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점심 시간 무렵 서울 강남구 맘스터치 가든역삼점의 테이블 40여개는 손님으로 꽉 찼다. 이곳에선 넥슨과 맘스터치가 지난 16일부터 서브컬처 게임 '블루 아카이브' 협업(콜라보) 메뉴인 '매운건 익숙해 세트'와 '순살도 버거도 사주세요 세트'를 팔았다. 블루 아카이브의 인기 캐릭터 4명(조마에 사오리, 하카리 아츠코, 이마시노 미사키, 츠치나카 히요리)이 모인 '아리우스 스쿼드' 간판이 설치된 매장이기도 하다.
매장 입구에서 무인 단말기(키오스크)를 눌러 매운건 익숙해 세트를 사려던 직장인 김 모 씨(30)는 당황했다. 주문하려던 메뉴가 매진돼서다. 다른 콜라보 메뉴도 마찬가지였다.
김 씨는 "일 때문에 어제 이곳에 방문하지 못하고 오늘 왔는데 다 팔려 아쉽다. 블루 아카이브 이용자 사이에 콜라보 메뉴가 나왔다는 소식이 꽤 알려지긴 했는데 이 정도로 인기가 많을 줄 몰랐다"고 했다.
해당 매장 직원은 "콜라보 세트 메뉴는 지난 19일 매진됐고, 언제 다시 재고가 들어올지 모른다"며 "콜라보를 시작하자마자 식사 시간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세트 메뉴를 먹거나 포장해 갔다"고 말했다.
게임업계에 콜라보 열풍이 계속되고 있다. 넥슨 외에도 펄어비스는 지난달 CJ제일제당과 함께 펄어비스의 인기 지식재산권(IP) '검은사막'을 활용한 '검은사만두'를 출시했다. 검은사만두는 35만개 한정 수량으로 생산됐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검은사만두를 온오프라인에서 동시에 판매했는데, 소량의 온라인 판매용 재고만 남았다. 35만개가 거의 다 팔렸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콜라보는 음식에 그치지 않았다. 스마일게이트는 지난 15일부터 PC 레이싱 게임 '테일즈런너'에 뽀로로 속 인기 캐릭터인 '루피'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게임 내 캐릭터에 입힐 수 있는 잠옷, 슬리퍼 등에 루피 얼굴을 새겨 넣은 것이다. 내년 1월에는 게임 소품에 그치지 않고 아예 정식 캐릭터로 루피를 등장시킬 예정이다.
게임사들이 이종 분야와 협업하는 이유는 이용자의 충성심과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크래프톤은 지난 8월 배틀그라운드 정규 패치를 하면서 영국의 스포츠카 브랜드 '애스턴마틴'과 콜라보한 3종의 차량을 선보였다. 크래프톤은 일반적으로 한 달에 한 번 배그 정규 패치를 하는데, 스팀 이용자 추이를 집계하는 스팀 차트에 따르면 애스턴마틴 차량이 추가된 달의 배그 평균 접속자수는 18만373명으로 한달 전(16만3508명)에 비해 10.3% 늘었다.
기존 고객은 묶어두고 게임에 생소했던 이용자를 새로 끌어들이는 효과가 컸다는 얘기다. 컴투스도 지난 4월 말 '서머너즈 워: 크로니클'을 일본의 인기 애니메이션 '원펀맨'과 콜라보했다. 매출 상위 10위 밖이었던 서머너즈 워: 크로니클의 스팀 글로벌 매출 순위는 콜라보 다음날 6위까지 뛰어올랐다.
아무리 공들여 제작했어도 유저들의 호응을 얻지 못하면 출시 며칠 만에 사라지기도 하는 게 게임시장이다. 실제 유니티 테크놀로지에 따르면 지난해 게임 개발자 23만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게임의 평균수명은 8개월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게임사들은 자신의 게임이 오랜 기간 유저들 사이에 자리잡을 수 있는 방안에 목말라있다. 이종분야와 콜라보에 적극 나서는 배경이다.
특히 게임 한편을 제작하는 데는 웬만한 블록버스터급 영화 제작비를 웃도는 돈이 들어간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100인 이상 종사자가 근무하는 게임사의 평균 게임 제작비는 편당 698억6200만원에 달했다.
업계 관계자는 "게임사와 다른 업종의 협업을 통해 신규 이용자 유입, 기존 이용자 락인(소비자가 다른 제품이나 서비스로의 이동을 막는 것) 효과 등을 매출과 같은 여러 지표로 확인한 사례가 나오고 있다"며 "창의적이면서도 다양한 업종과의 콜라보는 앞으로 더 활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