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학개미의 국내시장 복귀계좌(RIA)로 증권가가 떠들썩하다. 증권사별로 계좌 개설만 해도 커피쿠폰이나 투자지원금을 주는 등 고객 유치 이벤트를 펼치면서 2주의 단기간에 9만개가 넘는 신규 계좌가 개설됐다. 증권사들은 타사의 해외주식을 옮겨와서 RIA에 입고하면 더 큰 지원금과 혜택을 주는 등 경쟁을 키우고 있다.
지난 3일에는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증권사를 직접 방문해 RIA계좌 현황을 점검하기도 했다. 이날 NH투자증권을 찾은 구 부총리는 현장에서 자신의 RIA계좌도 직접 개설하면서 "금융현장에서 상품안내와 홍보에 적극적인 역할을 해달라"고 적극적인 홍보를 당부했다. 금융감독당국 책임자가 아닌 경제부총리가 정책점검차 증권사를 찾아와 증권계좌를 공개적으로 개설하고 홍보한 것도 이례적인 일이다.

요란하긴 한데, 수레가 비었다
부총리까지 나서서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RIA계좌가 정책목적을 제대로 달성하고 있는가에는 아직 물음표가 따른다. RIA계좌는 정부가 지난해말 환율방어책으로 서학개미의 해외투자금을 국내로 돌리기 위해 양도소득세 혜택이라는 당근을 주며 내 놓은 방안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2일 기준 RIA계좌는 23개 증권사에서 총 9만1923개가 만들어졌다. RIA계좌 내 전체 누적 잔고는 4826억원이다.
계좌 개설의 수만 보면 제법 관심을 끄는데 성공한 것 같은데, 문제는 실속이다. 총 9만1923개 계좌에 누적잔고가 4826억원이면 계좌 1개당 평균잔고는 약 525만원이다.
RIA에는 해외주식을 최대 5000만원어치 입고해 팔고, 그 돈으로 국내주식 등을 매수해 1년간 보유하면 해외주식을 팔 때 부담할 양도소득세 감면혜택을 준다.
단순하게 계산해 해외주식 525만원어치를 입고했다면 양도차익이 아무리 커도 500만원을 넘기는 어렵다. 25만원에 매수한 미국주식이 525만원으로 올라 있다면 최대 500만원 양도차익이 생긴다. 지금 개설된 RIA에서는 사실상 감면받을 양도차익이 거의 없다는 뜻이거나 일부 소수의 투자자만 혜택을 받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실제로 양도세 혜택을 누리려는 서학개미라면 해외주식을 500만원어치만 입고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양도세 혜택을 기대하기보다는 증권사별로 제공하는 계좌개설 이벤트 혜택만 챙긴 이른바 '체리피커' 개설자가 적지 않은 셈이다.
전체 누적잔고 4826억원, 약 5000억원이 모두 RIA내 1인당 해외주식 매도(입고)한도액 5000만원을 가득 채운 서학개미의 잔고라고 가정하면, 국내주식에 복귀해 양도세 혜택을 챙길 실속있는 서학개미의 계좌는 1만개에 그친다는 계산도 나온다.
계좌개설의 인기가 벌써 시들하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RIA의 하루 가입계좌수는 첫날인 지난달 23일 1만7965개가 최고치였고, 날이 갈수록 그 수가 줄었다. 27일에는 8203개, 31일에는 3983개까지 줄었다. 5월말까지 개설하면 100% 감면혜택을 주기 때문에 사실상 남은 시간이 많진 않다.
작년 12월 23일 해외주식 보유자 얼마나 돌아올까
RIA계좌에서 양도세 혜택을 받으려면 2025년 12월 23일에도 보유하고 있던 해외주식을 입고해야한다. 정책 발표일을 기준으로 그 이전의 해외주식 보유자에만 혜택을 주겠다는 제한요건이다. 12월 24일 이후에 보유한 해외주식은 RIA계좌에 입고해도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한다.
