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역대 최대 매출 기록을 새로쓰며 성장 가도를 달렸던 넥슨이 사업 재편을 선언했다. 광범위한 포트폴리오를 사업성 중심으로 전환하고, 신작 개발 프로젝트도 효율성을 중시하겠다는 구상이다.
특히 '메이플스토리'와 '던전앤파이터' 등 이용자들의 일상에 녹아든 넥슨의 프랜차이즈 IP(지적재산권)를 확장해 가치있는 게임사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 과정에서 AI(인공지능) 이니셔티브인 '모노레이크'를 도입, 개발자들이 창작 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일하는 방식을 바꾼다는 계획이다.
'자아비평'으로 돌아본 넥슨
패트릭 쇠더룬드 회장은 지난달 31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넥슨 '자본시장 브리핑'(CMB)에서 자신의 역할과 함께 넥슨의 아픈 부분을 지적하며 사업 재편 구상을 드러냈다.
쇠더룬드 회장은 "회장직이 신설된 건 회사의 명확한 전략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라며 "비전을 설정하고 비용 규율을 세우며 창작 프로세스를 개선하고 성장과 수익성을 동시에 달성하는데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실적은 견실해보이지만 포트폴리오가 너무 광범위하고 사업적 타당성이 검증될 만큼 실질적인 사례가 없다"며 "개발비는 크게 늘고 신작 출시 일정도 밀리면서 마진 압박을 키우고 있다. 신작 출시로 얻는 성과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문제도 있어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고 짚었다.
넥슨의 거버넌스 문제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할 사안으로 꼽았다. 대표적인 사태가 '메이플키우기'의 어빌리티(능력치) 논란이다. 이와 관련 넥슨은 '전액 환불'을 결정하며 신뢰 회복에 나서기도 했다.
쇠더룬드 회장은 "넥슨은 어려운 결정을 내리는데 지나치게 느린데, 우유부단함으로 들이는 비용은 커지고 있다"며 "단순한 실수가 아닌 운영상 명백한 관리 실패로 구조적 개선 등 재발 방지를 마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2년 전 CMB에서 설정한 2027년도 실적 목표는 달성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솔직히 인정했다. 당시에는 강력한 프랜차이즈를 바탕으로 한 규모의 경제가 수익성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지만 현재는 현실화되지 못했다는 판단에서다.
쇠더룬드 회장은 "던전앤파이터 모바일은 일시적이 아닌 구조적 부진이고 신작 출시도 지연되고 있다"며 "포트폴리오 확장으로 비용이 매출보다 늘면서 인프라와 개발비 등 총체적으로 보면 사상 최고 매출에도 수익 압박이 있다"고 말했다.
변화 핵심은 '선택과 집중'…가치있는 게임사 목표
넥슨은 광범위한 포트폴리오 등 비효율 구조를 개선하는데 초점을 맞춘다는 계획이다. 그렇다고 신작 개발과 인수·합병(M&A) 등 투자를 축소하는 게 아닌 투자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곳에 집중하겠다는 의미다.
쇠더룬드 회장은 "아크레이더스는 적은 인원과 낮은 비용으로도 'AAA'급 게임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며 "(넥슨이) 20년간 라이브를 운영한 300여개 프랜차이즈 팀을 하루 아침에 움직일 순 없지만 (아크레이더스 개발사인 엠바크 스튜디오의) 사고방식을 넥슨 전반에 적용하면 변화와 성과가 서서히 나타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쇠더룬드 회장은 넥슨의 프랜차이즈 IP가 보유한 커뮤니티에도 주목했다. 던전앤파이터와 메이플스토리, FC온라인 등 넥슨이 서비스하는 게임은 이용자들이 커뮤니티를 구성해 일상을 공유하고 있다.
쇠더룬드 회장은 "특정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커뮤니티를 만들과 관계를 유지하며 성장하고 있다는 점은 넥슨을 가치 있게 만드는 핵심"이라며 "게임 안에서 깊이 있는 세계를 만들고 경험할 수 있는 프랜차이즈를 5개까지 확장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신규 투자와 포트폴리오 결정도 이 같은 관점에서 이뤄진다. "평생 이어질 수 있는 열정이 되는가" 혹은 "이용자들이 떠나고 싶지 않은 세계를 구축할 수 있는가" 등에 부합하다면 전력을 다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시간과 자본을 다른 곳에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넥슨은 게임 개발 과정에서 AI 전략인 모노레이크 이니셔티브에 대해서도 공개했다. 모노레이크는 넥슨이 축적한 방대한 데이터와 인사이트에 모든 개발자와 운영팀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핵심적인 시스템이다.
이정헌 넥슨 일본법인 대표는 "맥락이 없는 AI는 일반적인 결과물을 빠르게 만들 뿐 디자인 역사와 이용자 행동, 혁신에 대한 이해가 없는 도구에 그친다"며 "넥슨의 AI 접근 방식은 창작 인력을 대체하는 게 아닌 맥락을 기반으로 (개발자가) 창의적인 작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성장 전략을 뒷받침할 외부 협력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이 대표는 "EA, 텐센트 등 글로벌 파트너사들과 맺어온 견고한 신뢰 관계는 넥슨의 중요한 자산"이라며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와 퍼블리싱 계약을 통해서도 사업 확장의 기회를 지속적으로 모색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우에무라 시로 최고재무책임는 "8000억 엔이 넘는 현금성 자산과 안정적인 현금 창출 능력을 바탕으로, '원칙에 기반한 투자'와 '일관된 자본 환원'을 통해 주주가치를 극대화하겠다는 구상을 발표했다.
넥슨은 올해 엄격한 비용 통제와 자원 재배치를 통해 매출과 영업이익을 끌어올리고 구조적인 수익성 개선으로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성장 모델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주주환원 정책도 강화한다. 올해 연간배당은 지난해보다 33% 증가한 주당 60엔을 계획하고 있다. 또 기존의 '전년도 영업이익의 33% 이상 주주 환원' 정책을 변함없이 유지하고, 적극적인 자사주 매입 등 주주가치 제고에 힘쓰겠다는 방침이다.
쇠더룬드 회장은 "단순히 부분적 개선을 이루고자 (회장) 역할을 맡은 게 아니라 넥슨이 가치있는 게임사가 될 것으로 믿고 맡았다"며 "프랜차이즈 IP와 현금뿐 아니라 넥슨이 오랜 기간 쌓은 비전이 있다"고 말했다.























