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임일곤 기자] 글로벌 게임사 넥슨에 일본 시장은 철옹성 같은 곳이다. 지난해 넥슨은 유례없는 성장에 힘입어 2조3000억원에 달하는 사상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하지만 지역별로 보면 일본에서 유독 힘을 쓰지 못했다. 한국과 중국에서 펄펄 난 것과 대조적이다.
일본은 넥슨이 더 나은 기업가치를 평가받고 중국과 유럽 등 글로벌 시장으로 뻗어가기 위해 선택한 승부처다. 넥슨은 지난 2011년 도쿄증권 시장에 상장해 일본 증시에서 끌어들인 자금으로 글로벌 사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게임 강국 일본은 호락호락하게 문을 열지 않았다. 넥슨이 매년 새로운 게임을 쏟아냈으나 이렇다 할 성공을 거둔 적이 없다.
▲ 김기한 넥슨 일본 모바일사업 본부장 |
일본 공략의 가망이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짙어졌으나 작년말부터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넥슨 모바일 액션게임 '히트(HIT)'가 한국에 이어 일본에서도 말 그대로 히트를 쳤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후속작 '오버히트'가 출시되자마자 일본 현지 앱스토어 매출 7위까지 오르는 등 상승세를 타고 있다. 넥슨의 모바일게임이 일본 상위권에 오른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타석 홈런을 치고 있는 넥슨의 핵심 주역을 만나 이유를 들어봤다. 일본 도쿄 미나토구 롯폰기 소재 넥슨 사무실에서 만난 김기한 모바일사업본부장(사진)은 수준 높은 원작과 철저한 현지화 노력을 성공 배경으로 꼽았다.
넷게임즈가 개발한 히트는 2015년 11월 넥슨을 통해 출시 후 하루만에 구글 플레이 및 애플 앱스토어 최고 매출 기록을 세운 게임이다. 타격감이 좋고 그래픽이 뛰어나 2016년 대한민국게임대상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PC 온라인 강자 넥슨은 이 게임 덕에 모바일 영역에서 처음으로 두각을 드러냈다. 넥슨은 지난달 무려 1450억원을 들여 넷게임즈 지분을 추가로 사들이고 이 회사 최대주주(48.3%)로 올라섰다.
탄탄한 원작을 가져와 일본 유저 입맛에 맞게 가공했더니 자연스럽게 통하더라는 것이다. 김 본부장은 "히트와 오버히트는 뼈대만 남기고 대부분을 일본 현지인이 좋아하는 것으로 교체했다"면서 "원화부터 스토리까지 일본 유저에게 친숙한 인상을 전달하기 위해 거의 새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일본인 유명 성우의 목소리를 넣어 듣는 재미도 강화했다.
아울러 히트 시리즈의 성공은 넥슨 일본 사업 조직의 대대적인 체질 개선이 선행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메이플스토리와 마비노기 등 PC온라인 장르를 주력으로 하는 넥슨은 2015년부터 모바일로 눈을 돌렸다. 일본 PC온라인 게임 시장 규모가 축소되는 반면에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한 모바일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서다.
이에 넥슨은 모바일 자회사인 글룹스의 개발 인력을 본사로 흡수, 기존 PC온라인 인력과 합쳐 모바일개발 전담 조직을 만들었다. 대부분 현지 인력으로 구성된 이 조직이 히트 시리즈의 일본 성공을 이끌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 본부장은 "초기 글룹스는 개발과 사업을 동시에 하는 조직이었는데 개발 조직을 떼어내는 등 역할 분담을 명확히 했다"며 "히트 시리즈 사례처럼 퀄리티가 높은 게임을 선별해 현지화를 거쳐 일본 시장에 내놓는 전략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글룹스는 2005년 설립된 일본 모바일게임 개발사다. 이 회사는 모바게라는 게임 플랫폼을 통해 히트작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급부상한 곳이다. 이러자 넥슨이 지난 2012년 10월 글룹스 지분 전량을 365억엔(당시 환율로 5216억원)에 인수하고 자회사로 편입했다. 이는 당시 일본 모바일게임 업계에서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M&A) 금액으로 기록됐다.
▲ 넥슨 일본 본사 내부 모습. |
김 본부장은 글룹스와의 긴밀한 협력을 바탕으로 중장기적으로 롱런하는 게임 타이틀 1~2개 가량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소개했다. 그는 "5년 정도 꾸준히 인기를 모은다면 일본 시장에서 충성도 높은 팬을 확보하게 된다"며 "자연스럽게 회사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다른 출시작들도 힘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원래 개발자 출신이다. LG전자에서 디지털TV 개발자로 직장생활을 시작해 2004년 엔씨소프트 한국 및 일본법인을 거쳐 2012년 넥슨 일본본사로 영입됐다. LG전자 시절부터 게임에 관심이 많았던 김 본부장은 엔씨소프트에서 리니지2 토너먼트 채팅 서버 등을 만들었으며 일본법인에선 게임 과금 플랫폼과 포털 개발 등 비즈니스모델 확장 역할을 담당했다.
넥슨으로 이직하면서도 초창기엔 플랫폼 확장역할을 담당했지만 모바일사업본부장을 맡으면선 전공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사업을 진행하게 됐다. 김 본부장은 "사업은 안해본 분야인데 넥슨에 있던 기존 멤버들과 사업 베테랑 인력들이 많아 어렵지 않게 적응할 수 있었다"고 겸손을 표하기도 했다.
한편 김 본부장은 일본 시장에 관심있는 게임인에게 당부할 조언을 부탁하자 "만만치 않은 곳"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일본은 시장 규모가 크고 성장 가능성이 높은 곳이나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고 게임 수준이 굉장하다"며 "한국에서 성공했다고 일본에서도 잘될 것이라고 만만하게 보지 말고 온힘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