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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人워치]고생물학 덕후 꿈, 게임서 이뤘다

  • 2018.02.21(수) 13:33

넥슨 듀랑고, 이색 게임기획자
고생물학 박사과정 출신
대자연 현상 게임속 재현

"대학원 시절에 간 호주 아웃백에선 왈라비(캥거루과 동물), 캥거루가 뛰어다니곤 했어요. 반경 수십 킬로미터 안에 사람이 전혀 없어요. 황무지가 펼쳐지고 강이 흐르죠"

 

강임성 넥슨 왓스튜디오 리드 게임 기획자는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 고생물학 박사과정 시절을 떠올리며 눈을 반짝였다. 박사 과정을 포기한지 10여 년이 지났는데도 동·식물 얘기에 들뜬 모습이 영락 없는 고생물학 덕후(매니아)였다. 지금도 그는 레버넌트 등 자연 개척 영화를 즐겨본다고 한다.

 

그러던 그는 넥슨에서 고생물 지식을 살릴 기회를 잡았다. 넥슨의 야심작 '야생의 땅: 듀랑고' 게임 속 자연환경을 기획한 것. 지난 달 출시된 듀랑고는 공룡 시대로 돌아가 땅을 개척해 생존하는 모바일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다.

 

실제로 듀랑고 안에는 디테일이 살아 있었다. 캠프 근처에선 활엽수림이 자라고 피리 소리가 흘러나왔다. 반면 물가에선 갈대밭이 보였고 바다가에선 파도 소리가 들렸다. 심지어 식물 종류별로 채집하는 모습도 달랐다. 강 기획자를 비롯 덕후 기질이 다분한 개발자와 디자이너가 하나 하나 공들인 결과물이다.

 

강 기획자가 대학원을 나오며 작별한 오지 탐험은 이제 게임에서 생생히 즐길 수 있게 됐다. 지난 20일 경기 분당구 넥슨코리아 본사에서 강 기획자를 만나 게임 기획 소회를 들어봤다.

 

▲ 강임성 넥슨 왓스튜디오 리드 게임 기획자 [사진=이세정 기자]

 

-듀랑고 생태계 조성은 어떤 순서로 진행됐나요

▲우선 도트(2D 픽셀) 그래픽으로 생태계를 만든 후 실사 그래픽으로 옮겼습니다. 이후 시각적으로 자연스럽게 구현하는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어색한 요소로 유저의 몰입을 깨뜨리면 안 되니까요.

 

시각적 요소는 지금도 꾸준히 손질(업데이트)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늪과 사바나 환경을 만들었는데요. 사바나의 경우 풀밭이 많아야 하는데, 화면에선 너무 빽빽하게 나타나 피로감을 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이 같은 부분을 지속적으로 체크하며 새로운 환경을 만들고 있습니다.

 

-듀랑고 생태계의 초기 모습은 어땠나요

▲2014년 듀랑고 기획 합류 당시 실사 그래픽을 적용하고 있었는데요. 도트 그래픽 단계에서부터 온대지역, 냉대지역 식물을 구분하는 등 자연 원리를 반영한 상태였습니다.

 

막상 실물 형태로 바꾸고 나니 어색한 점이 눈에 들어왔어요. 땅 한가운데에 갈대가, 모래밭에 소나무가, 해변가에 낙엽나무가 자라는 식이지요. 원하는 자원을 찾으려면 어디로 가야 할지도 알기 어려웠습니다. 지금은 바위를 찾으려면 높은 산이나 벽지에 가면 됩니다. 개발 초기엔 아무 곳에서나 바위가 나타났습니다. (자원 위치에 대한) 단서가 전혀 없던 셈이지요.

 

-생태계를 실제처럼 만들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다른 게임에선 자연환경 등 배경은 장식품에 그칠 때가 많습니다. 배경은 분위기만 잡아줄 뿐이며 몬스터와 플레이어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자연환경까지 개척하고 채집하는 일은 잘 없는데요. 듀랑고는 자연환경 등 화면 안의 모든 요소를 만질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도전적 과제였습니다.

