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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삽질 염탐기]⑥파리지앵 구글러, 로봇에 미치다

  • 2018.06.27(수) 18:11

구글 7년 일한 뒤 파리 돌아와 창업
신시장 개척 어렵지만 '잠재력 기대'

 

▲ 피에르 르보 '키커' 창업자가 비즈니스워치와 인터뷰하고 있다.
 
[파리=김동훈·양효석 기자] 프랑스 파리 오페라 하우스에서 2.4킬로미터(km) 정도 떨어진 샤브홀 가(街)를 걸어가다 보면 18세기에 머문듯한 거리 풍경과 사뭇 다른 느낌의 스타트업(초기 벤처) 사무실이 나온다. 음성인식 기반 인공지능(AI) 로봇 기업 '키커'(Keecker)다.

 

키커 창업자 피에르 르보(Pierre Lebeau·38)가 능숙한 호주식 영어 억양으로 취재진을 맞이했다. '설마 파리지앵이 아닌가' 의문을 품은 채 에스프레소 한잔을 얻어 마시면서 피에르 대표의 자기소개를 잠깐 듣다보니 산란기가 다가오면 자신이 태어난 강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가 떠올랐다. 인생 20대 시절 대부분을 외국에서 배우고 일하다가 30대가 되어 고향인 파리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 파리로 돌아온 구글러 '창업하다'

 

피에르 대표는 호주 플린더스대, 모나쉬대를 졸업하고 현지 온라인 부동산 플랫폼에서 일했다. 우리로 치면 '직방'이나 '다방' 같은 곳이다.


여기까지 들으면 영어 억양의 이유까진 알겠으나, 로봇 사업과 연결고리를 찾기 어렵다. 그는 호주에서 1년가량 일한 이후 미국 구글 본사에서 7년을 일했다고 한다. 피에르 대표는 "구글에서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하며 구글 보이스, 지메일, 구글 어스, 구글 애널리틱스, 모바일 광고 등을 담당했다"고 설명했다.

 

구글의 핵심 서비스를 담당했던 인력인 만큼 구글에 계속 머물거나 구글 수준의 다른 미국 기업에서 일해도 될텐데 왜 모국으로 돌아왔을까. 그것도 실리콘밸리가 아니라 파리에.


"미국도 좋지만 그냥 고향인 파리에서 일하고 싶었어요. 가족과 친구들이 있고…사실 파리에는 수학에 뛰어난 인력이 많습니다. 수학이 인공지능이나 로봇을 만드는 기본이 되거든요"

 

▲  피에르 키커 대표가 제품 개발 작업장을 소개하고 있다. 프로토 타입은 이곳에서 만들지만 실제 생산은 중국 공장에서 하고 있다.

 

피에르 르보 대표와 같은 '연어 창업자' 사례는 개인적 선택이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하지만 프랑스 정부가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일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추진하는 스타트업 진흥 정책과도 무관하진 않다.

 

프랑스 정부는 2009년 1인 기업의 창업에 걸림돌이 되는 사회 보장금(창업자가 1명을 고용하면 월급 외에도 지급해야 하는 일종의 세금. 예로들면 100유로당 235유로를 더 부담하는 수준이라 고용을 꺼리게 만든다)을 경감해주고, 2014년에는 '프렌치 테크'라는 이름의 스타트업 지원 정책도 내놨다.

 

작년 정권을 잡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프랑스 정부도 자국 제조업과 고부가가치 산업역량을 키우기 위해 해외로 나간 기업을 불러들이고 신기술 창업 기업을 키운다는 목표의 '프렌치 팹'(French Fab) 정책을 내놓고 있다.

 

▲ 키커의 사무실 전경. 곳곳에 로봇 '키커'가 있다.

 

◇ 어려운 신시장 개척…"불가능이란 없다"

 

프랑스의 정책 기조가 친시장으로 향하는 것과 별개로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시장을 만드는 것은 기업의 몫이다. 그런 점에서 피에르 대표의 이 한마디가 흥미로웠다. "로봇 사업을 그때 시작한 건 미친짓이었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피에르 대표는 약 5년여 전인 2012년 키커를 파리에서 창업하고 같은 이름의 로봇을 개발했다. 키커는 사람 말을 알아듣고 벽쪽으로 움직여 내장된 프로젝터를 통해 TV나 영화를 볼 수 있게 해준다. 움직이는 빔 프로젝터인 셈이다.

 

'저쪽 벽에 영화 틀어줘'라고 말하면 스르륵 굴러가 영화를 틀어주는 식이다. 구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를 장착하고 있어 넷플릭스를 즐기거나 게임도 할 수 있다. 360도 카메라가 장착돼 집안을 돌아다니는 CCTV 역할도 가능하다.


