있다. 원리금 보장상품과 타깃데이트펀드(TDF), 밸런스펀드(BF), 스테이블밸류펀드(SVF), 사회간접자본펀드(SOC)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100% 구성할 수 있고, 이들을 3개 이하로 혼합한 상품도 가능하다.

시장에서는 연말이 돼서야 실제 판매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당초 지난 5월 가이드라인이 나올 것으로 예상됐으나 일정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시행 12일 전인 지난달 30일에서야 퇴직연금사업자들에 FAQ(자주 묻는 질문)가 배포됐다.

이후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의결됐지만 자산운용사들은 여전히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 TDF를 제외한 나머지 카테고리는 평소에 쓰지 않았던 개념이기 때문에 기존 펀드를 재분류하는데 골머리를 앓는다는 것이다.

한 금투업계 관계자는 "밸런스펀드는 말 그대로 자산배분형 펀드를 모두 아우르는데, 각 사마다 다른 이름을 써왔기 때문에 리모델링 작업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고용부에 밸런스펀드의 정확한 정의에 대해 알려달라고 요청했지만 돌아온 답은 일단 신청을 하라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고용부는 운용계획서에 필요한 내용은 이미 시행령에 명시돼 있다는 입장이다. 또 구체적인 심의 원칙은 심의위원회가 꾸려진 뒤 확정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심의위원회는 고용부 차관을 비롯해 관련 정부위원과 민간전문가들로 구성된다.

고용부 관계자는 "사업자들로부터 문의가 들어오고 있지만 위원회가 만들어지기 전에 승인 여부를 딱 잘라 말할 순 없다"며 "다음달 위원회가 구성된 후 심의 기준을 의결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계열사 상품비중 제한 부재...수익률 훼손 우려

업계 관계자들이 지적하는 또 다른 문제는 사업자가 디폴트옵션 라인업을 모두 계열사 상품으로 꾸리더라도 아무런 제한을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A 증권사가 같은 금융그룹의 A 자산운용이 출시한 상품으로만 구성할 수도 있다. 

운용업계에서는 계열사 밀어주기를 우려하고 있다. 또 다른 운용사 관계자는 "같은 TDF 상품도 운용사별로 수익률이 2배 넘게 차이가 나는 경우가 있는데, 현실적으로 판매사들이 수익률만 정량평가해 상품을 꾸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경쟁사의 TDF 달랑 하나만 넣어 디폴트옵션 적격상품으로 판매하긴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25%룰'의 효용성도 의심된다. 금융당국은 은행, 증권, 보험 등이 판매하는 전체 펀드 중 계열사 상품이 25%를 넘기지 않도록 규제하고 있다. 이는 디폴트옵션에도 적용된다. 그러나 연간 기준으로 제재하기 때문에 중간에 상한선을 넘겨도 되고, 만일 연말에 25%를 넘더라도 1억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될 뿐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이 규정을 지키지 않더라도 징계를 받지 않기 때문에 과태료를 물고 강행할 여지도 있다"고 귀띔했다. 

방치된 퇴직연금의 수익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디폴트옵션 도입 취지와는 반대로 오히려 퇴직연금 수익률을 깎아먹을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도 나온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제도 시행에 대해 우려가 큰 상황에서 결국 상품을 선정해 풀(pool)을 구성하는 퇴직연금 사업자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며 "사업자는 신의성실하게 상품을 선정하고 제시할 의무가 있는데, 판매 비중 제한이 없다면 이 의무가 지켜지지 않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한 운용업계 관계자는 "눈치를 보면서 수익률 좋은 TDF 상품에 계열사 TDF를 섞을 수도 있다"며 "이렇게 섞으면 포트폴리오에 노출되는 펀드가 20개 이상으로 늘어나고, 운용사별로 투자철학이 담긴 글라이드 패스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된다"고 지적했다. 여러 자산으로 구성된 TDF는 상품 특성상 100% 비중으로 굴리는 게 수익률 측면에서 유리하지만 계열사 펀드를 무리하게 편입하다가 오히려 수익률을 저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국에선 이와 관련해 심사기준에 수익률을 포함할 계획인 만큼 업계가 제기하는 우려를 불식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금융위 관계자는 "심사 시 과거 벤치마크 대비 수익률과 안정적으로 운용될 수 있을지가 중요한 포인트"라고 설명했다. 과거 수익률이 좋지 않은데도 계열사라는 이유로 포트폴리오에 편입한다면 심의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한국형 디폴트옵션이 정착하고 나서 규제 도입을 고려해 볼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디폴트옵션을 먼저 도입한 해외에서도 계열사 펀드 판매 비중에 대한 규제가 부재한 상황이기 때문에 규제 도입 여부는 앞으로 두고 볼 필요가 있다"며 "당국은 상황을 모니터링하면서 심사기준에 판매 비중 관련 내용을 넣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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