 

자연 원리를 모두 담을 순 없으니 유저가 재미를 느낄 요소만 골라내는 과정도 필요했습니다. 개발 초기엔 습도 개념이 있었습니다. 같은 초원이라도 습한 곳에선 고사리가 자라는 설정인데요. 유저 입장에선 잘 모르는 내용이라 문제가 있었습니다. 게임의 재미가 아닌 스트레스가 될 수 있으니 적절히 변형했습니다.

 

▲ 넥슨의 올해 신작인 야생의 땅: 듀랑고 [사진=넥슨]

 

-이렇게까지 섬세하게 작업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일반적으로 게임에선 몬스터만 잡으면 됩니다. 하지만 듀랑고는 사냥을 하지 않더라도 채집하거나 집을 지으면서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했습니다. 전투 이외에도 오지 탐험, 채집 등에서 충분한 재미를 주려고 했고 그만큼 생태계 조성에 신경 썼습니다.

 

듀랑고는 범람하는 MMORPG 속에서 개성 있는 게임이 되려고 했습니다. 현대인은 자연을 직접 보고 만질 일이 적으니 잘 모르는 지역을 탐험하면서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강 기획자의 고생물 덕후 기질도 생태계를 섬세하게 만드는데 한 몫 한 것 같습니다

▲고생물학은 여전히 흥미로운 학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원 시절엔 연구분야만 좁게 다뤘지만 오히려 직장인이 된 후 교양도서 등을 다양하게 즐길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듀랑고 속에서 채집을 하고 집도 짓습니다.

 

덕후 성향은 저뿐만 아니라 모든 직원에게 있습니다. 세부적인 것까지 꼼꼼하게 게임에 녹이는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다들 개성이 강한데 그런 사람이 만드는 게임이 재미 있는 것 같습니다.

 

-대학원 시절은 어떠셨나요

▲저는 전공 분야 중에서도 유달리 야외 조사가 많은 쪽을 담당했습니다. 해외 학회도 유명 관광지가 아니라 찾기 어려운 시골에서 열리곤 했는데요. 버스로도 갈 수 없는 지역을 탐방하던 기억이 납니다. 길을 잃어버리거나 뱀만 나온 적도 많지만 즐거웠습니다.

 

▲ 듀랑고 속 생태계의 모습 [사진=넥슨]

 

-그렇게 고생물학을 좋아했는데 왜 박사과정을 포기하셨나요

▲지금 돌아보면 일을 끝내는 방법을 잘 몰랐습니다. 자료는 쌓여 있는데 논문을 끝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의욕만 앞서고 성과를 내지 못하니 해가 지날수록 겁이 났습니다. 결국 서른 살 무렵에 집중할 수 있는 좋아하는 일을 새로 찾기로 했습니다.

 

당시 아이폰이 막 출시됐었는데요. 어플리케이션을 만들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 게임업계에 발을 들였습니다. 처음으로 맡은 프로젝트는 장애 아동을 위한 인지 치료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걸 보면서 보람을 느꼈습니다.

 

-고생물 지식을 10여 년 만에 살리게 된 소감은 어떠신가요

▲대학원 때 공부한 지식과 야외를 돌아다니던 감각은 늘 몸에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인생에서 써먹을 일이 다시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는데요. 듀랑고는 의외의 기회였습니다. 게임 속 암석 채집은 박사과정 때 하던 일이기도 한데요. 개발자와 디자이너들이 꼼꼼히 신경 써준 덕에 실제처럼 생동감 있게 구현됐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태어나 직업을 선택한다면 고생물학도인가요, 게임 기획자인가요

▲만족감은 대학원 때보다 지금이 더 높습니다. 게임을 만드는 일만 벌써 10년을 했네요. 글쎄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그냥 게임 기획자를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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