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투자증권이 2억4000만달러(약 3400억원) 규모의 해외 인수 거래 클로징을 앞두고 있다. 자기자본을 투자해 직접 투자자로 나서는 게 아닌 인수금융 조달 구조를 설계하고 글로벌 투자자를 연결하는 자문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한화투자증권 투자은행(IB) 부문에서 직접 투자 뿐만 아니라 딜 구조 설계·금융주선 역량을 강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한화투자증권은 최근 코스닥 상장 우주항공 특수합금 업체 스피어의 인도네시아 ENC(Excelsior Nickel Cobalt) 니켈 제련 프로젝트 지분 10% 인수 자문을 진행했다. 전체 거래 규모는 2억4000만달러로 이중 90%인 2억1000만달러를 한화투자증권이 글로벌 투자자와 연계해 조달한 인수금융으로 구성했다.
현재 거래는 클로징(잔금 납입)을 앞두고 있다. 해당 거래를 주도한 정창화 한화투자증권 투자금융1팀 팀장은 "인수금융 대출 약정은 이미 모두 체결됐고, 조속한 시일내 자금 인출이 이뤄지면 대금 100% 지급으로 딜은 완전 클로징 상태가 된다"고 말했다.
이번 거래의 인수 주체는 스피어이지만, 한화투자증권이 딜 구조 설계와 인수금융 조달 구조 설계, 매도인과의 협의를 포함해 전반적인 자문 역할을 수행했다.'인수금융 90%, 매도자 보증' 전략적 구조 설계
한화투자증권이 설계한 인수금융 구조는 전체 거래금액의 90% 수준으로, 글로벌 시장에서도 보기 드문 사례다. 전체 거래 규모 2억4000만 달러 가운데 3000만달러만 스피어의 자체 자금 조달이고, 인수금융이 2억1000만 달러에 달한다. ENC 제련소의 기존 주주인 NIC가 인수금융에 대해 지급보증을 제공한 것도 이례적이다. 집을 파는 사람이, 사는 사람이 받은 대출의 90%에 대해 사실상 보증을 선 셈이다.
정창화 한화투자증권 투자금융1팀 팀장은 "이런 인수금융 구조는 한국에서도, 전 세계적으로도 거의 사례가 없다"며 "딜 규모는 2억4000만 달러인데 스피어의 연 매출이 1000억원, 영업이익이 100억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 회사라 더 주목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추가로 한화투자증권은 스피어가 자제 자금으로 부담해야 할 3000만 달러도 즉시 납부하지 않는 방식으로 초기 설계했다. 스피어가 즉시 납부할 자금 여력이 부족하자 대금을 올해 6월까지 분할 납부하는 구조를 매도인 측에 제안한 것이다.
이후 스피어 주가가 단기간에 급등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스피어는 담보로 제공했던 자사주 180만주를 올해 1월 매각해 약 300억원을 조달했고, 이에 따라 당초 6개월로 계획됐던 자체 자금 부담분을 1개월 만에 전액 상환했다.딜 성공 배경엔 '스페이스X 공급망'
이처럼 이례적인 구조의 거래가 가능했던 배경에는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우주항공기업 스페이스X라는 확실한 수요처가 자리하고 있다. 스페이스X는 로켓 엔진에 들어가는 특수합금 생산을 위해 주요 원재료인 니켈을 장기적이고 안정적으로 확보할 필요가 있었고, 그 방안으로 제련소 지분 인수 구조를 검토했다.
정창화 팀장은 "이 딜은 원래 스피어가 가져온 거래가 아니라 스페이스X가 먼저 검토하던 딜"이라며 "다만 미·중 갈등과 정치적 변수로 스페이스X가 중국 기업과 직접 거래하는 데 부담을 느끼면서, 스피어가 유사한 조건으로 진행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피어는 스페이스X에 특수합금을 공급하는 국내 중소기업으로 10년 장기 공급 계약을 맺고 있다. 스피어가 제련소 지분을 확보하면 해당 지분만큼 니켈을 장기공급계약(오프테이크) 방식으로 장기 확보할 수 있다. 재무적 투자라기보다 니켈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의 거래인 셈이다.
정 팀장은 "매도인 입장에서는 니켈 산업을 키울 수 있는 장기 파트너라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구조였다"며 "지난해 12월 말에 칭산그룹 회장을 직접 만나 장기 수요처로서의 스피어와 스페이스X의 역할을 설명했고, 그 전략적 접근이 받아들여졌다"고 부연했다.
이번 거래는 단기간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정 팀장은 "딜 구조 설계부터 인수금융 조달, 매도인 협의까지 약 9개월이 걸렸다"고 말했다.
구조 설계 역량…IB 실적 개선 청신호
이번 거래는 한화투자증권 IB 부문 역량이 직접 투자 외에도 구조 설계와 금융 주선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정 팀장은 "기존에는 저희가 직접 인수한 뒤 셀다운하는 방식이었는데, 이제는 자기자본을 쓰지 않더라도 산업을 키울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 더 흥미롭다"고 말했다. 회사 자금을 묶지 않으면서도 딜 구조 설계와 금융 주선을 통해 수수료 수익을 낼 수 있는 것이다.
한화투자증권은 이번 딜 처럼 앞으로도 중소기업의 해외 M&A를 지원하는 데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정 팀장은 "'생산적 금융'이라는 테마가 다시 부각되고 있다"며 "스피어 같은 중소기업이 해외 진출을 할 때 매물을 찾아주고, 자금 조달 구조를 설계하고, 인수금융을 주선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언급했다.
한화투자증권은 실제로 현재 중동 지역 발전기 업체 M&A 건을 검토 중이다. 국내 전략적 투자자(SI)를 연결하고 해외 인수금융을 조달하는 구조다. M&A 비딩 단계부터 참여해 전체 거래 구조를 짜는 방식이다. 정 팀장은 "이런 회사들을 계속 발굴하고, 성장 과정의 다음 단계까지 함께 가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한화투자증권 IB 부문의 실적 개선세는 이같은 사업 역량 강화와 무관하지 않다. 한화투자증권 IB 부문은 2022년 854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다만 2023년에는 82억원의 영업손실로 전환했고, 2024년에는 손실 규모가 557억원까지 확대됐다. 당시 부동산PF 시장 우려가 커지면서 인수·주선은 물론 M&A 등 전반에서 수수료 수익이 줄어든 영향이 컸다.
하지만 지난해 성장 흐름을 탔다. 지난해 3분기 누적 기준 IB 부문 순영업수익은 926억원, 영업이익은 535억원을 기록했다. 아직 4분기 세부 실적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호실적이 예상된다. 이에 따라 연간 실적도 전년 대비 큰 성장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한화투자증권 관계자는 "IB부문은 기업금융과 인수금융 비즈니스를 확대해 투자 구조와 수익원을 다변화하며 실적을 개선했다"며 "동시에 부동산금융 리스크 관리를 강화해 충당금 부담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