키커는 2014년 미국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 'CES'에서 첫 소개되며 화제를 모아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킥스타터에서 한 달여 만에 약 26만달러를 펀딩 받기도 했다. 상용화 되지도 않은 작은 로봇을 한화로 3억원어치 판 셈이다. 현재까지 총 투자유치 금액은 450만유로다.

하지만 프랑스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드문 사례라는 점은 시장 개척이라는 어려운 과제를 안긴다. 피에르 대표는 "5년 전에 로봇 사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구글홈 같은 것이 나오기도 전이었으니 거의 미친짓이었다"며 "게다가 하드웨어 분야는 전혀 해보지 않은 일인데다 생산에 많은 비용이 들어갔고 생산·유통 과정의 마진을 나누는 일이나 사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복잡했다"고 회상했다.

 

새로운 유형의 제품은 일단 많은 사람이 경험해봐야 구매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이런 관점에서 다양한 오프라인 매장과 손잡고 프랑스, 영국, 미국 일부 지역에까지 키커를 판매하고 있다. 독일 등 유럽 지역으로 더욱 확대한 뒤 아시아 지역 진출도 계획하고 있다. 일반 소비자뿐만 아니라 호텔 대상의 B2B 사업도 벌이고 있다.

 

▲ 피에르 대표가 키커를 음성으로 작동시키고 있다.

 

예상치 못한 어려움도 겪고 있다. 미디어 시청 행태의 변화 때문이다. 피에르 대표는 "프랑스에서도 요즘 젊은 세대는 TV를 잘 안 본다"며 "스마트폰이 TV를 대체하고 있기 때문에 구매력이 높고 트렌드에 민감한 젊은 세대와 키커를 매칭시키는 게 숙제"라고 말했다.

 

다만 스마트 홈 미디어 시장이 열리고 있어 기회를 엿보고 있다. 이는 음성인식 기반 인공지능 스피커·셋톱박스나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이용해 가정의 각종 기기를 작동시키는 홈 IoT 분야가 급성장하고 있는 한국과 유사한 분위기다.

 

시장조사 업체 GFK에 따르면 작년 프랑스에서 판매된 사물인터넷 및 커넥티드 기기는 520만대로 매출액의 경우 전년보다 33% 상승한 10억6000만 유로에 달했다. 특히 스마트 홈 관련 기기가 전체의 57%를 차지했다.

 

아마존, 구글과 같은 홈 미디어 분야 글로벌 플레이어가 프랑스에 본격 진입하는 것도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신시장을 함께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다. 그는 "불가능은 없다고 생각한다 사업의 잠재력을 믿고 계속할 뿐"이라고 말했다.

 

▲ 크리스틴 인위보 판매부문 부사장이 프랑스의 보안 스타트업 생태계와 관련 설명하고 있다.

 

◇ 중세와 현재가 공존하는 파리…스타트업의 고군분투도 '시작'

 

파리는 중세와 현대가 공존하는 매력적인 도시로 세계적인 명성을 갖고 있다. 이런 도시는 이제 스타트업들이 신시장을 개척하는 장소로 진화하고 있다.

 

파리에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스타트업 지원 센터인 '스테이션F'에 가봐도 손쉽게 알 수 있다. 자리를 잡은 스타트업도 있지만 새로운 사업에 도전중인 스타트업이 훨씬 많다.

 

블록체인 관련 컨설팅 서비스를 기업에 제공하는 스타트업 '벨렘' 창업자 로맹(Romain Roupael)도 그런 사례다.

 

그는 "블록체인과 암호화폐(가상화폐)는 혁명적인 것이라고 판단해 창업에 뛰어들었다. 이런 기술과 서비스가 파리를 더욱 매력적인 도시로 만들 것"이라며 "다만 아직 기업들의 블록체인 수요가 빠르게 늘진 않아 고객사가 10곳 정도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프랑스 보안 분야 스타트업 인위보(Inwebo)의 경우도 유럽 각국과 미국에 진출하면서 많은 교훈을 얻었다. 크리스틴 커크너(Kristine Kirchner) 인위보 판매부문 부사장은 "200곳 이상의 고객사를 유치해보니 다른 언어와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여야 한다는 깨달음이 있었다"면서 "똑같은 시장이 하나도 없었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러면서 그는 키커의 창업자 피에르와 완전히 반대의 사례에 해당하는 프랑스 기업과 인력의 외부 유출을 걱정하기도 했다. 

 

크리스틴 부사장은 "프랑스인들이 미국으로 많이 건너가고 있는 한편, 글로벌 기업이 프랑스 기업 인수를 넘보는 경우도 있다"며 "기술력을 보호받을 수 있는 특허를 갖추면서 어떤 고객이든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개선해 경쟁력을 꾸준히 유지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 기획시리즈는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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