지난해 12월23일에 개인들이 보유중인 해외주식은 얼마나 줄었을까.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2025년 12월 23일 기준 외화증권 보관금액은 미국주식 1685억달러를 포함해 2299억달러다.
RIA계좌가 만들어진 2주 뒤인 지난 4월 2일 외화증권 보관금액은 미국주식 1553억달러를 포함한 2122억달러다. 지난해 12월 23일보다 미국주식으로는 132억달러, 전체 외화증권 보관액은 178억달러 줄었다.
하지만 이렇게 줄어든 해외주식은 RIA계좌와는 연결고리가 약하다. 2일 기준 전체 RIA계좌 누적잔고 4826억원은 현재 환율(6일 1504원) 기준 3억2083만달러에 불과하다. 지난 연말 이후 미국주식 보관액 감소폭과 비교하면 44분의 1 수준으로 적다.
실제로 RIA계좌와 무관하게 올 들어 서학개미의 해외주식 투자는 눈에 띄게 줄고 있다. 1월 1680달러이던 미국주식 보관금액은 2월 1649억달러, 3월 1542억달러로 감소했다. 미국시장이 주춤한데다 중동전쟁여파까지 겹치면서 해외주식투자액이 줄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투자자들은 시장 상황에 따라 움직일텐데 복잡한 세제혜택을 설계해 품을 팔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소수 서학개미에겐 '파격', 나머지에겐 '남의 일'
정부의 기대와 달리 실제 RIA계좌 활용도가 낮은 건 깐깐한 세제혜택 기준의 탓도 크다. 계좌를 활용하려해도 할 수 있는 투자자가 드물다는 것이다.
실제로 RIA에서 양도세 혜택을 받으려면 2025년 12월 23일부터 보유하고 있던 해외주식이 있어야 하고, 이 해외주식에서 양도차익도 있어야 한다. 이익이 없으면 세금도 혜택도 없기 때문이다.
또 RIA에서 해외주식을 팔고 국내주식 등에 투자하면서 동시에 다른 계좌에서 해외주식이나 해외주식형 펀드 등에 투자해선 안된다는 조건도 붙는다. 해외에 상장된 해외주식, 해외주식형펀드 뿐만 아니라 국내 상장된 해외주식형 펀드와 상장지수펀드(ETF) 등도 규제 대상이다. 그것도 올 1월 1일 이후 이미 매수했던 경우에도 규제를 받는다. 퇴직연금계좌, ISA, IRP등 절세계좌에서 매수한 것도 규제 대상이다.
한쪽에선 팔고 다른 쪽에선 사는 꼼수를 막기 위함인데, 이런 복잡한 요건 탓에 RIA로 혜택을 볼 수 있는 투자자는 크게 줄어들었다. RIA개설 현황에서 보듯 환율방어라는 정책효과도 그만큼 낮아졌다.
강진혁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주식시장 활성화 대책에 낙관론을 보유한 개인은 유턴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다만, 올해 해외주식을 순매수할 경우 공제비율이 줄어드는 만큼 개인 입장에서 해외투자를 일부 포기할지 혜택 조정을 감내할지 선택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고 평가했다.
물론 환율방어 효과와 무관하게 투자자 입장에서만 보면, 긍정적 측면도 있다. 일부 세제혜택 요건을 갖춘 소수 투자자들에게는 양도세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증권사 관계자는 "오래전에 엔비디아를 사서 보유중인 투자자들처럼 장기투자를 하고 있고, 수익률이 상당히 높은 분들은 이번에 상당히 만족하면서 RIA계좌를 만들고 혜택을 기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조건이 까다롭지만 일부 해당되는 분들에겐 상당히 파격적인 혜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삼성증권은 자사에 RIA계좌를 만든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입고한 종목 중 1위가 엔비디아(200억원)였고, 테슬라(80억원), 애플(50억원), 알파벳(50억원)이 뒤를 이었다고 설명했다. 삼성증권은 1000억원 이상 초고액자산가 가문 150여 곳의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고액자산가 고객이 많은 곳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